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0일 작성 글
- 도저히 못 버티겠어. 나 그만 둘래.
내 월급은 우리 가정 수입의 절반이상이었다. 이전에 근무하던 곳은 계약만료로 그만 두게 된 것이기에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수업이 그냥 절반으로 훅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더 버틸 수도 없었다. 학원에서의 일은 잘 맞았다.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도 좋았다. 특히 부원장님은 거의 내 워너비 인간상이었다. 월급도 많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만족했다. 어쨋든 정규직이었고 때가 되면 오를테니말이다. 정말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근무시간도 나는 좋았다. 출퇴근의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준비해도 괜찮았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중학교 2학년, 학원에서 친구들과 새벽2시까지 공부를 하곤했다. 나는 전교1등도 아니었고 반1등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새벽2시까지 공부했다는 건 정말 온 힘을 다해 공부에 집중하느라 새벽2시가 되었다는게 아니라 공부도 좀 하다가 친구랑 잡담도 하다가 다시 공부도 좀 하다보니 새벽2시가 되었다는거다. 그리고 부족한 잠은 학교에서 잤다. 그러니 오르지 않던 성적에 엄마는 의아해했었고 안타까워했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기 전까지는.
학기말이 되어 엄마는 담임선생님과 왜 통화를 한건지 모르겠지만,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거의 모든 수업시간마다 잠을 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너는 가장 중요한 학교 수업시간에 잠을 자면 어떡하니. 시험 문제를 학원 선생님들이 내니? 학교선생님이 출제를 하는데 그러면 학교 선생님이 어디서 강조를 하고 어떤걸 가르치는지 집중해서 들어야지. 학원에서 그렇게 공부하는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학원에서 자습하고 올 생각 하지말어. 끝나면 바로 와서 밥 먹고 집에서 공부하다가 씻고 일찍 자. 그리고 학교에서 집중해.
그 후 정말 거짓말처럼 오른 성적에 엄마 말을 잘 듣는 딸이 되겠노라 결심했었다. 물론 이는 고등학생 때 새까맣게 잊었지만. 원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심지어 이기적이기까지한 동물이니까. 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그래서 난 내가 올빼미족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침형이라 12시 전 취침, 6시 기상을 하던 사람이었고 난 일찍 자봤자 새벽1시 취침이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실 요즘도 새벽 3시 취침 10시 기상이니, 이 정도면 올빼미 맞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내 위장은 그렇지가 못했다.
스트레스에 예민하고 자극에 민감한 나의 위장님은 내가 학원에 근무하면서 오후 1시에 첫 끼를 먹고 오후 11시에 두번째 끼니를 먹는 것에 분노하셨다. 가끔은 오후6시에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오후11시~12시에 세번째 끼니를 먹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11시 이후에 뭔가를 먹는다는 것에 있어 위장은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이미 오래 전에 병원을 다니면서 깨끗해진 위였기에 이젠 괜찮겠지싶기도 하였고, 밥을 먹을 시간이 저렇게 밖에 나질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위장이 이렇게 빨리 반응할 줄은 몰랐다. 가끔 속이 쓰린건 그러려니 했는데, 사래가 자주 걸리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없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보다는 코로나로 인해서 기침에 인색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아이들도 '선생님 코로나 아니에요?'라며 장난을 치곤했다. 그럴 때마다 '사래가 걸려서' 대답을 하는것도 민망했고, 밖에서는 혼자 있을 때도 괜히 '아, 사래가 왜 갑자기..'라며 크게 중얼거리곤 했다. 병원에서는 역류성 식도염의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그 날은 집에 와서 밥을 먹는데 서러움이 폭발했다. 밥을 차릴 시간도 없어 라면을 끓여먹는데 너무 서러웠다. 내가 이러려고 돈을 버는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 살자고 힘들게 돈 버는게 아닌데. 그래서 짝꿍에게 울며 말했다.
-나 그만 둘래. 또 아프고싶지 않아. 건강한 저녁을 먹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