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국어를 좀 잘한다는 아이들도 중학교에 올라오면 갑자기 국어가 어렵다고 말을 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글에 사용되는 어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올라오면 초등학교 때보다 좀 더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라면 '영희가 철수가 싸우고 속상해합니다.'라고 표현할 문장도 중학교에 오면 '영희가 철수와의 갈등으로 인해 무척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라는 식이다. 이런 어휘들은 대부분 한자어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어휘에서 한자어가 자치하는 비율은 매우 높지만 한자 교육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다.
또한 언어 공부에는 단어가 중요함을 알지만, 모국어라는 이유로 따로 영어단어를 암기 하듯이 적극적으로 국어단어를 공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대충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어휘들이 쌓이게 되면 어휘력의 빈곤이 이해력 부족으로 연결되어 글을 읽는 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째는 글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과서에는 초등학교 때보다 긴 글의 지문이 실린다. 단편소설 전문이 실리기는 경우도 많다. 글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글이 담고 있는 사건이나 내용도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긴 글을 읽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은 글을 읽다가 집중력을 잃기도 하고, 중간에 무슨 내용인지 몰라 헤매기도 한다.
이 두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바로 독서이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처음 독서수업을 할 때는 단편소설을 활용했다. 한 권을 읽어내는 힘을 기르기 전에 기초작업인 셈이다. 더불어 소설에 재미를 붙이는 효과도 기대했다.
평소 재미있게 읽은 단편소설을 기억해 내거나, <국어시간에 소설 읽기>처럼 여러 단편들을 묶어 놓은 책에서 작품을 고르기도 한다. 요즘에는 창비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의 첫만남>시리즈를 자주 이용한다.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의 책으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책이다. "책 한 권 읽을래?" 라고 내밀기에 부담없고 중간중간 귀엽고 예쁜 삽화들, 청소년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재미있어 할 만한 내용의 책이 많다.
학생들에게 책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훨씬 완독 확률 높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아냈다. 따라서 한 작품을 통일해서 읽기보다는 다양한 작품을 제시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1차 적으로 내가 골라 검증된 작품을 후보에 올려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2차로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니 둘 다 만족스러운 작품을 읽게 된다. 종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부터 sf 장르까지 다양하게 고른다.
준비해 온 작품 수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한 작품에 몰리는 경우가 있다. 이땐 가위바위보라는 아주 공평한 방식을 이용한다. 이건 송승훈 선생님께 배운 팁인데 가위바위보를 할 때는 이긴 사람이 양보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원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위바위보도 지고 작품 선택도 못하면 되게.. 기분도 나쁘고, 모둠원들이 가위바위보에서 진 아이를 탓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이런 사소한 장치와 배려가 수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첫 시간에는 책을 보여주며 책 제목이나 표지 등을 훑어보며 어떤 내용일지 예측하도록 하여 흥미를 유발한다.
예를 들어
"얘들아 돈 없으면 연애 못하니?" 하고 물어본다.
애들은 맞다. 아니다. 난리가 난다.
그때 "돈 없으면 연애를 할 수 있나 없나 볼까?" 라고 말하며 책을 꺼내 표지에 적힌 '가난하면 연애도 못하나요?'를 보여주는 식이다.
다른 책들도 이런식으로 간단히 훑어보는데 아이들은 책 표지가 예쁘다고 말하기도 하고 저정도 분량이면 읽을만 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단편소설 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션을 던져주면 좋다. 가령, '다 읽고 나서 인물들이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을 돌아가며 말해볼 거야'라든가 '인상 깊은 문장을 말해볼 거야'라는 식이다. 그럼 그걸 찾기 위해 훨씬 집중력 있게 책을 읽는다. 역시 인간은 목표가 있을 때 동기부여다 더 잘 된다. 주의할 점은 책을 읽고 바로 감상이나 자기 생각을 묻는 질문을 하면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을 이야기하는 건 거의 누구나가 할 수 있다. 간혹 '인상 깊은 게'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땐 재밌다고 여긴 부분, 슬프거나 안타깝다고 여긴 부분, 내 이야기 같아 공감이 간 부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라 놀란 부분 등이라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말해준다.
학생을 가르칠 때는 다 안다고 생각할 것 아니라 다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 '저런 걸 어떻게 모르지??'가 아니라 '저런 걸 모르는구나. 저런 걸 어려워하는구나'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수업도 잘 이뤄지고 무엇보다 정신 건강에도 좋다. 내가 생각하기엔 친절한 교사가 유능한 교사다.
수업은 45분인데 빨리 읽는 학생은 30분 이내에 다 읽고 한 작품 더 읽어도 되냐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시간 내에 다 못 읽기도 한다. 못 읽는 학생은 쉬는 시간 10분을 좀 더 할애하도록 하면 대부분 읽어낸다.
어떤 아이는 소설 한 편을 읽은 것뿐인데 소설 한 권을 읽어 낸 것처럼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이럴 땐.훌륭한 일을 해낸 것처럼 칭찬해 준다.
책을 다 읽고 다면 다음 차시에는 같은 소설을 읽은 친구끼리 모둠으로 앉아 돌아가면서 자신이 고른 인상 깊은 구절이나 앞에서 미션으로 준 부분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도록 한다. 아이들은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고른 내용이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문장인데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새롭게 들려서 두 번 놀란다.
그 후로는 궁금한 부분, 책과 관련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함께 읽은 책 한 권을 두고 수다가 이어진다. 등장인물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자 다른 친구가 등장인물을 대변해 준다. 책과 관련해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하자 나도! 나도! 하며 앞다투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시키면 벙어리가 되는 아이들도 이 시간엔 수다쟁이가 된다. 난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코로나 시국에 이런 모둠활동이 어려웠을 때는 온라인상에서 서로 인상 깊은 장면을 쓰거나 질문을 하고 댓글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한 적도 있었다.
이 방식도 아이들 반응이 좋았었다.
그렇게 신나게 떠들고 나서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에는 친구들과 책대화를 한 소감을 적거나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인상 깊은 부분을 적으며 이 시간을 마무리하도록 한다.
이 수업을 진행하고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원래 책이 이렇게 재밌는 거예요?"
수업 전에 제대로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고 한 학생의 말이다. 이런 반응을 들으면 내가 쓴 책도 아닌데 괜히 흐뭇하다.
"이것보다 재밌는 책도 더 많아! 앞으로 하나씩 같이 읽어보자^^"
세상에 있는 수많은 즐거움 중 하나를 알게 해 줬다는 뿌듯함이랄까? 이 맛에 전도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