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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an 06. 2023

책을 선물한다는 것

12살에 처음 만난 우리는 한눈에 서로가 다른 부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 키에 까만 단발머리, 차갑고 도도하고 성숙해 보이는 그 아이에 비해, 작은 키에 주근깨와 개구쟁이 같은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14살에 우리는 단짝 친구가 되었고 40살이 되어서도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사이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 우리를 아는 지인들은 우리를 '서수남과 하청일'(알면 연식 나온다.ㅎ)또는 '고목나무의 매미'라고 불렀다. 더 기분 나쁜 쪽은 고목나무보다 매미였다. ㅠㅠ

우리는 외향만 다른 게 아니라 성격도 매우 달라 둘을 동시에 아는 사람들은 둘이 친구라는 것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둘이 대체 어떻게 친한 거야??"

 

그 비밀에 대한 힌트를 주자면.. 우리 둘 다 직업이 국어교사라는 것이다.

조용하고 느긋한 그 애와 말 많고 활동적인 나는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쳤고 그애는 나에게 '의외'라고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우리는 교환일기장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거기에는 좋아하는 책을 열심히 추천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문장들을 열심히 나르기도 했다. 그리고 생일이 되면 책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둘이 자주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살다 보니 여행은커녕 얼굴보기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방학을 이용하여 일 년에 한 번은 여행을 가려고 노력한다. 그나마 친구가 아직 아이가 없기에 가능했다.

이번 여행지는 속초였다. 설악산 케이블카도 타고 바다를 보며 회에 소주 한 잔(이 아니라 병)을 마셨다. 우리는 그것도 모자라 호텔방에 맥주를 잔뜩 사들고 와서 새벽까지 마시며 수다꽃을 피웠다.

우리 수다의 주제는 '요즘 사는 재미가 무엇인지'였다.

친구는 요즘 서예를 다시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조만간 전시회도 할 생각이라고 요즘은 그게 사는 재미라고 했다.

"넌? 넌 요즘 재밌는 거 있어?"

"음.. 난 요즘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재미는 없다. "

"왜?"

"쓰다 보니 내가 글을 잘 못쓰더라고.ㅎㅎ 내가 쓴 글..재미없어.ㅠ"

그러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느냐로 화제가 넘어왔고 서로 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해서 열심히 공유하고 추천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그 지역 동네 서점에 가기로 했다.

서점에 함께 들어섰지만 그 안에서는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책을 좋아하지만 취향은 또 너무 달라 서로가 관심 있는 분야로 가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한참을 둘러보고 읽고 싶은 책을 고르다가 서로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도 하나씩 고르기로 했다.


책을 선물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어릴 때는 그저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일방적으로 선물했는데 지금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상대에 취향도 고려해야 하고, 이미 읽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우리는 '시집'을 선물하기로 했다.

읽어본 시집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취향과 상관없이 시집 제목을 보고 느낌이 오는 걸 고르자는 의미에서였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며 내가 읽을 책도 세 권정도 사고 친구에게 선물할 시집도 골랐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선물을 주고받았다.


" 난 너의 이야기가 재밌어. 네가 쓴 글이 재밌어.

넌 네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친구가 건넨 시집은 <너를 모르는 너에게>였다. 시집 제목을 보는 순간 갑자기 울컥했다.

그리고 이어서 또 한 권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그냥 선물하고 싶어서 산 책!"

"헐~ 야.. 나 그 책 샀어!!!!"

내가 서점에서 산 책과 같은 책을 선물한 친구.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깔깔 웃었다.


오랜 시절을 공유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여행이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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