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은 6명이 함께 쓰고 있지만 다들 커튼을 치고 있다. 그렇게 공간은 분리하였으나 모든 소리가 공유되고 있어 전혀 사생활 보호는 되지 않는다.
아이와 나는 1인 침대 위에서 먹고 자는 것은 물론 그 외에 모든 걸 해결하고 있다. 아이도 이제 제법커서 둘이 쓰기엔 침대가 많이 비좁지만 여전히 엄마 배를 베개 삼아 엄마 다리를 쿠션 삼아 제 몸을 의지하는 딸 덕분에 꼭 붙어 지내고 있다. 다만 자다가 링거를 꽂은 주사가 빠지진 않을까 좁아서 불편하진 않을까 걱정되어 여러 번 깨었다.
집에서는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할 시간)이더니 병원에서는 먹밥먹밥(먹고 나면 밥 먹을 시간)이다. 달리 할 것이 없기에 끊임없이 먹고 있다. 들어오기 전에 귤이랑 딸기, 고구마랑 계란까지 삶아서 가지고 왔다. 그것도 모자라 산책 삼아 병원 매점에 가서 간식거리도 사 온다. 아이는 웬일로 엄마가 간식도 크게 제한하지 않고 영상도 많이 보여준다며 좋아한다. 엄마의 후해진 인심 덕분인가 아이의 컨디션은 최상이다. 엄마도 먹어보라며 자갈치를 아이스크림에 찍어 건네주는데, 단짠의 조합이 훌륭해 자꾸 손이 간다.
그랬더니 이젠 왜 이렇게 많이 먹냐고 타박이다.
"야 이거 내 돈으로 산거거든!!"
아이랑 둘이 심심해서 어찌 버티나 싶었지만 시간이 꽤 잘 간다. 영상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알파벳 공부도 한다.(한글 공부는 하기 싫어한다.)이 모든 걸 태블릿 pc로 하고 있으니 와이파이만 터지면 무인도에 있어도 심심할 틈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넷플릭스라도 볼 걸..'
무선이어폰을 챙겨 오지 못한 걸 아쉬워했으나 덕분에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나름 생산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자유롭지 않은 생활이지만 그래도 집안일에서는 해방되었으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컨디션이 좋아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둘 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일 오전엔 초음파 검사가 있어 아침에 금식을 해야 한다. 검사 끝나고 병원 식당이 내려가 맛있는 것도 같이 먹어야겠다.
지난주 금요일에 겨울방학 계획에 대한 글을 썼는데 모든 게 무산되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란 걸 알면서도 매번 이렇게 뒤통수를 맞는다. 그러나 맞았다고 화내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이 생활을 즐겨보려고 한다. 결혼 전에는 계획이 어긋나거나 뜻대로 일이 안 풀리면 화가 나고 속상하더니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런 마음이 확실히 줄었다. 엄마의 스케줄은 아이의 컨디션이 좌우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며 겸손과 내려놓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