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인턴이 되다, 이 글을 쓴 게 작년 11월이니 이제 거의 한 해가 지났네요. 네, 저 글을 쓸 때 저는 정말 고군분투하면서 미국에서 직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는데, 다행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마음이 많이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간의 스토리는 너무 많은데, 제가 언젠가 준비가 되면 이 이야기들을 따로 써보려고 해요. 2살과 7살 아이를 키우면서, 특히나 남편이 주중에는 없는 상황에서, 육아와 회사를 혼자 병행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제가 꼭 다시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해야 되겠다는 의지와 절박함이 없었더라면, 아마 중간에 포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1년, 이제는 제 생활도 조금 익숙해지고 편안해졌습니다. 하루하루 회사, 집 안팎으로 드라마가 없는 날은 없지만, 그래도 미국 와서 처음으로 내 일상이 조금 자리 잡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자, 힘들었던 시간은 뒤로 하고, 오늘부터 다시 나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써보려고 합니다.
취업을 해서 이제 매일 아침 내가 나갈 수 있는 '직장'을 구한 저의 다음 목표는 '직업'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업이 뭐가 될지는 아직 물음표예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계속 더 깊어질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 출근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은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글을 써보자. 무슨 일관된 토픽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쓸 수 있는 글이 없어서 고민이라면, 그 고민에 대해서 써보자, 생각이 들었죠. 글 쓰는 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니까요. 이게 어떤 길로 절 이끌어줄지 모르겠지만, 제 '직업'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직업'과 '직장'의 차이에 대해서 처음 들은 건 BMW를 다닐 때였어요. 홍보팀이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임원진을 대상으로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것을 했죠. 미디어 트레이닝은 임원들이 TV나 신문 등 언론 인터뷰를 나가기에 앞서서 교육을 받는 거예요. 기자들에게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될 말, 앉는 태도, 손과 표정 같은 작은 것 하나 하나가 모두 기업의 메시지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죠. 미디어 트레이닝은 홍보팀에서 직접 하기도 하지만, 외부 강사를 모셔오기도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이런 글로벌 기업 임원들의 미디어 트레이닝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죠. 저는 제 첫 직장인 Edelman의 사장님이셨던 '김호 대표님'을 추천했어요. 제가 알고 있는 한 가장 훌륭한 미디어 트레이닝 전문가이시거든요. 김호 대표님은 제가 에델만을 떠나기 한 해 전에 먼저 회사를 떠나 '코칭' 전문가로 독립을 하셨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몇 년 만에 만난 김호 대표님은 제가 좋아하는 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로 초대해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어요. 서로 에델만을 떠난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 나눴어요. 저는 수입차 브랜드 홍보팀이란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며, 일 년에 몇 번씩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전 세계 최고로 멋진 곳에서 열리는 글로벌 프레스 이벤트를 기자들과 다니며 '저희 회사'에서 출시되는 멋진 자동차를 선보였죠. 물론 그런 해외 출장은 전체 업무 비중의 10프로 정도이고, 나머지는 매일 처리해야되는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요. 이태리 시칠리, 스페인 마요르카, 남미 푸에르토리코, 알프스 산맥 등 예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는 제게 충분한 보상이 되어줬습니다. 또 점심 시간이 되면 이렇게 몇 년 만에 만난 회사 대표님과 좋은 곳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는 라이프를 즐기면서 말이죠. 그런데, 점심을 먹으면서 김호 대표님께서 저한테 하신 말씀은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어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와 하는 일이 잘 맞고 좋을 수 있겠지만, 그건 결코 '직업'이 될 수 없습니다.” 직장과 직업은 엄연히 다른 뜻이라는 말씀이셨죠. 홍보팀 직원으로 회사가 주는 업무만을 하는 건 언제든 대체 가능한 '직장인'이 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중에라도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부분을 빨리 파악하고 발전시켜서 내 걸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는 브랜드 홍보를 하면서 기업의 사회 공헌 부분인 CSR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CSR 분야를 더 깊게 파고 들어서 'CSR를 가장 잘 하는 홍보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역할이었던 Culture marketing의 경우에도 하나의 연중 이벤트로 업무만 쳐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메세나, 브랜드 아트 컬래버레이션 등에 대해서 나만의 인맥을 만들고, 경험을 쌓고, 계속 배워서 언제 내가 이 회사를 떠나더라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직업'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직업'과 '직장'의 차이에 대해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죠.
결론부터 말하면, 전 퇴사하는 날까지 결코 제 '직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BMW란 꼬리표를 떼는 순간, 저는 그냥 외국계 회사 11년 경력을 가진 자연인이 되어버렸죠. 한국이었더라면 아마 또 비슷한 수준의 외국계 회사 홍보팀으로 가서 제 삶은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새로운 미국 땅에 온 저는 모든 것이 철저하게 리셋됐습니다. 누구보다 말도, 글도,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회사를 대표해서 당당하게 제 역할을 해야되는 홍보 특성상, 저 같은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외국인을 써줄 리 만무하니까요. (물론, 그 당시엔 일할 수 있는 비자도 없었지만요) 그렇게 경력 공백 4~5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대체 뭘 하고 살아야될지 답답하기만 한, 대학 4학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말이죠.
긴 공백 끝에 다시 미국와서 첫 취업을 하게 됐습니다. '직장'이 생긴 것이죠.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물론 제가 전 회사들에서 누렸던 달콤한 혜택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직장인 이유도 있지만, 전 이제 언제라도 내가 이곳을 그만두는 순간, 소소하게라도 제 것을 해나갈 수 있는 '직업'을 찾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쳇바퀴 굴러가는 직장이란 런닝머신에서 내려오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 달라진 삶에 소프트랜딩 하고 싶거든요. 어떤 게 될지는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리고 사실 지금 제가 코트라에서 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세일즈 일도 저랑 잘 맞는가, 하는 질문엔 고개가 갸우뚱입니다. 하지만, 계속 고민하고, 시도해볼 거예요. 어쩌면 그 고민의 과정을 글로 적으면서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도 있겠죠.
몇 년 전, 저에게 정말로 '뼈 때리는' 말씀을 하셨던 김호 대표님은 에델만에 계시는 동안 '코칭'이라는 분야를 계속 발전시켜나가셨어요. 기자 만나고, 보도자료 쓰고, 부정 기사 막고 하는 보통의 홍보 담당자가 하는 일 외에,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사업 분야를 계속 확장해나가셨죠. 우리나라에서 당시에 드물었던 '코칭'이란 분야도 개척하시고, 결국 그 분야의 대체 불가능한 '직업인'이 되셨죠. 유튜브에서도 이제 김호 대표님의 강의를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그때,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해주셨던 이야기에 내가 왜 바로 실행을 안 했을까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다시 한 번 기회가 온 것에 감사합니다. 만약 지금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이라면, 그때 제가 김호 대표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꼭 한 번 같이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려요.
https://www.youtube.com/watch?v=psETvJOBiU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