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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거짓말

by 슈퍼엄마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라며 반문한다.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많이들 하는 핑계이다. 아니, 핑계가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른다.

가끔 교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지나가는 말로

"박 선생, 한가한가 봐~"라는 소리를 듣고 베짱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다. 그래서 가급적 직장에서는 점심시간에만 독서를 하려고 한다.

흔히 책은 한가하거나 여유가 있을 때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쁜 일 끝나고 좀 한가해지면 '책이나 읽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한가한 시간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나 역시 방학을 앞두고는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잔뜩 작성한다. 그러나 막상 방학을 하면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먼저 눈에 보이기도 하고, 시간이 많다는 생각에 미뤄두기도 하니

정작 계획한 책의 절반도 읽지 못할 때가 많다.

지난 육아휴직 때도 일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할 때랑 거의 비슷한 독서량에 놀란 적이 있다. 분명한 건 시간이 많아야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책을 가장 치열하게 읽은 적이 언제 인가 생각해보면 둘째 아이를 낳고 잠잘 시간도, 먹을 시간도 부족하던, 인생에서 가장 정신 차리기 힘들었던 시기이다.

그전까지는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던 독서를 그때부터 필사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에 자주 힘들어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나는 내가 과연 엄마가 맞기나 한 걸까?' '나는 모성애가 남들에 비해 적은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엄마로서의 자질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나쁜 엄마라고 흉볼까 봐 어디 가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내가 본 엄마들은 하나같이 육아를 잘 해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역할에 매몰되고 나를 채찍질 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지고 나라는 존재는희미해져 갔다.


그러한 시기에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책을 펼치고 ‘엄마’에서 ‘나’로 돌아오는 그 시간이 무척 소중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만은 또렷해졌다.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읽고 또 읽었다.

그시기엔 엄마들의 자기계발 에세이를 많이 읽었는데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읽으면서 흠칫 놀랐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 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비슷한 상황과 감정을 느끼면서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그녀들의 도전과 용기에 감동하기도 하고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변화를 꿈꾸게 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 되었다.

그리고 노력하는 나를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삶에서 나를 잃기 쉬운 순간들은 종종 찾아왔다.

너무 바빠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

너무 힘들러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을 때

그때마다 더욱 책을 붙들었다.

책을 읽는다고 지금 당장의 어려움이 해결되거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어느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깜깜할 때 내 앞을 밝히는 작은 손전등 하나쯤 품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혼자가 아닌 것 같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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