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 1부. 6. (2)

1부. 6.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1부.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여행이 싫은 이유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단지 통제와 간섭에만 머물지 않았다. 더 깊고 날카로운 것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조건부로 평가하는 말이었다. "단돈 천 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같은 말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아이의 생존 이유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무서운 선언이었다.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성장'이 아닌 '유용성'으로 대체되면서, 나는 점점 나를 증명하기 위한 삶 속에 갇혀갔다. 그런 말들 속에 자라온 나는 더 이상 ‘아이’로서 존재할 수 없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14살 무렵이었다(만 나이로는 12살). 마당 앞에 있는 화단에서 한참 동안 꽃을 심고 있던 어머니는 학교에 가려던 나를 불러 세웠다.


“이리 와. 할 말 있어. 너 고등학생 되면 집에 올 생각 마.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너 고등학교 가면 니 짐이랑 다 태워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러니까. 다시는 돌아올 생각하지 말아. 알았어? 대답해.”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말에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기를 한참 동안 주저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대답하라며 소리치셨다. 우리의 관계 속 모습은 어머니의 뒷모습과 무응답이 주였기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마주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학교 가는 길이 얼마나 발걸음이 무겁던지, 그날부터 매일 집이 없어질 것 같은 불안에 떨었다.


어머니의 “고등학생이 되면 집에 다시 오지 말라.”, "단돈 천원도 못 버는 너는 쓸모없어."라는 말들은 내가 더는 이 집에 머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각인시켰다. 나에게 집은 돌아올 수 있는 ‘안전기지’가 아니라, 도망쳐야 할 ‘전쟁터’였고, 반복적으로 버림받는 장소였다. 어머니는 그 이후 나를 볼 때마다 고등학생이 될 날이 내가 집이 없어지는 날이라며 기억하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나는 매일 아침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면서,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서 더 이상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없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슬퍼했다.


존 볼비(John Bowlby)는 애착이론에서, 부모는 아이의 심리적 안전기지(Secure Base)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부모라는 안정된 기지를 바탕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다시 돌아와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라는 말은 단지 훈계가 아니라, 아이의 존재를 경제적 기준으로 부정하는 정서적 폭력이자, 아이의 심리적 기지를 철저히 붕괴시키는 선언이다. 심리적 안전기지가 무너진 아이에게 세상은 더 이상 ‘탐색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전장’이 된다. 탐색보다 생존이 우선되는 환경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하고, 정서적 위기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결국 이러한 언어는 아이로 하여금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무가치한 존재다.”라는 핵심 신념을 내면화하게 하고, 부모라는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전환되는 혼란형(disorganized) 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매일 아침, 어머니는 나에게 친부로부터 돈을 받아오라는 말과 “이제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 말들은 내 내면에 깊은 내상을 남겼다. 어머니는 당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며, 벌어 와야 할 수익 대부분을 외상으로 납품해 소득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었다. 내가 사는 집과 농장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큰집’이라 불리며,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집이었고, 농장은 도보로 40분은 걸려야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곳에는 농축산업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다른 형제들이 가족을 이루어 공동으로 관리했다. 가족과 친척들은 매일 아침, 가족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농장으로 모여 같은 일들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러나 농장 운영에서 얻는 수익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집에서 따로 닭을 키워 팔기 시작하셨다.


어린 시절, 미역과 전복을 손질하던 분이던 어머니는 이제 닭의 피와 내장을 맨손으로 움켜쥐며 만원에서 이만 원씩 동네 분들께 닭을 팔아 가정의 생계를 이어가셨다. 그런 어머니에게 천원도 벌어오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짐이었다. 매일 아침, 어머니의 화가 섞인 말들은 마치 감정의 자양분처럼 내면에 두려움과 수치심을 자라게 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였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 차갑게 나를 뿌리치셨고, 더 날카롭게 나를 아프게 하셨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내가 형성한 신념은 너무도 선명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유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아무 쓸모도 없는 나는,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로 이어졌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핵심 신념(core belief)의 형성이라고 설명한다. 이 신념은 이후의 관계와 자아 형성에 뿌리처럼 작용한다. 아이 시절부터 끊임없이 “쓸모”와 “가치”를 연결 지은 말은 존재 자체가 아닌 조건부 사랑만을 기억하게 했다. 내게 ‘집’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버림받을까 봐 매일 두려워해야 하는 ‘전장’이었다. 어머니의 언어는 돌처럼 날아와 내 마음 깊은 곳을 부숴놓았고, 나는 그 조각들 위를 맨발로 걸으며 어른이 되어갔다. 그것은 단순한 정서적 고통이 아니라, 심리적 안전기지(Secure Base)의 붕괴였다.


