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제대 후에 은행으로 복직한 저는 강원도 원주의 한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본적지가 강원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이름만 들어봤던 그곳에서 사는 것을 아내는 꺼려했습니다. 학원이랑 과외로 영어를 가르치던 아내는 계속 돈도 벌어야 하고 앞으로 애들 교육을 위해서도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갈등을 피했습니다.
원주로 가기에 앞서 먼저 춘천의 강원지역본부에 인사차 들린 저를 본부장님은 무척이나 환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하신 말씀은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여기는 참 좋은 곳이야. 다른 은행 같으면 나 같은 사람은 벌써 잘렸지. 여기 있으니까 이렇게 오래 근무를 하잖아.”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게 신입사원에게 할 소리인가?’
그러나 이후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저는 점점 더 그분의 말씀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나름 노력을 해도, 매년 들어오는 신입 사원과 저를 비교해 가면서 아직은 경쟁력이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해도, 나이 들어가며 위축되는 무엇인가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원주에 도착한 저는 걸어서 육교만 넘으면 출근이 가능한 가까운 곳으로 방을 잡았습니다. 그 동네에는 개천이 하나 흐르고 있었고, 그 개천을 따라 허술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를 골랐는데, 겉보기에 판자촌 같은 그 집이 무허가라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혼자서 잠만 자면 되기에 별 신경을 쓰지는 않았던 저는 월세 10만 원에 그 방을 계약했습니다.
삐걱대는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면 조그만 마당이 있었습니다. 대문 왼쪽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고 화장실 오른쪽 옆 철창에는 토끼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제 방은 대문 오른쪽에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집주인 내외가 살았습니다. 집주인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난닝구 없는 씨쓰루 조끼에다 전투복 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습니다. 면도를 잘 하지 않은 행색은 완전 개장수 같았으나 포스는 <황해>의 김윤석 급이었습니다.
대문 맞은편에도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월세를 사는 독거노인이 한 분 계셨습니다. 혼자 걷는 것이 힘들 만큼 몸이 불편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방문을 열면 작은 마당을 너머 그 할아버지가 보였고, 그 옆에 토끼와 화장실이 보였습니다.
저는 문을 열고 나와서 신발을 신고 대문과 제 방 사이에 있는 창고 비슷한 곳으로 들어가서 몸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비가 오면 신발을 방 안으로 들여놓아야 했습니다. 방문은 잘 닫히지 않아서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왔습니다. 겨울에 이불을 덮고 누우면 입김이 천장으로 올라가는 게 보였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 세수하러 갈 때, 빨래하러 갈 때 비만 맞지 않으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