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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들키는 가장 쉬운 방법

by 슈퍼엄마

청소년기에 꼭 해야 하는 중요 일 중 하나가 '나를 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은 친구를 사귀는 것도 나에게 맞는 진로를 찾는 것도 결국 나를 제대로 알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고민과 탐구 없이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일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일처럼 위태워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까?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독서'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이들과 책을 읽고 나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한 구절을 찾아 읽고 그 이유를 말해보도록 한다. 책에 대한 감상이나 자신의 생각을 단번에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상 깊은 구절 하나를 골라 그대로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인상 깊다는 것이 뭐예요?"

가끔 이렇게 물어오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때는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찾아보라고 한다. 어떤 문장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 일수도 있고, 그 말에 공감하기 때문 일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말이 이해가 안 되거나 불편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이든지 한 번에 지나치지 못하고 마음에 걸리는 문장, 시선이 조금 오래 머문 문장을 고르도록 한다.

그리고 그 문장이 좋거나 불편한 이유를 말하게 한다.


이번주에는 독서동아리 아이들과 <학교 안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과 그 이유를 말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보이는 반응은 비슷한 상황에서 누적된 감정의 표출이기 쉽거든. 감정은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냐. 아주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이는 게 감정이거든.- 이 구절이 인상 깊었어요. 요즘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자꾸 울컥 화가 나거나,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내가 왜 이러지? 전엔 안 그랬는데.. 하고 생각했어요. 그럴수록 자꾸 자책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아마 그동안 힘들었던 게 쌓였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남의 감정을 읽으려고 애쓰면서 남의 표정을 살피느라 바빠. 그러다 정작 내 감정을 소홀히 해서 마음을 다치곤 하지.- 이 구절이요.. 그냥 제 이야기 같아요. 전 친구들도 엄청 배려하고 남의 눈치도 많이 보는데 정작 저한테는 그러지 못한 거 같아서요."


"자신이 누군인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묻지 말고 행동하라. 행동만이 당신이 누구인지 설명해 주고 정의해 줄 것이다. - 제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봐야 제가 뭘 잘하는지 알 것 같아요."


"학교에서의 평가는 거의 대부분 공부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있잖아. 공부 말고 다른 건 그리 잘하고 못하고의 평가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다른데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자기가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곤 해.- 저는 제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냥 공부만 못하는 건데 그것 말고는 다른 걸로 평가받아본 게 없어서.. 그래서 이 말이 와닿네요. "

<소년을 읽다>를 쓴 서현숙 선생님은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마음을 들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자신의 관점이나 처지에서 책을 읽기 때문에 저마다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 다르다. 연인과 헤어진 후에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가 온통 내 이야기인 것만 같은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구절이 마음이 걸린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이들은 인상 깊은 구절을 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렸다. 그렇게 마음을 들켜버린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우와.. 어떻게 같은 걸 고른 사람이 하나도 없냐? 신기하다" 누군가 놀라며 말한다.

같은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역시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나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책 대화를 마치고, 오늘 처음 모임에 참여한 아이에게 "오늘 어땠어? 할만했어?" 하고 물었다.

"눈물 날 것 같았어요."

"눈물? 진짜??"

"네.. 위로받는 기분이었거든요."


가끔은 책 한 권이 아니라 한 구절에서 위로를 얻기도 하고, 해답을 발견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고 책 내용은 잊힐 것이다. 그날 우리가 했던 말도 잊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받은 그 위로의 마음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기억이 우리를 다시 책 앞으로 불러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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