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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Feb 13. 2024

새해 다짐

헤프게 살자.

어린 시절부터 곧잘 남을 흉내 냈다.

중학교땐 전도연 성대모사로 친구들을  즐겁게 했고 통아저씨 춤을 춰서 쓰러지게 했다. 중학교 축제 때는 허리케인 블루를 흉내 내어 학교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개그 욕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질 않아 소개팅에 나가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을 흉내 냈다. 소개팅 상대는 연인이 아닌 친구가 되었다.

즐거움을 주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탓에  학교에서도 잘 가르치는 일보다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학생들과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고수해 오던 개그감을 잃어버린 건 언제부터였을까?

 

"농담으로 한 말인데 뭘 그렇게 정색을 하냐?"


남편의 농담 한마디에도 기분이 팍 상해 죽기 살기로 덤벼들기도 하고 학생의 농담 한마디에 예의가 없다며 훈계를 하기도 했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건 아닌지, 사는 너무 팍팍한 아닌지, 슬쩍 걱정이 되다가도 '나이가 들면 다 그렇지 뭐. 어린애도 아니고.. 농담 따먹기 이젠 유치하고 시시해. 좀 헤퍼보이기도 하고..' 이렇게 합리화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이번 설에는 친정에 내려갔다가 오랜만에 작은 아빠 가족을 만났다. 목회 일을 하시는 작은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늘 내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고, 작은 엄마는 부모 보살핌 없이도 잘 커줬다며 나를 늘 대견해하셨다.

작은 엄마께서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표현하며 옛날 일들을 소환하기 시작하셨다. 마흔이 넘었지만 작은엄마 눈에는 아직도 어린 시절 모습이 눈에 선하신가 보다.

"나 시집와서 명절에 몇 시간씩 차 타고 내려오는데, 그땐 차가 좀 막혔니? 고생스럽고 짜증도 나고.. 그래도 네가 반겨주면서 성대모사해 주고 춤춰주고 그거 보는 재미에 피로가 싹 가시곤 했어~"

"에이~ 작은엄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남편과 애들 앞에서 괜히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얘~ 웃음을 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그게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는 거란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큰아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한다.

"엄마가 우리는 안 웃겨주는데? 맨날 화만 내는데?"

순간 당황하여 입으론 웃었지만 표정관리가 잘 안 되었다. 그러나 작은엄마께서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엄마도 일하고 집에 오면 힘들어서 그래~ 그럴 땐 너희가 재밌게 해 드려~그럼 같이 재밌게 해 주실 거야. 너네 엄마 되게 재밌는 사람이야~" 

작은엄마 말씀을 듣고 큰아이는 요즘 한창 연습 중인 춤이 있다면서 임시완 버전으로 '널 그리며' 댄스를 선보였다.

"어머어머 쟤 엄마 피를 물려받았네~"

아들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고 온 가족이 모처럼 박수까지 치며 크게 웃었다.

많은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더욱 뿌듯해하고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껴졌다.

' 함께 웃 거, 그게 행복이지..'


 웃음은 전염이 된다. 누군가 웃는 모습을 보면 함께 웃게 된다. 그래서 웃기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기쁨들을 볍게 여긴 것 같다. 그나마 밖에 나가서는 헤헤~거려도 집에 들어오면 가면을 집어던지고 잔뜩 찌푸리고만 있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내 가족들에게는 웃음에 더욱 인색했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올해는 좀 헤프게 살기로. 헤프게 농담도 많이 하고, 헤프게 많이 웃기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했다.

"기대해. 엄마가 많이 웃겨줄 거니까~"

말만 들어도 좋은지 아이들은 기대감 가득, 눈을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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