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은 유난히 조용히 보냈다. 항상 고모들이 다녀가셨는데 지난해 큰 수술을 받으신 고모께서 몸이 안 좋다고 하셨다. 전화로 엄마는 푹 쉬라는 말을 하고, 몇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우리 가족이 보낸 설 연휴였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와 명절에 친가에 가곤 했다. 내비게이션도 없는 시절이라 아빠의 기억과 지도에 의지해서 엄마가 운전을 하며 몇 시간을 달려가곤 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애교 있는 손녀가 아니었다. 조용히 멀뚱멀뚱 있는 게 다였다. 어릴 때는 사촌동생들과 놀기도 했지만 클수록 간혹 보는 사촌들과도 데면데면했다. 중학생쯤부턴 한쪽에서 TV를 보거나 가지고 간 책을 작은 방에서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장남이고 나는 장남이 낳은 딸이니 어른들이 다른 사촌들보다 나를 챙기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내가 장애가 있어서 일수도 있고, 첫 손녀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하지만 나는 불편하고 어색해했다. 우리 집이 아닌 공간이 불편했고 바뀐 잠자리에선 뒤척거렸다. 그게 내가 예민한 애여서 그런 건지 장애가 있어서 인지, 아니면 둘 다일수도 있지만 힘든 일정을 치르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중 가장 싫었던 건 술을 마신 할아버지였다. 내 기억 속 할아버지는 항상 술을 마셨다. 맨 정신보다 취중에 뭔가를 호소하는 듯했던 할아버지는 화목한 명절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가기 싫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과 고모들 삼촌은 모였다.
그 분위기가 화목하다고 느끼진 못했지만 엄마와 고모들, 할머니께서 음식을 만든 후 기다란 상을 펴서 모두 모여 밥을 먹었다. 제사를 지내는 집도 아닌데 음식을 많이 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도 요양원에 가시고 우리는 그렇게 모여서 음식을 많이 하는 일은 사라졌다. 그사이 아빠가 아프셔서 우린 장거리를 가기 힘들어졌고 대신 명절이 되면 고모들이 우리 집에 오곤 했다.
나는 또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들 바쁜데, 명절에 몇 시간씩 운전하며 오면 힘들 텐데, 쉬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전처럼 많은 음식은 아니지만 고모들은 수고스럽게도 음식을 만들어 오기도 했다. 감사하면서도 제사를 지내는 것도 굳이 왜 힘들게 음식을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꼭 명절이 아니어도 되니까 다른 편한 날 보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명절 연휴가 아니라면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 시간을 만든다는 게 어려운 걸 알게 되었다.
항상 엄마와는 매번 명절이 되면 음식을 하지 말자, 사 먹자라며 포부를 다지지만 꼬치 몇 개, 동그랑땡 몇 개가 올라간 전 세트 가격을 보고 놀란 엄마는 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수고스러움으로 이 명절 연휴가 유지되고, 가족이 유지되는구나 하고. 어린 시절 명절은 부모님과 고모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명절이었고, 매번 고모들이 우리 집을 찾아와 명절을 이루었고, 이번 명절은 엄마의 수고로 보낸 명절이었다.
음식 하는 게 힘들면서도 가족이 잘 먹으니까, 좋아하니까 음식을 매번 만드는 엄마. 올해는 우리 가족처럼 조용히 명절을 보내는 엄마의 지인 분께도 음식을 나누었다.
연휴 중에 엄마가 둘째 고모와 전화통화를 하니 고모도 가족들이 잘 먹어서 명절 음식을 많이 해서 힘들었다고 하셨다.
이 정도면 우리 집안 특성인가 살짝 의심해보며 조용한 명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