넔두리
회사란 세 가지 축으로 움직인다.
비전, 성과, 복지가 그것이다.
순서대로 하자면 비전이 있고, 그다음 성과가 있고, 그다음 복지가 있다.
이 각각의 단계를 올바른 사람이 담당하고 있어야 회사는 발전할 수 있다.
그중 한 가지라도 없다면 회사는 ‘겨우’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발전거나 영속할 수 없다.
비전은 회사의 리더, 즉 대표가 담당해야 한다. 여기서 비전에 성과나 복지를 포함하면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비전을 따라서 성과가 오고 그다음에 복지가 온다.
“매출 100억 원, 전직원 해외워크샵.”
이런 건 비전이 아니다.
비전이란 “우리 회사는 단기적으로 국내 최고의 IP 뱅크가, 중기적으로는 아시아의 IP 뱅크가, 장기적으로 세계적인 IP 뱅크가 되는 것입니다”와 같은 선언이다. 이런 비전이 있고, 직원이 그것을 모두 알아야 지금 고난이 있더라도 일을 해나갈 수 있다.
지금 출판사들에서 가장 부족한 게 이 비전이다.
“버틴다.”
이것 역시 비전이 될 수 없다. 출판계가 불황인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버틴다고 새로운 일이 생길 리 없다. “유튜브 강연과 이북을 접목한 보는 출판사”가 되든지, “책의 가치를 끝까지 믿는, 책 아니면 절대 접할 수 없는 지식을 전하는 인문 출판사”가 되든지.
물론 성공과 실패는 알 수 없다.
성과는 대표와 중간 관리자의 영역이다.
‘비전을 향해 가려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야할지 관리해야 한다.
어떤 작가는 ‘전업 작가’라는 꿈을 키우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나오는 성과가 작가라는 비전을 향해갈 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람이 “월수익 500만 원”이라는 잘못된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성과는 비전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야간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500만 원이라는 비전을 달성하든지(달성했다 하더라도, 뭔가 나아지는 삶은 아니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시들다가 다른 일을 할 것이다.
작가가 비전인 사람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공모전에 도전하든지, 웹소설 분야에 도전하면서 비전을 구체화할 것이다.
어떤 삶이 성공인지는 모르겠으나, 성과 관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후자(작가 지망생)이 수월하다. 비전으로 나아가는 성과를 관리하다가, 조금씩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과가 곧 비전인 사람은, 계획된 성과가 틀어졌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비전 자체가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회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부분에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은 대표와 중간 관리자 그리고 직원이다. (눈치 챘겠지만 대표는 모든 분야게 끼어 있다)
복지는 월급이며, 일하는 환경이다.
직원은 자신의 월급을 올리고 편하게 일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
그런데 그건 머리띠를 두르고 파업을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파업으로 얻을 수 있는 회사도 있겠지만, 지금은 출판사와 같은 규모를 말하고 있으니 논외로 하자.)
성과가 있어야 복지를 요구하고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 ‘성과’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성과와 다른 성과를 올려놓고 더 나은 복지를 요구하면 감정만 상하게 된다.
보리밥을 파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밀을 수확해 가면, 단기적인 이익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비전과는 맞지 않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여기서 직원이 요구할 수 있는 건, 단기 보너스뿐 월급을 올리거나 근무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를 할 수는 없다. 이 직원의 복지를 개선해주면 밀을 더 많이 수확해올 것이기 때문이다.
보리를 더 수확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그에 따라 성과를 내고, 월급을 올리는 것이 직원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비전이 잘 전파되야 하고, 그에 따르는 성과 목표를 정확히 세워야 하고, 올바른 복지를 요구해야 한다.
지금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면, 거꾸로 요구해야 한다. 직원은 성과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해 달라고 중간 관리자에게 요구하고, 중간 관리자는 비전이 무엇인지 대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런 소통이 없다면, 열심히는 일하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모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