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엄마 Apr 19. 2023

나를 일으켜 세우는 말

월요일 방과 후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과 짧은 단편소설이나 에세이 등을 읽고 대화를 나눈다. 이번 시간에 읽은 글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달콤한 말'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글쓴이가 간절하게 꿈꾸던 아나운서가 됐음에도 정작 방송을 할 수 없어 우울하고 좌절감을 느끼던 시기에 선배가 해준 말에 힘을 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글을 읽고 나서 누군가를 웃음 짓게 하는 달콤한 말,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긍정의 말을 들어본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한 아이가 선뜻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눈치였다.

"말하기 좀 오그라드는데.."

"어떤 말이길래? 감안하고 들을게.ㅎㅎ"

"실은 저의 엄마가.. 그런 말씀을 잘하세요. 저에게 보석 같은 딸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라고.."

그때 옆에 있던 친구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우리 엄마는 그런 말 절대 안 하는데..ㅠㅠ"

혹시나 다른 아이들이 실망할까 봐 얼른 덧붙였다.

"가까이에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건 어때?" 그러면서 내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잘하고 있어. 괜찮아. 넌 소중한 존재야~"

"윽. 그건 너무 오그라드는데요?!..ㅠ"

아이들은 간지럽다는 표정을 짓다가 곧바로 장난스럽게 친구를 토닥이며 내 말을 따라 했다.

"안 해보니 어색할 수 있는데... 스스로에게 기운을 북돋는 말 자주 해주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살다 보면 나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줘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오늘은 바로 그런 날이었다.

 

2~3년 전쯤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써온 글들이 차곡차곡 쌓이자 마침내 오랜 꿈이었던 책 출판에 도전하기로 했다. 호기롭게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매번 돌아오는 거절 메일에 조금씩 위축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미팅까지 하게 되었다. 책의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원고를 수정해서 다시 보내주기로 했다. 너무 긴장을 했는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돌아와서 원고를 수정하기에 시간이 좀 촉박했으나 주말 내내 원고를 가지고 끙끙대다 다시 출판사로 보냈다. 그리고 어제 퇴근 후에.. 아무래도 책으로 출판하기에는 어렵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잔뜩 부풀었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속상할 틈도 없이  아이를 하원시키고 저녁밥을 차렸다. 넘칠까 봐 조심스레 찰랑이는 물 잔을 나르듯 넘치려는 눈물을 꾹꾸 눌러 담으며 내 주어진 일들을 바쁘게 해 나갔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야 다시 내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온갖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잡지 못한 나를 탓하는 말,  나의 재능과 자질을 의심하는 말, 스스로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말..

그런 말들 사이에서 어제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 자책과 아쉬움의 말이 아닌 '나를 일으켜 세워줄 말,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긍정의 말'이다.


그 순간 책장으로 가서  박완서 작가의 <나목>을 꺼내 펼쳤다.

20대, 교사가 꿈이었지만 임용시험에 여러 번 고배를 마시고   결국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읽던 책이다.  오랜만에 책을 꺼내 마지막 문장을 조용히 읽어나갔다.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그리고는 봄을  믿는 나목처럼 나의 계절을 기다리며  조용히 잠을 청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건져올린 타인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