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고요한 새벽. 어둑한 공기를 가득 채운 친절한 정수기의 멘트에 놀라 자칫 손에 쥐고 있는 것에 채워지는 뜨거운 물을 바닥에 쏟아버릴 뻔했다. 마치 ‘얘들아! 너희 엄마 이 새벽에 뭐 하는지 나와서 봐!’하고 고자질하는 것 같아 정수리가 쭈뼛거렸지만 다행히 고른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휴-
좁게 열려있던 구멍을 넓게 벗겨내면 차가운 새벽 공기 사이로 향이 가득 채워진다. 얼굴에 미스트를 뿌리 듯 후끈한 습기가 얼굴을 덮어주며 안경도 뽀얗게 눈앞을 가렸다. 길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어든 젓가락이 몇 번 움직이고 나니 어느새 안경도 말씀해졌다.
죽어도 안 썩을 년
날이 추워지면 칼국수, 잔치국수, 수제비, 라면 류의 식사를 즐겨했고 날이 더워지면 냉면이나 소바, 열무국수 혹은 파스타 같은 음식을 선택하곤 했었다. 쌀밥은 안 챙겨 먹어도 라면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국물 자작한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면 사리를 추가했다. 죽어도 안 썩을 거 라니, 엄마가 자식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퍼 준 밥은 안 먹고 면만 먹어대니 화가 많이 낫겠다 싶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고향의 맛이나 엄마의 손 맛보다 강렬한 끌림은 단연코 MSG와 밀가루 맛이었으니 해외여행을 갈 때도 캐리어에 꼭 컵라면 한두 개씩 넣어가고. 다들 그러지 않나?
주입식 교육과 반복학습의 결과일까. ‘한국 사람은 밥심!’이라며 밥그릇 넘치게 하얀 쌀밥을 가득 담아주는 엄마의 손놀림을 볼 때마다 국적을 바꾸고 싶었던 내가! 과다한 방부제 가득한 면류 섭취로 죽어도 썩지 않을 것 같은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어느새 쌀밥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가락국수를 먹을 때는 주먹밥을 놔주고, 라면을 먹을 때는 김밥을 놔줬다. 면을 먹을 때는 밥을 조금이라도 함께 해줘야 죄책감이 덜어졌고, 한 끼 식사에 쌀밥이 빠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꾸역꾸역 한 숟가락이라도 떠 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밥은 끊어도 면을 끊을 수 없는 인간이 나였던지라. 도저히 면을 끊을 수가 없었다. 파스타를 해도 국숫집에 가도 내 젓가락 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아이들의 젓가락 놀림에 함께 전투적으로 움직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 우아한 척 모성애 강한 엄마인 척 그릇을 아이들 앞으로 밀어 놔 주고 나만의 것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택배 상자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 넣어 손이 닿지 않은 냉장고 위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밥과 간식 사이의 그것들을 보면 전쟁이 나도 두렵지 않을 만큼 든든하기까지 했다.
숙취에 시달리는 날엔 보글보글한 신라면에 청양고추 한 움큼과 고춧가루 한 숟가락을 추가했다. 위장까지 긁어내는 듯한 타오름에 온몸이 짜릿했다. 왠지 내 몸에 미안한 날엔 어쩐지 건강해질 것 같은 사리곰탕에 단백질이랍시고 계란도 하나 깨 넣고 야채 추가 한다고 파도 송송 썰어 넣는다. 건강까지 챙기는 식단이라니 죄책감이 덜하다. 잠이 오지 않는 늦은 시간에 국물은 좀 부담스럽고 출출한 날엔 맥주와 함께 비빔면을 비벼 본다. 골뱅이라도 썰어 넣으면 동네 호프집 부럽지 않음에 한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 되기 일쑤였다. 아침에 부어오른 얼굴로 지난밤을 후회해 보지만 입안에 남아있는 파의 매콤함에 다시 허기가 졌다. 이것도 저것도 귀찮은 날엔 안성탕면을 꺼내 부셔 먹었다. 마치 폭죽이 터지듯 오도독 오도독 씹을 때마다 사방으로 튀는 면의 흩날림은 화려하기까지 했다.
누가 라면더러 식사 대용이라고 하는가! 온 국민의 최애 간식임이 분명하다.
앞접시를 꺼내는 시간조차 아까워 컵라면 뚜껑을 무심하게 뜯어 내 깔때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흔들흔들 춤을 추는 면발을 가득 채워 넣고 후-후- 불어 한 입 가득 채우는 순간 눈을 비비며 문이 열린다. 젠장.
“몸에 안 좋다고 먹지 말라면서 왜 엄마는 아침부터 라면 먹어?”
턱이 빠질 듯이 하품을 하는 건지 입에 넣어달라고 벌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아이의 질문이 이어졌다. 죽어서 안 썩으면 어떠하리.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는 쪽을 택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