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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Apr 17. 2023

나를 건져올린 타인의 이야기

"2학년이 된 요즘 자꾸 조바심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꿈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

오늘 아침, 반 아이들과 함께 쓰는 모둠일기에 적힌 글이다. 

이 글을 쓴 아이는 언제나 밝게 인사하는, 웃는 모습이 귀여운 아이이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과 눈맞춤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에 속으로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늘 밝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모습 뒤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아이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친구, 제빵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학원을 다니는 친구를 부러워하며 다들 열심히 진로를 준비하며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너무 느린 것 같다고 했다. 

 일기를 읽고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전혀 늦지 않았다고, 선생님도 네 나이 때 그런 고민을 했었다고.. '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 진심이 아이에게 가 닿지 않을까 봐 쉽게 쓸 수가 없었다. 으레 어른들이 하는 상투적인 이야기로 들리면 어쩌지? 어설픈 위로가 오히려 독이 될까 봐 망설여졌다. 

  

그런데 며칠 후 한 아이가 다른 친구들의 글을 읽다가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놀랍다고 적었다. 이 아이는 앞에서 제빵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학원을 다닌다는 친구였다. 남들에게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이는 그 애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들 걱정 없어 보였는데, 속으론 불안해하고 있었구나.'

그 사실에 묘하게 위로가 된다고 했다. 


다들 잘 살고 있는데 늘 나만 허둥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길은 뻥 뚫린 고속도로 같은데 나만 지뢰밭을 걷는 기분.  그럴 때 가끔 타인의 이야기가 위로가 된다. 

내게는 책이 그런 역할을 했다. 

나의 생각과 고민에 갇히고 연민에 늪에 빠져서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 나를 건져 올려준 건 책 속에서 만난 타인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묘하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도 한 번 해볼까?' 마음을 다잡게 된다. 내속에 내내 가라앉아있던 무언가가 울컥 튀어나올 것 같다.   


요 며칠을 글이 잘 써지지 않아 글쓰기 관련 책을 읽었다. 

요즘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다들 왜 이렇게 글을 잘 쓰지? 난 왜 저렇게 못쓰지?' 위축되곤 했는데 글쓰기 책에서 만난 작가들은 모두 나처럼 '글이 안 써진다'라고 했다. 난 그들의 완성된 멋진 글만 읽었지, 그 글을 쓰느라 몇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끙끙대는 모습, 그가 시도한 수많은 노력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글쓰기 책에서 작가가 고뇌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이야기를 읽으니 '나도 그랬어.. 그러니 괜찮아..' 라며 나를 토닥이는 것 같아 주책맞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마 아이들도 일기장에 쓴 다른 친구들의 글을 읽으며 울고 웃고 그러는 동안 또 많이 클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가 우리를 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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