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뒀던 인연을 다시 불러내기

by 슈퍼엄마

며칠 전,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예전에 함께 근무하던 동료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과의 인연은 십 년 전, 첫 발령받은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과목도 다르고 학년도 달랐지만 우리는 동갑이라는 이유 하나로 금세 가까워졌다.

퇴근 후에 함께 맥주도 한 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겨울방학엔 둘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한라산을 함께 오르기도 했다. 등산은 난생처음이라고 헉헉대면서도 내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한다며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후로 서로 다른 학교로 발령받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자주 보긴 어려워졌다. 그래도 우리는 연락을 놓지 않았다. 올해는 선생님의 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나처럼 육아휴직에 들어갔다고 했다. "우리 한번 봐야지!"라는 말이 자연스레 이어졌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공식적인 모임도, 특별한 약속도 아닌 그저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뤄진 만남이었다. 그 자체가 나에겐 드문 일이었다. 평일엔 일하느라, 주말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느라 누군가를 만나려면 미리 약속을 잡고 남편과 스케줄을 조율해야 했다. 그게 번거롭고 부담스러워 어느 순간부터는 업무상 만남이나 여럿이 함께 하는 모임 외엔 사적인 만남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번처럼 평일 낮, 오롯이 한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은 그 자체로도 참 소중했다.


선생님이 있는 춘천으로 내가 가기로 했다. 날도 매우 화창했다. 봄을 주제로 한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운전하는 내내 설레고 즐거웠다. 선생님이 미리 예약해 둔 경치 좋은 브런치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와 내가 좋아하는 빵을 먹으며 근황을 나누었다.

선생님은 작년부터 주말부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이 서울로 발령을 받아 주중엔 아이와 단 둘이 지내야 했고,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일상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올해도 주말부부는 계속되지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더 이상 자신이 없어 결국 육아휴직을 선택했다고 한다.

나 역시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아이를 혼자 돌본 경험이 있기에 그 말이 더 깊이 와닿았다. 서로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위로해 줄 수 있는 마음이 그날 우리 사이에 조용히 머물렀다.


우리는 공원을 산책했고, 춘천 명물인 닭갈비도 함께 먹었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편안했다. 근황을 나눈 뒤에는 자연스레 예전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 전, 함께 놀던 그 시절의 우리. 이제는 전생같이 아득하기만 한 그때를 떠올리며 한참을 웃었고, 지금은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도 서로 다독이듯 이야기했다.


내가 선생님의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사진이 정말 예쁘게 나왔다. 집에 돌아와
“쌤은 예전이랑 정말 똑같다”는 말과 함께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랬더니 그녀가 답했다.
“이렇게 잘 나온 사진은 10년 만인 것 같아. 고마워.”

그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나의 어떤 모습을 여전히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따뜻함이 하루 종일 잔잔하게 남았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며 조용히 웃을 수 있는 시간이 가끔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휴직 중이다. 바쁘게 쫓기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이렇게, 미뤄두었던 관계를 하나씩 다시 살피고 있다.

일상에 치여 미뤄두었던 관계를
휴직이라는 여유 속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것
그것도 나를 돌보는 한 가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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