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책, 그리고 만남

by 슈퍼엄마

독감에 걸려 주말부터 크게 아파서 이틀간 출근을 못하고 오늘에서야 학교에 갔다.

학교에 못 가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수업은 어쩌나'이다.

이런 경우 보통 수업 교체가 이뤄지기 때문에 내가 못한 수업을 누군가 대신해줘야 한다. 게다가 담임도 맡고 있으니 아이들 조종례부터 담임의 역할도 다른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일을 쉬면 누군가에게 여러모로 피해가 가게 되어있어 구조라 쉬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틀을 쉬고 출근했는데 여전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지역 국어교사 들과 <전사들의 노래>라는 책을 읽고 모여 책의 저자를 우리 학교로 초대해 강연을 듣기로 한 날이 오늘이기 때문이다.

<전사들의 노래>를 쓴 홍은전 작가는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다. 2020년에 <노란 들판의 꿈>이라는 책을 읽고 강원도 진로 교육원에서 한 번, 작년에 <버스를 탈 권리>를 읽고 원주 횡성 독서 아카데미에서 독서동아리 아이들과 한 번, 그리고 오늘이다.


홍은전 님은 나와 마찬가지로 국어교사를 꿈꾸는 사범대 학생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량진 고시원에서 청춘을 받치던 중 줄 세우기와 경쟁하듯 달리기에 지친 어느 날 장애인 야학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국어교사가 되는 대신에 노들야학 교사가 된다.

장애인 야학인 '노들야학'에서 13년간 일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노란 들판의 꿈>이다. 그리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해 다룬 책이 <버스를 탈 권리>이다.

난 그때 '이동권'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이동권'은 마치 공기와 같다. 없으면 살 수 없는데 너무 당연해서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것이다. 나 역시 이동하는데 권리가 필요한 지 몰랐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이 권리를 갖기 위해 외롭고 처절한 싸움이 일어난다.


앎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알수록 내 안에 들어와서 차곡차곡 쌓이는 앎, 다른 하나는 알게 되는 순간 지금 까지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는 앎.


홍은전 작가님은 만날 때마다 나의 앎, 나의 세계를 자꾸 두드리고 그때마다 내 삶은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내 생활과 삶에 문제를 끼치지 않아서 모를 뿐이지 없는 일이 아니다.

오늘 구걸하는 소년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사람들이 구걸하면 '굴복', '비천'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이것이야 말로 자기 운명과 '대결'하여 싸우는 것 아니냐고 이건 왜 노동이 아니냐고.

그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구걸'과 '굴복'과 '권리 투쟁'.. 이런 단어들이 오랫동안 머릿속이 남았다.


분명 처음 강연을 들었을 때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부지런히 바쁘게 내 삶을 살아가느라 다 잊고 말았다.


강연을 듣고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저희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연세도 드신 후 역의 엘리베이터를 아주 잘 이용하고 계시거든요. 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 장애 당자자분들이 온몸으로 싸워 만들어진 거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됐어요. 제가 지금 누리는 당연함 들은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싸워낸 결과일 거예요. 그 열매를 너무 쉽게 당연하게 누리면서도 고마움을 몰랐네요. 반성합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간다. 건강도 평온한 일상도.. 내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고 사는 것만으로도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삶의 균열을 일으키는 책과 사람과의 만남이 삶에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은 조금 다른 마음과 시선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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