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는 마음

by 슈퍼엄마
사과를 해주세요.


우리 아빠는 사과를 잘하지 않는다.

나와의 약속을 어겨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술을 먹고 실수를 하거나, 나와 동생을 오해해서 크게 혼내고 나서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엄마랑 한바탕 싸우고 나서도 그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엄마와 동생에 비해 사과하지 않으면 마음을 풀지 않는 나에게 아빠는

"아직도 화났어?? 에이~별일도 아닌데 뭘 그런 걸 가지고 여태 그러고 있어~"라며 오히려 나를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거나

"아빠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라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 어떤 일에 마음이 상한 것을 표현하면 소심하다, 잘 삐친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다들 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나만 빼고 다들 쿨한 건지 모르겠다.

"네가 별일도 아닌 걸로 삐치니까 그렇지"

상대방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내게는 큰 일일수도 있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내가 의도하지 않은 잘못은 다 넘어가도 되는 걸까?

그래서 나는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좋았다.


내가 남편과 연애시절, 성격이 정말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좋아하고

결정적으로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그가 사과를 잘했기 때문이다.

연애시절 남편과 다투면 항상 먼저 연락하고, 먼저 찾아와서 사과를 했다.

이유야 어쨌든 내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건 내가 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사과를 안 해.ㅠㅠㅠㅠ)


사과하는 마음


어릴 적에 아빠가 사과하지 않아서 풀어지지 않은 응어리들이 가슴이 맺혔는지.. 지금도 아빠를 보면 화가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누난 아빠한테 왜 그렇게 쌀쌀맞냐고 쏘아붙이는 동생에게

"이게 다 화가 쌓여서 그래~"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아이의 마음에 화를 키워주지 않기로.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자기 전에 마음이 상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사과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그날은 저녁때 아이들이 서로 싸워서 크게 혼을 냈다. 금세 아무렇지 않은 둘째와 달리 삐쳐서 말을 안 하는 첫째는 나를 닮았다. ;;

나도 사람인지라 말도 안 되는 걸로 애들이 삐치면 짜증 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날도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화가 난 상태로 잠들면 꿈에 귀신 나온다~~ 그러니 화난 마음 풀고 기분 좋게 자자. 엄마가 안 그러도록 더 신경 쓸게.미안해 아들~" 그렇게 달래주고 꼭 안아주고 잠이 들었다.

아이는 아침에 기분 좋은 얼굴로 일어나서는 엄마 덕분에 귀신이 꿈에 안 나왔다며 내게 안긴다.

그러더니

"엄마, 내가 화가 나고 속상하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과해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나도 엄마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요"

라고 하며 이불을 개는 것이었다.

그 말과 행동이 너무 기특하고 마음이 뭉클했다.


사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내가 신경 쓰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랑 상관없는 사람, 신경 쓰이지도 않는 사람에게 굳이 사과를 하고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를 받는 사람은 상대가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마 어린 시절 내가 아빠에게 받고 싶었던 것은 사과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이 상했을까 봐 염려하는 마음,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아빠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닐 테지만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때론 상대에게 닿기 어렵다.

나는 그런 마음을 내 아이들에게 자주자주 표현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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