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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사는 아이

by 슈퍼엄마

중학교 2학년 국어 첫 단원에서는 시 속의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며 시를 감상하는 법을 배운다.

시에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하여 시와 노랫말을 함께 감상하도록 했다.

그중에 가족과 관련된 노랫말 중 다이나믹듀오의 <어머니의 된장국>을 감상하는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는 평소 공부에 흥미도 없고 수업시간에도 잘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제법 진지하게 쓰고 있길래 가까이 다가가 아이의 글을 읽어보았다.


"시 속의 말하는 이는 시골에 살다 온 30살 정도의 아저씨 같다. 멀리 와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집에 가는 것도 힘들고 자기 집에서 조미료 든 것만 먹으니까 질리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집밥도 먹고 싶은 것 같다.

내 생각엔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어머니가 보고 싶은 느낌이 난다."

비록 짧고 투박한 글이지만 시 속의 화자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를 상상해 보고 자신의 감상을 덧붙인 게 시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감상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 보도록 하고 멋진 감상이라고 칭찬도 해주었다.

아이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얼떨떨해하면서도 싫지 않은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며칠 후 아이가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저 이거 샀어요."

"시집? 시집을 샀다고?"

"네. 재밌어 보여서요"

책 겉표지에는 제 것이라는 티를 내듯 이름도 또렷이 적혀있었다.

수업시간에 시를 감상한 이후에 시에 흥미가 생겨 시집을 돈 주고 샀다는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이 맛에 교사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오늘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어제 중간고사가 끝났기 때문에 오늘은 수업시간에 답안을 공개하고 서술형 점수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아이는 서술형 30점 만점에 6점을 맞았다.

아이는 점수를 확인하더니 "전 역시 국어를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실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국어를 못하긴~ 시도 제대로 감상할 줄 알면서!!"

"그럼 뭐해요~ 시험을 못 보는데.."

순간 제대로 받아치질 못하고 "다음에 잘 보면 되지.."라며 어쭙잖은 격려의 말을 건넸다.

뭔가 김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인정과 칭찬의 말보다도 시험 점수가 아이에게는 더 크게 다가온 걸까? 물론 국어에는 여러 영역이 있기 때문엔 시를 감상할 줄 안다고 해서 국어를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시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시험 점수로 인해 꺾여버릴까 봐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예전에 어느 시인이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쓴 시가 교과서에 실렸는데 시와 관련된 시험 문제를 풀었더니 반도 못 맞았다고 하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시나 소설을 잘 쓰고, 문학 작품을 즐기며 감상할 줄 아는 것과 국어 문제를 잘 푸는 것은 염연히 다르다. 그 다름 사이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무엇이 아이의 삶에 필요한가를 묻고 고민하게 된다.

뭐든 정답이 한 가지만 있을 리 없지만, 적어도 제 돈을 주고 시집을 사는 아이라면 좀 더 국어시간이 즐겁고 기대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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