애착이론에서 부모는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고 다시 돌아와 안길 수 있는 정서적 기지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지가 무너졌을 때, 세상은 아이에게 탐색의 공간이 아닌 생존의 전장이 되고 만다. 그러던 중학교 3학년 가을무렵에 어머니는 내 손에 20만 원을 쥐여 주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야. 고등학교 교복 사.”


나는 그 돈을 들고 교복 맞추는 곳에 가서,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로 교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옷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나에게 가장 비싸고, 유일한 옷이 되었다. 고등학교는 버스로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학교 근처 친척 집에 잠시 머물다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본격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종종 나를 보기 위해 학교 근처로 찾아오셨고, 작은 용돈을 쥐여 주시곤 했다. 그리고 주말을 앞두면 꼭 전화하셔서 집에 오라며 약속을 받으셨고 전화로도 자주 “공부 열심히 해라. 주말엔 꼭 와라. 보고 싶다.”며 내게 정을 건네셨다. 그러나 나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다정한 말을 들을 때면 늘 미안함이 따랐다.


“고등학생이 되면 절대 집에 오지 마.” 그건 어머니가 수차례 반복해온 말이었다. 그 말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향한 거절의 선언이었고, 심리적 퇴출이었다. 나의 존재는 이 집에 소속되지 못하며, 돌아올 수 있는 기지를 상실한 채 세상이라는 전장 속에 홀로 던져졌다. 그 시절,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감추는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했다. ‘사라져야 안전한 아이’, ‘조용히 있는 아이’, ‘부탁을 들어주는 아이’로 나를 구성하며 불안한 애착 속에서 순응을 통해 살아남는 법을 배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래 미뤄두었던 발걸음을 내딛기로 마음먹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긴 여행처럼 느껴졌고,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시골집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절대 오지 마.”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 처음 가는 길이었기에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활짝 열려 있는 녹슨 대문 앞에 서자, 마당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봤던 어머니의 표정이 얼마나 매섭던지, 내 안에서 뭔가가 ‘덜컥’ 하고 떨어졌다. 어머니는 바가지에 무언가를 담아 다가오더니,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라고 했다. 그리고 왼손에는 바가지를 들고,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높이 들더니 내 왼쪽 뺨을 세게 내리치셨다.


“너 내가 오지 말라고 했지. 여기 니 집 아니라고 했냐 안 했냐. 기억 안 나? 니 옷이랑 책이랑 내가 다 태워버렸으니까. 여기 니 건 아무것도 없어. 꺼져.”


어머니는 독한 말을 쏟아내시곤, 왼손의 바가지에서 소금을 한 움큼 집어 나와 주변 땅에 거칠게 뿌리셨다.


“재수 없을 려니까. 거지 같은 게 와서. 빨리 꺼져.”


“버스가 끊겨서 갈 데가 없어요.”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 다시는 여기 얼씬도 하지 마.”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는 돌아서서 마당에 소금을 흩뿌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 소금은 단지 땅 위에 뿌려진 것이 아니라, 내 존재를 부정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함께 내쳐진 듯했다.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대문을 나와 버스를 타는 곳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서럽게 울었다. 버스 타는 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막차가 끊긴 뒤였다. 나는 중학생 시절 친구였던 아이를 떠올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용기 내어 부탁했다. 그날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은 이제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확인한 날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숙사도 아닌, 타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날이기도 했다. 그날 밤, 친구 집에서 나는 서럽게 울며 그날 있었던 일을 반복해 이야기했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장면들은 내 기억 속에 조금의 흐림도 없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다음 날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의 전화가 빗발쳤다.


“너, 그렇게 부탁했는데 어제도 안 오고... 엄마가 그러는데, 너 안 왔다고 하더라. 남의 자식 키워 봐야 다 이런 거라고. 아빠는 정말 실망했어.”


