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중인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한 게 이것밖에 없네?’
오늘 뭐 했지? 돌아보면 딱히 떠오르는 일이 없다.
그냥 밥 먹고, 빨래 개며 드라마 한 편 본 것. 그게 하루의 전부인 날도 있다.
처음엔 이게 어색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 있을 땐 전쟁을 앞둔 군사처럼 비장하다. 몸도 마음도 바쁘고, 해야 할 일은 줄줄이 밀려온다.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밥을 받자마자 무섭게 먹는다. 원래도 빨리 먹는 편이었지만, 학교에 오니 그게 오히려 강점이 됐다.
음식을 거의 쓸어 담다시피 하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남은 밥은 한입에 털어 넣고 손짓한다.
“이리 와. 여기 앉아~”
먹자마자 계단을 오르며 이미 소화가 다 끝난 것 같다. 업무 메시지를 보내고, 공문을 확인하고, 아이 상담을 하고, 수업 자료도 챙긴다. 그리고 시계를 보면… 아직 점심시간이 5분이나 남아 있다.
밥그릇에 남은 밥풀까지 싹싹 긁어먹듯, 마지막 5분까지 알뜰하게 써버린다.
걸음도 늘 빠르다. 종종걸음으로 교실과 교무실을 오가고, 복도에선 아이들과 얘기하고, 머릿속은 늘 다음 할 일로 바쁘다. 하루가 끝나면 ‘오늘도 정말 많은 걸 해냈구나’ 싶은 뿌듯함이 있다.
그렇지 못한 날엔 오히려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점심을 두 시간 넘게 먹는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주전부리까지 끊임없이 입에 넣으며 점심시간을 연장한다. 눈으론 드라마를 보고, 귀로는 팟캐스트를 듣고, 손으로는 멍하니 뭔가를 만지작거린다.
걷는 속도도 달라졌다.
집 앞 도서관까지 10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느릿느릿 걷는다. 일부러 천천히. 가끔은 더 멀리 돌아가기도 한다. 괜히 벤치에 앉아 낭만을 즐기는 척도 잠깐 하고.ㅎ
예전 같았으면 무기력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했지?’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빨리 먹지 않아도 되는 밥.
계속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몸.
조금 돌아가도 괜찮은 길.
‘오늘 한 게 이것밖에 없네’라는 말 뒤에는 그만큼 나를 쉬게 한 하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하루가 쌓이면, 언젠가는 다시 바쁘게 움직일 날들을 조금 더 단단하게, 가볍게 살아낼 힘이 될 것 같다.
쉬는 것도, 살아내는 일 중 하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