“이 보게! 친구, 자네는 신부로서 사는 걸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나? ”
예고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사춘기시절 다가온 화두는 ‘신은 존재하는가'였다.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래서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렸다. 새벽기도도 해보고 여름수련회합숙도 했으며 종교를 바꾸어 교리공부도 했다. 답을 찾지는 못하였으나 어느새 내 손가락에는 묵주가 끼워져 있었다. 번민이 내 심장을 때릴 때 묵주를 돌리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했다.
입신양명을 꿈꾸던 대학이라는 공간은 나를 유물론자로 만들었다.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보다는 정답 또는 해답이 있는 과학이 필요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고민의 시간이 다가오고 동굴에 들어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손가락에 끼여 있는 묵주를 만지작거렸다. 나에게 ‘신’은 어머니 와도 같은 마지막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과학과 신은 병존할 수 없는가? ’그렇게 두번째 화두로 넘어갔다.
친구에게 던진 질문으로 곤란한 상황을 만들 의도는 없었다. 다만 인생의 3분의2가 훌쩍 지나고 있는 지금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가 좋을 까라는 상상의 출발이었다. 10대 시절 그 신부의 선택은 신부였기 때문이다.
“응,친구, 나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네. 난 지금 무척이나 행복하다 네“
고민속의 정적을 기대했던 바램과는 달리 찰나의 고백이었다. 어쩌면 그는 매일 아니
매시간 똑같은 질문에 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보게! 친구, 어찌 성직자의 매순간이 행복할 수만 있단 말인가? 자네도
세상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가 말 일세.”
이런 우문을 던지고 고개를 돌렸을 때 저 멀리 저물어가는 석양의 노을이 보였다. 마치 조급함과 초조함에 지친 나를 조롱하는 듯 했다.
결국 나는 ‘신'에 대한 화두를 풀려고 하지 않았음이 분명해졌다. 깨진 독에 물을 부어 채우려고만 했으니 채워질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지금껏 깨진 독 탓만 하고 앉아 있는 꼴이다. 나에게 집중하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았다. 깨진 독을 붙여 새지 않게 채우던지 아니면 물에 던져서 채울 일이었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그러니 남는 화두는 없다.
시간이 흘러 세번째 화두가 다가올 때 쯤 어떤 독백을 하게 될까. 여전히 동굴에 들어가 손가락에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안주하거나 회피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