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몇 번의 비행의 기회가 있었다.
"오늘 우리 집 가서 뮤뱅 볼래?" 그날은 유승준 2집 컴백 무대가 있는 날이었다.
친구는 나만 부른 게 아니라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을 더 불렀다. 그 애들은 나를 잘 몰랐지만 난 그 애들을 알고 있었다. 무서운 소문과는 달리 아이들은 또래의 여느 애들처럼 평범해 보였다. 헛소문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하고 있을 때 그 애들을 담배를 꺼내 하나씩 나눠가졌다.
내게도 건넸지만 난 받지 않았다. 그때 살짝 웃는 그 입술이 '넌 아직 애구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이들은 재떨이 대신 종이컵에 침을 모아 뱉고 거기에 담뱃재를 털었다. 그래야 담뱃재가 날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굴뚝같은 연기를 마시며 유승준의 컴백 무대를 함께 보았다. 그날 이후로 난 그 친구와 놀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남녀차별이 심했다. 남자인 동생은 부엌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내게 동생이 먹을 물도 떠오게 시켰다. 할머니는 간섭과 참견이 심했다. 동네를 쓸고 다니겠다며 내 바지를 발목까지 싹둑 자르고, 편식을 고치겠다고 내가 싫어하는 음식만 상에 올렸다.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온종일 했다. 그리고 가출대신 탈출을 선택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방법으로.
부모님은 가정형편을 이유로, 그리고 동생을 들먹이며 장녀의 역할을 강조하며 집에서 학교 다니길 원했지만 끝까지 모른척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공부했다.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탈출에 성공했다.
읍에 살던 나는 시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갔다. 한 학년이 600명 정도 되었는데 그중에 나와 같은 중학교 출신은 한 명이었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도 한 명뿐이었다.
아이들은 중학교 출신들끼리 삼삼오오 어울렸다.
"넌 어느 중학교에서 왔어?"
얼굴에 '촌년'이라고 쓰여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 주눅이 들었다.
문학 시간에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읽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잔혹한 현실.. 청무 밭인 줄 알고 파도에 날개가 젖은 나비가 이곳에도 있었다.
하루는 책상 서랍 속에 딱지 모양으로 접은 쪽지가 들어있었다.
'우리 친하게 지낼래?'
내게도 친구가 생겼다. 우린 방과 후에 자주 함께했다.
"너 그럼 엄마랑 둘이 살아?"
"엄마는 왔다 갔다 하시고.. 나 혼자 있는 날이 많아."
"와? 진짜??? 정말 좋겠다. 나 혼자 사는 게 꿈인데!"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아.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학교 끝나고 너네 집 가서 놀자."
방과 후에 우리 집은 아니, 내 방은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하루는 엄마가 말도 없이 불쑥 집에 오셨다. 내게는 엄마가 불청객이었는데, 엄마는 친구를 불청객 대하듯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지. 세상에.. 머리 하며, 화장한 거 하며..."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앞으로 쟤랑 놀지 마'라고 하는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을 나이였다.
하루는 친구가 자기의 중학교 때 친구들을 소개해 줬다. 아이들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담배를 건네자 친구가 "쟤는 담배 안 피워."라고 했다.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면 난 조금 떨어져서 다 필 때까지 기다렸다.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어느 날 친구가 은밀하게 내게 말했다.
뚫어놓은 술집이 있다고.
나를 그곳에 데려갔다. 그 중학교 때 친구들도 함께였다. 자주 가는 단골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친구는 내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잘못짚었다.
단골이라던 술집 사장님은 나를 보더니 아가씨처럼 보이는 친구들 틈에서 '쟤는 너무 학생 같다'라며 오늘은 술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다 학생인데요.?' 그 말을 속으로만 삼켰다.
내가 너무 '학생'처럼 보이니까 자꾸 뺀찌 맞는다고 속상해하는 친구를 본 날, 그날 이후로 친구를 집에 데려가지 않았다. 우린 조금씩 멀어졌다. 난 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과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비행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내게 거창한 목표나 뚜렷한 가치관이 있어서는 아니다. 물론 충동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가끔은 지금 현실에 대한 불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사춘기라는 정당성을 내세우며 그 세계로 편입되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난 내가 너무 소중했다. 이기적인 인간이라서 그랬을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몇 없었다. 내게 함부로 하는 것들에게 분노했다. 그래서 나는 내게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나만 생각하자. 나를 위해 살자.' 그렇게 되뇌며 그 시절을 견뎠다.
그것이 그 시절 나의 최선이었다.
*임솔아 작가의 <최선의 삶>을 읽고 떠올린 나의 학창 시절, 그리고 그때 내게 최선이 무엇인지 떠올리며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