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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Sep 30. 2020

옐로스톤에 진짜 곰이 있을까?

옐로스톤 캠핑 여행기

전 아이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여행에 어울리는 그림책을 함께 골라요. 그러면서 우리 가족이 앞으로 어디를 갈 건지, 뭘 볼 건지 상상도 하고, 아이도 나름 그 여행에 필요할 것 같은 아이템들을 가방에 챙기기도 하죠. 이번에 시카고에서 옐로스톤까지 보통의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았을 긴 거리를 로드트립하며 그래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던 건, 이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차 안에서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하는 담임 선생님께 옐로스톤에 곰을 보러 갈 거라고 얘기해주었고, 차 속 시간이 지루해지면 스케치북을 꺼내서 자기가 보고 싶은 동물들 그림도 그렸죠.


옐로스톤으로 가는 길, 아이가 그린 그림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제가 고른 책은 바로 'Bear Came Along'이에요. 올해 칼데콧 상을 수상한 책이라 요즘 미국 서점에 가면 항상 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혀 있어요. 한국에서도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라는 제목으로 나와있어요. 우선 이 책은 한 번 들면 안 살 수 없을 만큼 그림의 색감이 너무 아름다운 책이에요. 어느 숲 속 마을에 홀로 살고 있던 곰 한 마리가 우연히 강에서 떠내려온 나무 뗏목을 타고 강에 떠내려가다 숲 속에 살고 있던 친구들, 너구리, 개구리, 비버, 거북이들이 하나씩 동참하며 모험을 함께 해나가는 이야기죠. 이 곳이 어딘지는 그림책 속에서 나와있지 않지만, 누가 봐도 이 곳은 바로 옐로스톤! 미국에서 야생의 그리즐리 베어와 블랙 베어가 살고 있는 곳이지요.


옐로스톤은 정말로 이렇게 생겼어요. 아마도 작가가 이 지역 출신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쁜 그림책을 본 아이는 이번에 옐로스톤을 가면 이런 곰을 볼 수 있다고 한껏 들떠 있었지만, 사실 엄마, 아빠의 머릿속에 있는 곰은 그 그림책에 나오는 곰이랑은 거리가 멀었지요. 옐로스톤은 곰이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공격한다고 알려진 곳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옐로스톤을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던 건 장시간 운전과 더불어, 바로 무서운 곰의 공격이었어요. 우리가 만약 곰을 만나게 된다면 이 예쁜 그림책 속의 착한 곰일 가능성은 매우 낮을 테니 말이죠. 그래서 이번 옐로스톤 여행 준비를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 또한 곰 퇴치제.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곰 퇴치 방법이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곰이 공격을 했을 때 뿌리는 스프레이, 곰이 싫어하는 소리를 내는 종과 호루라기 등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아이템들이 한동안 제 아마존 쇼핑 리스트를 한 가득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나 여행 안내서에서 곰이 공격을 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 남편과 연습을 하기도 했죠. (예를 들어 곰을 마주쳤을 때 등을 보이지 말고 눈을 보고 조금씩 뒷걸음질 치라는 것, 셋 이상 함께 다니라는 것, 아이와 함께 있을 때 곰을 마주치면 아이를 어깨 위로 높이 들고 큰 소리를 내라는 것 등...)


실제 그리즐리 베어 손바닥을 본뜬 거래요. 손톱이 정말 무시무시하죠.




아니나 다를까,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들어왔을 때 입구에서 노란 종이를 한 장 나눠줬습니다. 그건 바로 곰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되는지 주의 사항을 적어놓은 것이었죠. 곳곳에 곰을 조심하는 표지판이 나왔습니다. 우린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곰의 공격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곰 스프레이를 준비하고 아이 목에는 호루라기를 주머니에는 방울을 넣어주며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신신당부했지요. 우리가 공원에 들어간 시간은 하필 하늘이 어둡고 흐린 오후여서 더 으스스했습니다.



그렇게 긴장하며 옐로스톤에서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떠날 날은 다가오는데 그 어디에서도 곰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요즘 한창 유튜버(실제로 유튜브에 올리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놀이에 빠진 아이는 혼자 비디오를 찍으며 “전 지금 곰을 찾고 있는데요, 진짜로 옐로스톤에 곰이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요...”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네, 사실 그 쯤되니 저도 남편도 아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옐로스톤에는 곰이 사는 게 맞는 것인가, 어디 집단 이주를 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들 말이지요. 이번 달 우리 집 쇼핑 리스트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곰 퇴치 용품들이 무색해질 정도였죠. “이번에 못 보면 곰 보러 다시 오면 되지”라고 말하던 남편도 조금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이제 옐로스톤에서의 마지막 밤, 곰은 다 봤구나 싶어 터덜터덜 저녁을 먹으러 캠핑장으로 향하고 있던 바로 그때, 별로 사람 마주칠 일 없었던 옐로스톤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서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옐로스톤의 안전 요원인 파크 레인저들이 뭔가를 안내하고 있었죠. 바로 강 건너에 그리즐리 베어 한 마리가 사냥을 한 수컷 엘크 한 마리를 앞에 두고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레인저 말에 의하면 여기 근무하면서 이렇게 큰 그리즐리 베어를 본 건 처음이라고 했어요. 특히 사냥한 먹잇감을 앞에 두고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광경이라고 했지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리즐리 베어가 강 건너 눈 앞에 나타난 것이지요!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나른해졌는지 한참 강가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던 곰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곰은 잠깐 고개를 들어 강 건너 반대편 산을 향해 코를 킁킁거렸습니다. 사람보다 후각이 60배 정도 발달한 곰은 강 건너 산에 어떤 다른 곰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해요. 레인저들은 앞으로 몇 시간 안에 반대편 산에서도 곰이 나타날 수 있다며 서로 무전을 치며 안전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더라고요.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길가다 그냥 우연히 곰을 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지요.



덧붙여 - 이 날, 우리가 봤던 곰의 엘크 사냥 장면을 누군가 유튜브에 올려놨다고 해서 찾아보았어요. 우리가 곰을 봤을 때는 이미 사냥을 한 지 며칠이 지난 후였으니, 곰은 그 자리에서 안 움직이고 일주일 정도를 머무른 것이지요. 사납고 끈질긴 곰의 공격이 무섭기도 하고,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제 몸을 주어버리고 마는 엘크가 너무나 가엽기도 하고 그러네요. 모두 다 풀만 먹고살면 좋으련만, 이 또한 자연의 법칙이겠죠.

https://www.youtube.com/watch?v=Jzo2Ie7B7CI 




옐로스톤 베어 & 울프 디스커버리 센터:

옐로스톤에 가서 곰을 못 봐서 실망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옐로스톤 입구 근처에 곰을 볼 수 있는 디스커버리 센터가 있어요. 비록 야생의 곰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어느 동물원보다도 많은 곰이 생활하는 걸 볼 수 있고, 또 곰, 늑대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있으니 한 번 확인해보세요.

https://www.grizzlydiscoveryctr.org/

기념품 가게에서 사고 싶었던 옐로스톤 쿠션. 집에 가져오면 너무 정신없을 것 같아서 두고 나왔는데 자꾸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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