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아이의 소아과 검진을 다녀왔습니다. 그 전에도 한두 번 응급실을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병원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딱히 어디가 아파서 간 게 아니라 성장은 잘 하고 있는지, 백신을 더 맞을 건 없는지 등을 검사하러 가는 날이었지요. 저희 집은 시카고 도심에 있기 때문에 주변에 꽤 많은 병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왠지 제일 믿음이 가는 노스웨스턴 대학 부속 소아과를 다니기로 했습니다.
미국 병원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비싼 진료비 때문에 악명이 높기도 하지만, 의사가 웬만하여서는 뭘 해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사실 진료비는 대부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보험으로 커버가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지만, 애가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도 딱히 해주는 것이 없을 때는 응급실 괜히 달려왔다, 싶기도 하지요. 그래서 여기 엄마들은 애들이 웬만큼 열이 나거나 몸에 두드러기가 나도 바로 병원에 달려가기보다는 집에서 좀 기다리고 경과를 지켜보는 쪽을 택하는 편입니다.
어쨌든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되니까, 저희 가족도 미국 병원 시스템에 적응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소아과가 바로 그 첫 시작이었지요. 처음 만난 담당 선생님은 무척 친절했고 아이에게 다가가기 전에 충분히 시간을 갖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청진기로 아이의 배를 검진해야 될 때는 아이가 놀랄 수 있으니 옆에 있는 엄마의 배를 먼저 검진하는 척을 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가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다음은 뭐든지 수월해지지요. 귀검사를 하는 도구도 아이가 흥미 있어하자 한참을 만지고 놀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 다니던 차병원 소아과는 워낙 바쁜 곳이라 엄마도 속사포처럼 준비해놓은 궁금한 점들을 쏟아 놓으면 선생님도 신속하게 답변을 해주던 것과는 다르게 여기는 아이의 속도에 따라, 아이가 원하는 만큼만 진료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시기별로 필수적으로 접종해야 되는 주사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안 아파도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지요. 저희 아이는 18개월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유아기에 맞아야 되는 백신들은 한국에서 대부분 접종을 하고 일본 뇌염 백신 하나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신도 나라별로 맞는 필수 접종 아이템이 다른가 봐요. 미국에서는 그 백신은 접종 리스트에서 빠져있었습니다. 운 좋게 첫 번째 병원 방문에서 왕 주사를 맞아야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지요. 뭐든지 첫인상은 중요하기 때문에 소아과에 대해 아픈 추억을 갖게 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첫 번째 소아과 경험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작은 키즈카페 같이 놀이 시설도 충분히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좋아하는 스티커를 마음껏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거든요. 놀다가 무릎이 좀 다쳤는데 아야, 거리면서 병원을 가야겠다고 얘기하는 걸 보니 병원에 대한 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나 봅니다. 병원 갈 일이 없어야겠지만, 그래도 워낙 미국 병원에 대해서 악명 높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 터라 저 또한 겁먹고 있었는데, 그런 걱정은 좀 사라졌습니다.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에도 혼자서 처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붙었지요. 이렇게 조금씩 저도 초보 딱지를 하나씩 떼어가며 여기 생활에 적응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