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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破果) — 쓸모없음의 끝에서 비로소 빛나는 순간들

구병모 소설 < 파과>를 읽고

by 슈퍼엄마


구병모 작가의 『파과』는 오래전부터 읽고 싶던 소설이었다. 최근 영화로 개봉되었다는 소식에 더욱 관심이 생겼고, 마침내 이번 주말, 책장을 펼쳤다.


소설을 덮고 난 지금, 영화는 아마 보지 않을 것 같다. 잔인하게 찌르고, 자르고, 조르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먼저 그려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장면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기대 이상이었다.


구병모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 속에 들어간 것처럼 몰입하게 된다. 읽으면서 전도연과 설경구가 주연한 영화 『길복순』이 떠올랐다. 『파과』의 주인공 역시 여성 킬러이지만, 60대가 넘은 노년의 여성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녀는 한때 누구보다 날렵했고, 냉정했고, 쓸모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노쇠했고, 쓸모없어졌으며, ‘퇴물’이라 불린다. 그 모습은 제목 그대로 파과(破果), 흠집나고 이미 무너지고 있는 과일을 닮아 있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네일아트'로 시작해 ‘네일아트’로 끝나는 구조였다.
“의미 없고, 쓸모없으며, 예쁘기만 한 것.(69p)”
한때는 그런 것을 외면했지만, 이제는 그런 무용한 것들에 마음이 간다는 표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 역시 한때는 실용성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무엇이 남는가, 무엇에 쓸모가 있는가를 먼저 따졌다. 그런데 요즘은 순간의 기쁨, 성과 없는 노동, 무용한 아름다움 같은 것들에 마음이 끌릴 때가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가치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변화가 소설 속 킬러의 감정을 통해 전해진다.


‘동정과 연민 따위는 사치’라 믿던 킬러는, 폐지를 줍는 노인의 신문을 대신 주워주다 실수를 하고, 과일가게 부부의 삶에 연민을 가지게 된다.
나는 이런 변화가 갑작스럽지 않고 단지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오래전, 죽여야 할 대상의 아들이 약을 삼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성껏 가루를 빻아 챙겨주던 모습에서 이미 그 단서를 본다. 킬러라는 이름 아래 숨겨졌던 감정들이 나이와 함께 더 이상 감춰지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지켜야 할 것은 곁에 두면 안 된다.”는 류의 가르침에 따라 그녀는 반려견마저도 ‘기른다’기보다는 ‘곁에 두는’ 존재로 여기며, 거리를 둔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갖게 된다.
신체뿐 아니라 감정도, 나이 듦과 함께 바뀌어간다.

『파과』는 단순한 액션이나 스릴러가 아니다. 노화와 상실, 인간성의 변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다룬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김장감 넘치고 극적인 스토리보다 그녀의 손끝에 남은 네일아트에 더 마음이 갔다. 그 덧없고 예쁘기만 한 것들이, 때론 우리를 끝까지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누구나 파과가 된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조금씩 무너지고, 썩어가는 그런 날이 온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온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더욱 빛나는 것은 아닐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파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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