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by 슈퍼엄마

수업 중에 준비해 온 자료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자꾸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한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맞는데..'
몇 번을 연속해서 틀리다 결국 '비밀번호 찾기'를 눌렀다. 본인인증을 위해 생년월일을 치는 순간 여기저기서 탄식인지 놀람인지 모를 소리가 들렸다.


"헐~ 선생님 80년대에 태어났어요?"
"그럼 몇 살이신 거예요??"
"헉!! 마흔이 넘으신 거예요??"

..
를 돌아보니 노트북 자판에 두드린 내 생년월일이 빔프로젝트를 통해 칠판 벽면에 보였다.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아.. 너희 9자를 8자로 잘못 본거 아니니??"라고 말하니

아이들은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한다는 듯이 야유를 보냈다.
렇게 아이들에게 나이를 커밍아웃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내 나이를 밝히고 나면 상대방은 으레 놀라곤 했다. 그걸 이용해 엄마는 목욕탕에 갈 때나 버스를 탈 때 내 나이를 두세 살씩 깎아댔다. 돈 몇 푼을 아낄 수 있어 좋았던 엄마와는 달리 나는 항상 들릴까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그런 적은 없었다. 속이는 엄마보다 의심한 번 안 하는 어른들이 더 야속했다.


지금도 가끔 내가 나이를 밝히면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예전에는 나이보다 어려 보여서 놀랐다면 지금은 생각보다 많은 나이에 놀라는 듯하다. 가끔은 누가 내 나이를 물어보면 바로 계산이 안된다. 버퍼링에 걸린 듯 잠시 머뭇대다 힘겹게 대답했다. 그렇게 뱉어놓고는 속으로 '이렇게 많다고??' 하며 새삼 놀라기도 한다.

어릴 적엔 나이가 중요했다. 한 살 선배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고 '빠른'이냐 아니냐를 따져가며 호칭을 정리했다. 성숙해 보이고 싶어 어른스럽게 옷도 입고 화장을 하던 때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나이를 묻지 않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아이친구 엄마를 만나도 직장 동료가 새로 와도 나이도 모른 채 한동안 지낸다.

그러다 부쩍 가까워졌다고 생각되면 은밀하게 다가가

"근데.. 몇 살이세요?:)"하고 묻는다.

그럼 나이가 아닌 학번이나 태어난 년도로 대답한다.

듣고 나서 '생각보다 나이가 많네?'하고 한 번 놀랐다가

곧 내 나이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좌절한 적도 있다. 남들 나이 드는 것은 알면서 정작 내가 나이 드는 것은 모른다. 이것도 내로남불인가??


아무튼 아이들은 내 나이가 적잖게 충격이었나 보다.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칭찬인지 디스인지 모를 말을 서슴없이 했다. 하긴.. 나도 어린 사람들은 대충 보면 몇 살인지 알겠는데 나보다 많은 사람들 나이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아마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라 그런가?

이십 대 때는 나이 서른이 되면 당연히 결혼도 하고 애도 하나쯤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서른 살에 결혼은커녕 애인도 없었고 심지어 직업도 없었다.(고시생)

마찬가지로 삼십 대 때는 사십 대가 되면 '불혹'이라는 이름이 걸맞게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평안하고 안정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사춘기 소녀 같다.

그러니 나의 오십 대를 상상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하늘의 명을 깨닫기에는 어린 나이란 것쯤은 이제 안다.


오십 대엔 명퇴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게 가장 즐거웠으면 좋겠다.

아이들도 제법 크고 내 시간이 지금보다 많아지겠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재밌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하늘의 뜻은 잘 몰라도 내 마음이 원하는 것쯤은 잘 아는 나이이길 바라본다.

그때까지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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