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다. 이제 복직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달력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쉼’의 시간이라고 불렀던 이 시간이 정말 나에게 쉼이었을까. 아니, 그보다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처음 휴직을 결심했을 때, 나는 단순히 쉬고 싶었다. 아이 둘을 돌보며 학교 일까지 병행하는 삶에서 잠시 멈춰 서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를 돌보는 다양한 방식을 기록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다짐 속에 시작된 휴직의 초반, 처음 한두 달은 ‘쉼’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나날이었다. 혼자 영화를 보고, 도서관에 가고,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심심하다고 느낄 정도로 한가했고, 그 한가함이 처음엔 낯설고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첫째는 전학을 했다. 동시에 나의 하루도 다시 분주해졌다. 학교와 집이 멀었고, 자연스럽게 등하교는 내가 맡게 되었다. 아침이면 두 아이를 깨우고, 간단히 아침을 먹이고, 준비시켜 차에 태워 학교로 데려가는 일상이 시작됐다. 이름을 부르면 벌떡 일어나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깨워놓기가 무섭게 마치 술래잡기하듯 잠자리로 다시 숨곤 했다. 어르고 달래고, 가끔은 마사지까지 해주며 겨우 깨워놓으면 바쁜 엄마와 달리 세월아~ 네월아~ 하며 밥 한술을 뜨는데, 굼벵이도 그것보단 날쌔겠다. 나에게 잔소리를 듣고 나면 둘째는 그 속상한 마음을 곧장 오빠에게 풀었다.
"이게 다 오빠때문이잖아~~"
"아, 왜 나한테 시비야?"
"둘 다 좀 그만해~~~~!!!"
등교준비는 나의 고성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의 싸움과 울음, 나의 고함이 섞인 아침 풍경은 하나의 루틴처럼 굳어졌다. 겨우 차에 태워 운전대를 잡고 나면, 뒷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투닥거림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왕복 한 시간의 등굣길이 끝나고 나면, 아직 오전 9시. 하루의 반은 이미 소진된 기분이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비어 있는 듯 비어 있지 않았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머지않은 터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언제든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대기’의 감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집에 가만히 있자니 시간이 허무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운동을 하거나 도서관에 갔다. 땀이 나고 숨이 찬 후에야 정신없는 아침의 감정이 가라앉았다. 책장을 넘기며 조용히 앉아 있을 때면 겨우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사 준비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8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이 슬며시 스며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후회가 없을까. 새로운 것을 배워볼까? 뭔가를 시작해 볼까?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이 시간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간이 아니라, 마무리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을 정리하는 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이 시간을 오롯이 되짚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마무리를 위한 가장 좋은 도구는 언제나 ‘글쓰기’였다.
마침 오늘부터 시작된 글쓰기 모임 ‘북적북적 21기’가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시간을 빌려, 내가 겪은 시간들을 부지런히 정리하기로 했다. 두 아이와 함께했던 일상, 나의 감정들, 나를 변화시킨 생각들, 그리고 읽은 책들. 모든 것을 천천히 돌아보고, 기록하며 복직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쉼은 늘 조용하고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소리치며 보냈던 이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시 나를 다잡고, 복직 이후의 시간을 준비하려 한다. 쉼의 끝에서, 새로운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