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임 하는 선생님이 창비교육에서 지원하는 교사 독서모임에 당첨되셨다고 청소년 소설을 나눠주셨다.
요즘 청소년 소설은 표지도 너무 예쁘고, 내용도 아이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 공감도 하고 위로도 받고.. 참 좋은 것 같다.
라떼는 이런 책이 없었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읽을 책 많아 좋겠네...
어린 시절부터 전래동화와 세계명작을 열심히 읽던 어린이는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서 학습만화의 세계에 눈을 떴다. 속담도 고사성어도 모두 학습만화로 뗐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읽을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이미라님의 순정만화는 초등학교와 함께 졸업했고, 하이틴 문고에서 나오는 로맨스 소설을 열심히 읽다가 어느 순간 '유치해'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엔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가 따로 없었다. 그때 청소년이 읽을만한 책으로는 '00 대학교추천 필독서'나 '세계문학 전집' 등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문학적 소양이 높은 학생은 아니었는지 그런 책들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중학교 때 국어시간에 교과서 실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다 눈물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짝꿍이 "너 울어??" 라며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물었을 때 "설렁탕을 사 왔는데 먹지를 못하잖아. 어떻게 눈물이 안 나니?"라고 반문했다. 문학적 소양은 그리 높지 않아도 문학적 감수성은 충만했던 것 같다.
도서관에 가서 현진건의 다른 소설을 찾아 읽었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무영탑>.. 그러다 그 옆에 김동인도 읽고 이효섭도 읽고 염상섭도 읽고..
그렇게 한국 현대 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중3 학기말에는 수업시간에 비디오를 보여줬는데 친구들이 'HOT' 무대 영상 녹화 테이프를 가져와서 틀곤 했다. 그 당시 젝스키스 팬이었던 나는 크게 흥미가 없어서 맨 뒷자리에 앉은 친구랑 자리를 바꿔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현대소설 작품들을 열심히 읽었다. 소설을 읽다 보니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작가론'을 찾아 읽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에 나는 것이 <삼대>로 유명한 염상섭의 호가 '횡보'인데 항상 술에 취해 옆으로 걸어 다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날개>를 쓴 이상이 진짜 사랑한 연인은 누구였는지를 비롯해서 작가들의 사생활을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작품이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생각을 하면 작품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수능 공부를 하느라 문학 작품을 읽을 기회가 많았다. 문제는 수능 문제집을 풀다가 지문에 실린 소설이 너무 재미있으면 원작을 찾아 다 읽었다는 것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소설 읽기에 매진한 탓에 시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이것이 다 국어교사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믿어본다. ㅎ
그 당시 문학을 통해 만난 세상은 내게 너무 흥미로웠고 신기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을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세상 속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내가 옥희의 어머니라면 사랑방 손님과의 사랑을 이루려고 했을까?'
'내가 김첨지라면 일을 나가지 말라고 하는 아내의 말을 들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그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더 넓고 큰 세상, 그리고 그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 모든 삶은 저마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게 가끔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문학을 통해 위로받고 더 큰 세상을 상상하며 그렇게 지나갔다.
문학이라는 것이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100년 전이든 지금이든 크게 다르지가 않다. 오히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것을 문학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소설을 많이 읽어볼 계획이다. 많이 읽고 재밌는 소설 목록을 추려서 2학기에 아이들과 읽을 작품을 정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