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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Aug 24. 2022

인생을 바꾼 일기장

중학교 때는 소설을 좋아했다. 수업시간에 책상에는 교과서는 펼쳐놓고 무릎 위에는 소설책을 꺼내놨다. 그리고 선생님 몰래 야금야금 읽는 묘미가 있었다. 수업시간이 소설책을 읽다가 눈물이 나와서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그때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

그러나 문학적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진작에 포기했다. 

  

고등학교 때는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불후의 명작들이 배출되던 시기이었다. 이땐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다. 다음 카페에 글쓰기 동호회에 가입하고 게시판에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러나 대입 수능을 앞두고 글 쓰는 일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대학생이 되고는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방마다 티브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때는 주로 라디오를 들었다. 밤에 라디오를 들으며 사연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두 시 탈출 컬투쇼 사연 진품명품에 내 사연이 나오기도 했다. 그 후로도 라디오에 사연이 뽑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 때는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돌아보니 나는 언제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나는 왜 쓰고 싶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겨울방학을 하던 날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방학식은 이 학교에서 하지만 개학식은 다른 학교에서 하는 것이다. 그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아. 방학 숙제는 안 해도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두 달 남짓 실컷 놀고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서 개학식을 맞이했다. 

첫날 선생님은 방학숙제를 걷으셨다. 

"선생님, 저는 오늘 전학을 와서 숙제를 몰라서 못했어요..."

숙제를 알았다면 안 해올 리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래. 그럼 너는 일기만 내렴~"

이라고 선심 쓰듯이 말씀하셨다. 

"네~"

당황하는 기색을 내지 않고 대답했지만 그 순간 내 심장은 크게 요동쳤다. 

그 시절 일기는 전국 초등학교의 공통 숙제이기도 했으니깐 다른 숙제는 몰라서 못했다 하더라도 일기는 썼겠지.. 하셨던 듯하다. 

그날 학교가 끝날 때까지 내 머릿속엔 온통 일기 생각뿐이었다. 

그날 나는 집에 오자마자 부랴부랴 두 달 치의 밀긴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내는 건 둘째치고 팔이 너무 아파서 힘들었다. 그러나 전학 온 첫날부터 숙제도 안 해온 아이로 찍히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날 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써내려 갔다. 

그러다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시!! 일기를 꼭 줄글로 써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마침 4학년 때 동시 쓰기를 배웠던 참이었다.  그래서 일기를 시의 형식을 빌려 '짧게' 쓰기 시작했다. 


제목 : 수요일

오늘은 수요일

즐거운 수요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 요. 일


수요일엔

경찰청 사람들 보며

우리 가족 모두 하하호호


뭐 대충 이런 식이었다. 

덕분에 나는 하루치 일기 쓸 시간에 3~4일 치는 거뜬히 쓸 수 있었고, 다행히 숙제를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선생님께 일기를 제출했다. 

선생님이 내 일기를 펼쳐보셨고 곧이어 수업 종이 쳤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은

"오늘 전학생이 일기를 냈어요." 순간 나쁜 짓을 하다 들켜버린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갑자기 저 얘길 왜 하시지? 

" 일기를 참신하게 잘 써서 여러분들에게 한 번 소개해주고 싶어요"

그 순간 아이들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진심이신가? 아님 나를 망신을 주려고 그러시나?' 선생님의 의중을 알길 없었다. 

"영영아 친구들에게 일기 한 두 개 읽어줘도 될까?"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내 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게 뭐야? 저게 일기야?' 싶었을 것 같다. 그러나 선생님이 잘 썼다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 같다. 


"야 너네 반 전학생 왔다며? 어때??"

"음.. 글을 잘 쓴대."

그 후로 나는 '글 잘 쓰는 전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게 싫지 않았다.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던 내가 특별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을 한다. 

그때 선생님이 "이게 뭐야? 너 일기 쓰기 싫어서 꾀부렸지?"라고 꾸중을 하셨다면 어땠을까? 

그럼 나는 평생 글을 쓰지 않고 지냈을까?


'글을 잘 쓰면 칭찬을 받는구나.'

'나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구나.'

그때 이후로 나는 처음으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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