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허리디스크로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것도, 전신 마취제가 주사기에서 팔뚝을 타고 오르는 것도, 그 짧은 순간에 제 고개가 ‘픽’하고 돌아가며 의식을 잃는 것도, 그때를 놓치지 않고 간호사가 인공호흡기를 제 코와 입에 갖다 대는 것도, 지나 보니 모두 화살처럼 흘러간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석 달만 지나면 제대를 합니다.
수술 후 복귀한 국군 청평병원에서는 새로운 재미가 생겼는데, 그것은 짜장면이었습니다.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던 간부급 환자들은 운동 삼아 병원 운동장이나 기타 코스들을 자주 거닐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군 병원 담벼락에서 전화를 걸면 얼마 되지 않아서 짜장면이 배달되었습니다. 일회용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짜장면은 담을 넘어 날아왔고 돈도 담을 넘어 날아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짜장면이 생각나더군요. 학창 시절이나 군생활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들은 언제 철이 들까요?
요즘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군대 짜장면을 맛있다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른 맛이었으니까요.
군 병원에도 별별 인간들이 다 있었습니다. 제 돈을 훔친 인간, 어떻게 하면 군 복무를 군 병원에서 환자로서 마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인간, 장애 등급을 잘 받으려고 연구하는 인간, 심각한 이송 건을 만들어서 헬리콥터를 타보려고 애쓰는 인간, 공짜로 남성 수술을 받으려고 군의관에게 빌붙어 사는 인간, 간호 장교를 어떻게 추행할지 계획하는 인간 등.
군 병원으로 이송 전에 선임병의 수첩이 휴게실 책상 위에 있길래 우연히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동생이 해군에서 복무 중인데,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혹 행위로 인분을 먹인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장교로서 제가 겪은 군생활은 일반 회사처럼 대내외 평가와 훈련 점수 때문에 부족한 잠과 업무 스트레스로 가득한 생활이었습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 내에서도 다른 세상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세상입니다. 제 선배 장교는 엄지 손가락이, 후배 소대장은 새끼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손은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습니다. 저와 같이 디스크 수술을 받은 박중사는 신경 계통에 문제가 생겼는지 다리가 벌겋게 달아올라도 춥다고, 그렇게 춥다고 소형 전기 장판을 다리에 감쌌습니다. 저는 다행인 편인가요? 다리를 살짝 절기는 하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괜찮으니 말입니다.
허리디스크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후유증 때문에 저에게는 군생활이 결코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