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이스댕 Nov 06. 2023

종교의 목적

그냥 사는 이야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의 많은 질문에 과학이 답해 줄 수 없고, 계획적인 삶이 나의 미래를 통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 어떤 종교든 한 가지는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꼭 한 가지여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중 가장 유용한 게 뭘까가 기준이었다.


불교는 좀 불편했다. 일단 멀리 있으니까, 그리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니. 무엇보다 내가 경험하는 현실의 문제보다 더 상위의 초현실적 문제를 다루는 듯했다.


개신교는 다른 면의 불편이 있었다. 말이 너무 많다는 거다. 많다는 표현보다는 내용보다 목사의 설교법에 따라 감흥이 달라지는, 다시 말해 본질보다 포장이 앞선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교회 간의 파벌과 경쟁이 눈에 먼저 보였다.


가톨릭은 보다 동일한 메시지에  어디 가나 포맷이 동일하고 스타신부가 필요로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조용하고 경견 한 분위기였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거창한 설교를 듣는 시간이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라고 일컫는 것은 성경에 있는 것이지 종교지도자의 표현법과 해석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난 세례만 받고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종교적인 의식이나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비종교인에 가깝다. 그렇다고 난 무신론자도 아니며 유일신론자도 아니다.


최근의 어떤 일로 교회에 관련된 일을 시작했는데, 교회에서 일하거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볼 기회가 생겼고, 왜 사람들은 교회나 성당을 찾는지, 특히 미국과 한국사회에 왜 개신교의 영향력이 이렇게 큰 지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메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에서 안전, 사회적, 존경의 욕구가 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이는 가장 보편적 인간욕구에 해당한다. 그 아래에는 생리적 욕구, 그 상위에는 존경과 자아실현의 욕구가 존재한다.  그중 가장 중심에는 사화적 욕구에는 애정, 소속감, 공감이 포함되어 있고 이것들은 사람들의 일생동안 가장 오랫동안 추구하며 동시에 충족감을 느껴야 하는 것들인데, 교회는 이런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아주 좋은 곳이다. 


그런 사회적 소속 집단이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했을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속될 수 있고 일생의 주기에서 보다 오랫동안 그 가치를 추구할 것이다. 정치적 성향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에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들의 가치가 보편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런 집단 간에는 항상 반대의 성향이 있어 투쟁해야 하고 서로를 헐뜯거나 비난하기 일쑤이며  보편적 가치인 애정과 공감과는 거리가 좀 멀다. 다시 말하면 이런 정치성향을 중심으로 한 집단은 명백한 정답이 없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균형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교 집단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 극단적인 종교를 제외하고 ) 그중에서도 기독교는 불교와 달리 세속적인 보편가치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집단의 크기가 커질 수 있고 모든 나이에서 관심을 가지고 현실에서 바로 실현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 한 가지 다루어야 할 욕구는 호혜의 본능이다. 호혜는 여러 성공적인 동물집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사람에게는 호혜의 본능이 있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고 그래야 그 사회 안에서 개인이 오래 존재할 수 있으니까 유전자의 유리한 인자로 작용했을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이 가진 기본 보편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곳이며 그 중심에 보편적 가치를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비이익집단인 이 교회 플랫폼 위에서는 종교를 매개체로 누구든 호혜를 받거나 줄 수 있고 동시에 누구는 사회적 존경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누구는 안전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서 일터와 같은 가치교환 장소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어간다. 거기에서 호혜의 본능을, 소속과 안전의 욕구를 충족한다. 기부라는 호혜가 결과로  눈에 보이기를 바라고 자신을 포함한 소속된 사람들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 세금이 국가로 들어가 사회복지로 돌아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거기다 국가 세금을 사람들이 공평하게 내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일부 세금은 사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교회의 기부금도 그 일부가 사적으로 쓰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더라도, 교회에 내는 기부금은 주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학생을 지원하며, 내가 사용하는 교회 카페의 환경이 좋아지는 게 하는 등 적어도 구체적인 목적이 있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낸다. 다시 말하면 동기부여가 직접적이게 된다. 


미국과 한국은 개신교가 매우 번성해 있는데, 이는 약한 사회복지가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 국가의 시민들은 국가세금으로부터의 복지에 크게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보편복지가 아니라 차등복지이기 때문에 특히 중산층은 세금을 내고도 저소득층이 느끼는 정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저소득층의 복지혜택이 충분하다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영향력이 약한 사람들의 집단은 국가세금의 혜택보다 교회에 내는 기부를 통해 얻는 혜택이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일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또한 그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또는 지지를 얻기 위해 기부라는 호혜를 활용할 수 있다. 


이글의 제목을 잘 못 썼다. 종교의 목적이 아니라 교회의 목적이라고 해야 할 듯. 하지만 '교회'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이 생각이 특정 종교 자체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건물과 같은 장소를 얘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모임, 사회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종교인도 정치인도 아니다. 일반인 입장에서 이들 종교사회가 유지되는 원리를 분석해보려고 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어설픈 할로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