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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Feb 27. 2017

10. 어설픈 문학 공부와 취업이라는 소실점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대학 공부는 버거웠습니다. 영문학 원서 읽기는 도대체가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삼십여 개씩 계속 쏟아져 나왔고, 수업 전날 밤마다 새벽까지 텍스트를 읽어도 5~6쪽만 진도가 나갔습니다. 사전에서 단어를 찾으며 많은 시간을 소모했고 단어를 찾다가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서 지금까지 읽은 게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원서를 읽고 공부를 할까?’    


제가 통찰력 있는 읽기를 한 것도 아니고 행간을 뜻을 파악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표면적인 읽기만을 하는 데도 도대체가 이해도 안 되고 독서력도 늘지가 않았습니다. 가끔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이 사람 작품은 다 그래’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그럼, 너는 이 작가의 작품을 모두 다 읽어 봤어?’    


학점은 3점 대 후반을 유지했고 장학금을 꾸준히 탔지만 제 전공 공부는 정말 형편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문학에 대한 이해 수준도 얕았습니다. 가령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누군가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라고 읊으면, ‘셰익스피어!’라고 자뻑으로 맞추는 수준, 길을 걷다 파란 아이섀도를 한 여자를 보면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는 시구절을  웅얼거리는 수준,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상징, 은유, 낯설게 하기' 등의 이야기 장치들은 제가 당장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지요. 도대체 여자가 죽은 연인의 시체 옆에서 매일 밤 잠을 잔다는 게 있을 수도 없는 일일뿐더러 무슨 소중한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작가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펼쳤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어설픈 전공 실력과 어려운 IMF 경제 시기에도 불구하고, 대학 4학년 때 국내의 대표적인 은행 한 곳에 취업을 했습니다. 필기 시험장 밖에서 시험 치는 내내 기다리며 응원해 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정성이 통했습니다.   

  

졸업 및 은행 입사와 동시에 휴직을 하고, 2년 간의 군생활을 수행한 다음 복직하는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졸업 사진은 친구의 양복을 빌려 입고 찍었습니다. IMF와 관계없이 우리 집은 늘 가난했었기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취업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취업을 했으니 그냥저냥 살아가면 되겠지.’    


세상은 원근법의 틀에 갇혀 있었습니다. 처음엔 여백으로 가득 찼었을 인생의 도화지가 어른이 될수록, 현실에 더 가까워질수록 결국 돈벌이라는 소실점으로 모여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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