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엔 알지 못한 것들

by 슈퍼엄마

중학교 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마흔이 넘어 첫 아이를 낳은 내 친구는 안 아픈 곳이 없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연휴 내내 남편은 출장을 가 독박육아 당첨이랜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아는 법이지..

"지혜가 아이를 낳았다는데 한 번 가보지도 못했네. 이번 연휴 내내 남편도 없다고 하네..

나 지혜네 가서 자고 와도 돼?"

남편은 토요일도 일하고 대체 공휴일인 월요일에도 일해서 나 혼자 두 아이를 보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일요일 하루 외박을 허락했다.


토요일 남편이 퇴근 후 빗속을 뚫고 두 시간을 운전해서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면서 후덕해진 친구와 아기가 나를 반겼다.


엄마가 나이 들어 애를 낳으면 애가 순하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서인지 내가 있는 동안 아기는 잘 먹고 잘 웃고 잘 놀았다.

"너 순댕이를 낳았구나 ~"

아무리 순해도.. 그래도.. 엄마는 힘든 법이지만^^;;


친구가 다음날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를 사 오겠다고 했다. 집 앞에 샌드위치 맛집이 있다며 친구가 잠깐 나갔다 오는 동안 아기와 나 둘만 남았다.


이렇게 어린 아기를 안아보는 게 참 오랜만이다. 처음엔 잘 안겨서 있더니 시간이 지나자 엄마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다.

"뿌앵~"

아, 난 이 소리가 너무 무섭다 ㅠㅠ

그래도 명색이 애 둘을 키워낸 짬밥이 있지..

난 아이를 들쳐 안고 무릎으로 반동을 주며 리듬감 있게 걸어 다니며 노래를 중얼거렸다. 아기는 이내 울음을 그쳤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를 안고 걷다 보니..

우리 첫째 키울 때가 생각이 났다.

이제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나.라고 해놓고선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첫째 아이는 유난히 예민했다. 특히 잠을 잘 못 잤는데 나는 밤중에도 수유를 2~3시간 간격으로 했고 심할 때는 1시간마다 깨서 울기도 했다. 그냥 우는 정도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다 숨이 넘어갈 듯 울어서 한밤중에 애가 잘못되는 줄 알고 응급실로 달려간 것만 두 번이다.

시어머니는 애 셋을 키우신 데다 고모들 애들까지 키우셨고, 나의 시누의 딸, 그러니까 손녀까지 키우셨다. 그렇게 아기를 여럿 키워본 시어머니도 나에게 우리 애처럼 우는 애는 처음 봤다고 했다.

난 아이를 낳고 70일간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자본 일이 없다. 등에 센서가 달렸는지 눕히기만 하면 우는 아이 때문에 늘 아이를 안고 소파에 기대어 잤다.

이러다 내가 죽지.. 싶을 때 나는 살기 위해 각종 육아서적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책에서 배운 대로 아이를 눕혀서 재우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눕자마자 2시간을 울어댔는데 그걸 참아내는 나를 보며 남편은 나의 모성애를 의심했고 이는 잦은 싸움으로 이어졌다.

다음날은 1시간 그다음 날은 30분 울더니 며칠 지나고는 10분 안에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기에 나는 늘 좀비 상태였다.

아이는 5살이 될 때까지 통잠을 잔 적이 없이 늘 한 두 번은 깼다. 밤마다 검색창에 '야경증'을 검색하곤 했다.

맘카페에 잠 못 자는 아이로 글을 도배하기도 했다. 다들 시간이 약이라고 했지만 사실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겐 그 시간이 오지 않을 것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우린 결혼하고 시댁에 참 자주 갔다. 일주일에 한 번, 못해도 한 달에 2-3번씩 갔다. 시댁에 가면 가까이 사는 시누들도 다 모여 같이 잤다. 그래서 밤중에 아이가 깨서 울면 악을 쓰는 아이를 포대기로 둘러업고 밖으로 나와 아파트 단지를 1시간씩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를 재워서 들어온 후에 포대기를 풀고 눕히는 순간. 뿌앵~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지냈지? 싶다.

지냈다기보다 견뎠다고 하는 게 맞다.

나는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아이 키우는 게 힘들어서 울기도 했지만 사실 그 보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더 많이 울었다.

나는 13살에 엄마와 헤어졌기에 사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것도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훨씬 많기에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지갑 속에 엄마랑 동생이랑 6학년 졸업식날 찍은 사진( 같이 찍은 마지막 사진)을 넣고 다니면도 엄마가 보고 싶을까 봐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누가 "엄마 안 보고 싶어?"라고 물어봐도

"생각이 잘 안 나서 그런지 별로 안 보고 싶어"라고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첫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나 키울 땐 어땠어? 나도 많이 울었어? 난 잠 잘 잤어? 잠 안 자면 엄마는 어떻게 했어?"

남편이랑 다투고 나서도 "엄마는 이럴 때 어떻게 했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질수록 우는 날도 많아졌다.


초등학교 4학년 운동회 때 오래 달리기 시합을 나간 적이 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죽을 것 같았는데 끝까지 참고 뛰어 결승전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고 말았다. 나중에 깨어나서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맞았다. 숨도 못 쉴 것 같이 죽겠으면 그냥 뛰지 말아야지 등신같이 그걸 다 뛰고 앉았냐고. 독한 년.

어쩌면 엄마말처럼 난 독한 년인지도 모른다. 독하게 엄마가 보고 싶은 걸 참으며 살았다. 결승전에 들어오고 쓰러졌던 그때,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던 것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몰아서 울었다.


너무 일찍 나를 떠나버려 야속하기만 했던 엄마, 그것도 정을 떼려고 했던 것인지 늘 나를 모질게 다그치고 어린 나이부터 동생을 위해 엄마 역할까지 하게 한 엄마. 그리움보다는 원망이 더 많이 남았던 엄마인데 아이를 키우는 동안 매일같이 엄마를 용서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한 순간도 이해 못 할 것 같은 엄마였는데, 아이를 키울수록 엄마가 이해되는 날도 늘어간다. 엄마를 이해하면서 나는 엄마가 되어간다.


친구는 우리의 소울푸드인 닭발을 먹으면서도 아이의 작은 소리와 뒤척임을 확인하며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엄마가 돼 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던 그 시절을 견디게 해 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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