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킴과 정준영의 결승전이 있던날, 그다음 날이 임용시험일이었기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시험 당일날은 일어나자마자 인터넷에 들어가 최종 우승자를 검색해 보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
교사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했다. 평소에 아이돌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프로듀서 101을 시청하며 문자투표를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넌 저렇게 어린애들 줄 세워서 경쟁시키는 게 보기 좋냐?"
"난 꿈을 향해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데?"
"저거 다 짜고 치는 거지~억지로 감동 만들어 내고.. "
비록 시청률을 위한 악마의 편집이니, 짜인 각본이니 해도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라고 믿었다.
어린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위인전은 '헬렌켈러'였다.
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낸 사람들의 이야기, 포기하지 않고 힘든 시기를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히어로의 이야기가 극장가를 휩쓸 때도 권선징악의 뻔한 스토리라고, 눈물 짜내는 촌스러운 신파라고 욕하는 영화를 즐겨봤다. 오죽하면 제일 좋아하는 사자성어도 '고진감래'일까.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 계발서든 소설이든 주인공이 시련을 마주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 가는 과정, 꿈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이야기를 보면 마음이 요동친다.
자기 계발서를 자기 자랑이나, 뻔한 스토리의 감성팔이라고 욕해도, 소설을 소설이니까 가능한 말도 안 되는 허구라고 폄하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도 했고,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었다. 그런 뻔한 이야기들이 나를 버티게 해 줬다.
이렇게 말하는 나의 닉네임이 '슈퍼엄마'라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육아휴직 후에 복직을 할 때 연고하나 없는 강원도에 3살 된 아이랑 단 둘이 지냈다.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하루종일 사춘기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퇴근을 하자마자 3살 아이를 혼자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재우고.. 매일 혼자의 힘으로 해냈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살면서 한 손에 아이를 안고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어깨와 턱사이에 끼고 다녔다. 제일 싸다는 이유로 2층을 계약했는데, 2층이라는 이유로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유모차나 자전거를 매번 들고 날랐다. 그렇게 4년을 버티고 돈을 좀 모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했는데 집주인은 전세금을 들고 날랐다. 삶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다.
그 와중에도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일은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책은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라는 책인데 아들은 나에게 "엄마는 슈퍼엄마야"라고 자주 말해줬다.
나의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의 독서기록이나 습관 기록 등을 보고 '대단하시네요. 이름처럼 슈퍼엄마시네요'라고 종종 말한다. 최근에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도 처음엔 나를 '슈퍼엄마'라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함께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슈퍼'와 '엄마'의 어디쯤에 있다고 느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울컥했다.
슈퍼가 되고 싶은 엄마, 가끔은 날기에 실패하고 슈퍼와 엄마의 중간쯤에서 방황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엄마.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지만 그 말이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
이제슈퍼스타 k는 끝났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 적응하고, 타인에게 무관심하며 사는데 감흥이 없어질만할 때, 그들의이야기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리고 언제든지 다시 날 수 있다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