나는 그 전화에서 찾아갔다가 쫓겨났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말끝을 삼켰다. 그날 있었던 일을 나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아버지께 말했다. 그때 아버지는 “그 말을 왜 그때 하지 않았냐.” 고 속상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말을 했던 날은 우리가 ‘사채 빚을 내달라.’는 사건으로 연락을 끊었다가 처음 다시 만난 날이었다. 그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내 일로 또 싸우게 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집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일이 수없이 반복됐음에도 “갔었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차마 아버지께 전하지 못했다. 일하느라 늦게 집에 들어오시던 아버지는 한 번도 나를 집에서 마주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왜 안 오냐, 내가 밉냐.”는 말을 늘 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깊은 우울감에 빠졌고, 금요일 밤이면 어찌할 수 없이 울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농장에 일이 생기거나 제사를 지내야 할 일이 생기면 나를 데리러 오셨다. 농장에 도착하면 이미 일을 시작한 어머니들과 마주해야 했고,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하게 일을 나눠주시곤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가셨다. 가끔은 어머니들이 나를 가운데 두고 앉아 내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는 말들을 쏟아냈다. “쓸모없는 것.”, “키워줬더니 배은망덕한 년.”, “짐승 놈의 더러운 자식” 등 키워준 은혜를 갚으라며 일을 시키고, 일이 끝나자마자 다시 기숙사로 보내셨다. 아버지 역시 일손이 부족할 때는 나를 당연하게 불러들였고, 당연하게 책임을 맡기셨다. 사랑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떠맡겨진 책임들은 나의 심리, 정신, 육체의 에너지를 천천히, 확실하게 소진시켜 갔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된 나는 땅만 보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은 “왜 점점 어두운 아이가 되어 가냐.” 고 걱정하셨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3을 앞두고, 가족 행사라는 이름으로 모든 친척이 농장에 모였다. 긴 식탁 두 개가 바닥에 놓이고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모두가 각자 자리를 찾았고, 내 자리는 식탁 맨 끝, 가장 구석진 곳에 마련됐다. 나는 조용히 밥만 먹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 주황 바가지의 남자가 나를 매섭게 쳐다봤다. 어릴 적부터 친부의 그림자를 나에게 투사하며 미움을 전이하던 바가지 어르신(1부.2. 참고)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야 너. 이제 고3 되지? 오늘 내가 말하는데, 넌 절대 대학 같은 거 꿈도 꾸지 마. 넌 절대 못 가. 내가 너는 아무것도 못 되게 할 거야.”


그 말에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 자리에 계셨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히 밥만 드셨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어른들 중 누구 하나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날, 이 집단 안에서는 누구도 나의 편이 아니란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밥그릇에 담긴 밥을 삼등분으로 나누어 대충 입에 털어 넣고 눈물을 꾹 삼킨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이후 맛있는 음식은 나에게 고통의 기억과 함께 다가왔고 진수성찬이 차려진 밥상은 ‘조각난 마음의 상처’로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비싸고 좋은 음식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따뜻한 사람과 먹는 밥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날 이후, 나는 심리적·정신적·육체적 안전 기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리고 그 상실은, 곧 삶의 동력의 상실로 이어졌다. 고3 내내 나는 매일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고, 머릿속은 안개처럼 뿌옇고,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조용히 내 옆에 와 앉아 말을 걸어주셨다. 어쩌면 그 시절을 선생님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는 생각도 지금에서야 든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 불리는 1년은 내게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으로 남았다. 기억은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나로 존재하지 못했고, 기억 속의 나조차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 시절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지워진 것처럼 살아왔다. 기억은 지워진 게 아니라, 너무 아파서 접어둔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나를 보호했고,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얼어붙은 채 남겨졌다. 그리고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여전히 고통스럽다.




1부 6.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참고자료


1. Bowlby, John,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1988.

→ 사용된 개념: 심리적 안전기지(Secure Base), 애착 손상의 영향, 부모의 정서적 기반 상실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

2. Bowlby, John, Attachment and Loss: Vol.1 –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불안정 애착의 유형, 정서적 유기와 혼란형 애착(disorganized attachment)

3.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외상 기억의 신체화, 정서 마비와 시간 왜곡, 외상 후 기억의 결빙

4. Herman, Judith L.,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정서적 배제, 가족 내 침묵의 공모, 트라우마 이후 관계 회피

5. Main, Mary & Solomon, Judith, "Procedures for identifying infants as disorganized/disoriented during the Ainsworth Strange Situation", Attachment in the Preschool Year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0.

→ 사용된 개념: disorganized attachment의 정의, 위협 속 보호자에 대한 이중 감정

6. 나단 스프링거, 『애착의 힘』, 김세영 옮김, 윌북, 2020.

→ 사용된 개념: 유년기 안전기지 상실이 청소년기 정체감 형성에 미치는 영향

7. Ainsworth, Mary D., Patterns of Attachment, Lawrence Erlbaum, 1978.

→ 사용된 개념: 애착유형 분류(회피형, 저항형, 혼란형), 낯선 상황 실험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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