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월 젖병 떼기 연습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간 소아과 검진에서 선생님은 다행히 아이는 키도, 몸무게도, 발달 단계도 모두 정상 범위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여기는 비교를 할 또래도 없고, 조언을 해 주실 어른들도 안 계셔서 잘 크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좀 걱정을 했는데 안심을 했습니다. 대신 28개월이 되도록 아직까지 젖병에 우유를 먹는 건 당장 뗄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충치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말을 배우는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고요.
사실 젖병 떼기는 요즘 저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밤중 수유도 최근에야 겨우 떼었을 정도로 아이가 원하는 만큼, 스스로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자는 게 제 육아에 대한 생각이었거든요. 그래도 젖병은 좀 떼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유에 너무 의존을 하다 보니 주식을 안 먹었거든요. 몇 번 젖병 떼기 시도를 해봤는데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워낙 자기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되는 성격의 아이라 엄마, 아빠가 항상 지곤 했지요.
이런 고민을 하는 저에게 소아과 선생님은 '젖병 요정 이야기'를 해주라고 했습니다. 이제 언니가 되었으니까 집에 있는 젖병들을 젖병 요정에게 주면 다른 아기들에게 배달을 해줄 거라는 이야기지요. 선생님은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전 '에이, 설마 이런 이야기가 먹히겠어?'라고 의구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될 일이면 제가 28개월이 되도록 젖병을 못 떼어주었겠어요?
병원에서 돌아와 집에 와서 바로 시도를 해봤는데 그 날은 아이가 피곤해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충분히 이해가 안 되었었나 봅니다. 아이는 당장 젖병을 내놓으라며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울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차 후퇴를 하고 결전의 그 날밤이 왔습니다. 모처럼 저도 독하게 마음먹었을 때 우유를 떼어줄 절호의 기회였지요. 전 아이에게 내일 아침에 우리 집에 올 젖병 요정에 대해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한참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이 젖병과 마지막으로 잠이 드는 날이니 젖병에게 꼭 작별 인사를 해주라고도 얘기했지요. 아이는 잘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이야기가 재밌었던 건지 잘 알겠다며 기분 좋게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30분 뒤에 젖병 요정에 찾아올 거라고 하니 아이는 상자 안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젖병을 차곡차곡 담고 아기에게 줄 장난감도 상자 안에 하나 넣었습니다. 또 이쁜 빨간 리본으로 묶어 주었지요. 그리고 엄마, 아빠와 함께 (분리수거함에 사는) 젖병 요정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이지요. 이 놀라운 일이 벌어진 지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만 그 사이에 아이는 단 한 번도 젖병을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젖병 요정 스토리텔링의 힘을 실로 대단했습니다. 절대로 못 뗄 것 같았던 젖병을 너무 쉽게, 즐겁게 뗄 수 있었으니까요. 의사 선생님 말이 정말 맞았습니다!
예전에는 따뜻한 우유를 젖병에 주고 책을 몇 권 읽어주면 자동으로 스르르 잠드는 것이 수면 의식이었는데, 이젠 절차가 좀 복잡해졌습니다. 이제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가도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하면 다시 점프해서 내려와 한참을 논 다음에 침대에 올라갑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또 하나의 성장 과정을 거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저도 좀 더 상상력 풍부한 스토리텔러가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재미난 이야기를 더해주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경험으로 배웠으니까요! 이렇게 아이도, 엄마도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