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 속에 인상 깊은 한 구절 찾기

by 슈퍼엄마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대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편의점이었는데 방학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반짝 바쁘고 나면 그 후로는 쭉 한가했다. 가끔 담배 사러 오는 손님만 드문드문 올뿐이었다.

게다가 편의점 규모도 작아서 손님 없을 때 청소를 하거나 물건 정리하는 일도 금세 끝나버렸다.

'다른 곳 보다 시급이 저렴한 이유가 있었군...'

시급이 적긴 했지만 학교 근처고 일하는 시간도 마음에 들어 선택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심심하고 지루해졌다. 그러다 이렇게 시간을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책을 한 권씩 들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퇴근할 때까지 한 권 다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책은 주로 비교적 얇은 책, 집중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가벼운 내용의 에세이나 산문집, 그림이나 사진이 많이 들어간 것으로 준비했다. 오전에 손님이 한차례 몰려왔다 바쁜 시간이 끝나면 물건을 채워놓고 정리를 한 뒤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면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면 읽던 책을 얼른 내려놓고 "어서 오세요~" 라며 손님을 맞이했다.

그렇게 해서 책을 매일 한 권정도 읽을 수가 있었다.

6시에 퇴근을 하면 집에 들어가 씻고 저녁을 먹고 침대 위에 엎드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하는 시간이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bgm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베스트 앨범이나 이승환 3집을 틀어놓고 다이어리 쓸 준비를 했다. (요즘은 성시경 음악을 주로 듣는다.^^)

다이어리에는 그날 읽은 책 제목과 내용을 짧게 메모하고 별점을 남겼다. 그렇게 해서 여름방학 동안 총 50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다이어리를 지금은 소지하고 있지 않아서 그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 내용은 물론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아 매우 아쉽다. 그러나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20년이 지금까지 떠오르는 책 속 구절과 장면이 있다.

그 책은 짤막한 글과 한 두 컷의 만화가 그려진 카툰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 내용은 이렇다.

아내는 매일 그릇을 반짝반짝하게 설거지해놓는다. 하루는 남편이 아내를 도와줄 생각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생각처럼 깨끗이 닦이지가 않는다. 특히 기름이나 소스 덤벅이 된 접시는 닦고 나서도 얼룩이 남았다. 남편은 아내에게 "나는 왜 당신처럼 깨끗이 안될까? 당신 그릇을 깨끗이 닦는 비결이 뭐야?"

아내만 쓰는 특별한 세재나 어떤 도구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묻는 남편에게 아내는 이렇게 대답한다.

"잘 안 닦이면... 한 번 더 닦으면 돼. "

그러면서 손가락 한 개를 펴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날 저녁 다이어리에는 아내가 손가락을 펴 보이며 "한 번 더 닦으면 돼~"라고 말하는 모습을 따라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그림과 아내의 말은 시간이 흐르고도 내 일상 속에서 불현듯 떠오르곤 했다.

"아. 이거 왜 이렇게 안돼?"

"나는 이거 잘 못하겠더라~"라는 식의 말을 할 때면 어김없이 책 속의 아내가 나에게

"한 번 더 해보면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대단히 멋진 문장도 아니고 흔하디 흔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그게 왜 내게 그리 오래 기억에 남았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전까지 누군가 특별히 어떤 일을 잘할 때는

'돈이 많아서', '누군가 도와줘서', '재능을 타고나서'라는 식으로 그 이유를 외적인 것에서 찾기 바빴다. 내게 없는 무언가가 그에게 있기 때문에 나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책에서 아내의 말을 읽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그 사람이 나보다 한 번 더해봐서, 끝까지 노력해서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건 내게 사소하지만 큰 깨달음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남들에게는 사소하지만 내게 유난히 꽂히는 문장이나 내용이 있다. 독서모임을 할 때 서로 인상 깊은 문장이 무엇인지 나누다 보면 '아. 맞아. 나도 그 문장 좋았어!!'라고 공감하는 문장도 있지만

'응?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어?' 하는 생각이 드는 문장도 있다.

내게는 그냥 지나친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콕 박히는 문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머리를 '쿵' 하고 얻어맞는 기분을 느끼는데, 내 삶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 간과하고 있던 부분들을 책을 통해 알게 될 때가 그렇다. 그리고 그것들을 주섬주섬 챙기고 하나씩 찾으려고 할수록 나의 부족함이 채워지는 듯한 충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책을 펴고 오늘 당신의 눈에 들어온 그 구절, 그 장면이 무엇인지 왜 이 말이 내게 박혔는지를 생각해보자.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설을 좋아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