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6.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부.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여행이 싫은 이유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 시절은 모두 지나갔지만, 결코 끝나지 않고 반복됐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대학에 들어갔고,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는 일은 여전히 숨을 막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잊은 채로 살았다. 잊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기억 속 나를 지웠고,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웃고 말하며, 눈앞의 일상을 견디듯이 살아갔다. 고마웠던 순간마저 돌덩이처럼 마음속에 묻어버렸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을 덮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덩이로 눌렀다고 해서 그 기억들이 사라지진 않았다. 무의식에 남겨진 기억은 종종 꿈으로 나타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반복되며 나를 덮쳤다. 그 반복은 내가 이미 지나왔다고 믿었던 과거가 사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과거의 한가운데, 자라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는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 아이는 내가 오랫동안 고개를 돌렸던 존재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말 대신 외면했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버렸던 시간들을 나는 오랫동안 지워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가기 위해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해야 하는 순간에 다다랐다. “지우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라고 되뇌며 살아왔던 모든 일들은, 결국 나를 반복의 늪에 가둔 상처의 씨앗이었다. 나는 마침내, 과거의 나와 연결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자기 재통합(self-reintegration)’이라 부른다. 자아가 분열된 채 살아온 사람이 스스로를 다시 통합하려는 고통스러운 시도이다.
원 가족들과 연을 끊고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병실 침대 위에서 그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사건은 동생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다녀오던 길에 일어났다.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날, 뒤에서 30분가량 나를 따라오던 남자가 있었다. 전화 통화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누군가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남자는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갑자기 뛰어와 내 뒤통수에 벽돌을 내리쳤다. 강한 충격이 가해지자 내 몸은 그대로 멈춰섰고,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나 바닥에 엎드리면 공격을 멈추지 않을까 싶어, 가방을 내려놓고 조용히 누웠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누워 있는 내 얼굴을 향해 다시 벽돌을 휘둘렀다. 그 순간, 공포를 뛰어넘는 생존의 본능이 작동했다. 살고 싶다는 절박함에, 나는 하나님을 부르며 벌떡 일어섰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심리학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마주한 상황에서 인간이 비현실적으로 강한 에너지나 반응을 보이는 것을 ‘급성 외상 반응’ 또는 ‘해리적 생존 반응’이라 설명한다. 몸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 움직였던 그 순간, 나는 옆에 떨어진 가방과 핸드폰을 그대로 두고 도로로 뛰어들었다. 지나가던 차량을 세워 도움을 요청했고,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에서는 각종 검사를 받고, 간단한 수술들을 받았다. 이후 2차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했다. 수술이 끝나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깊이 잠들었다. 그 침묵의 시간 동안, 내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오히려 낯선 평온에 잠겼다. 그리고 깨어나서야 깨달았다. 외모란 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아주 가벼운 껍질 같은 것이었다.
그 사건 덕분에, 나는 오래도록 괴로워했던 외모 콤플렉스를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아랫니 두 개는 사라졌고, 두 개는 부서졌으며, 뒷머리는 찢어졌다. 이마 위에는 십자가 모양의 흉터, 왼쪽 눈 아래에는 찢긴 자국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감사할 수 있었다. 흉터가 외형에 심각한 변화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감사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날 이후로는 외모라는 것이 자존감의 기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외상 이후 자아가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 부른다. 나에게 그 날은, 단순한 생존의 날이 아니라 자기 인식이 다시 쓰이기 시작한 날이었다.
잠에서 깨어 마주한 건, 오랫동안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얼굴들이었다. 삼촌, 사촌 언니, 그리고 동생이 병실에 와 있었다. 고마움보다는 놀라움, 그리고 가볍지 않은 경악이 먼저 밀려왔다. 나는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강력계 형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경찰서를 오갔으며, 사촌 언니의 권유로 낯선 종교 시설에도 방문했다. 여러 언론 인터뷰에도 불쑥 참여해야 했다. 그때의 나는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눈과 입술은 퉁퉁 부어 있었으며, 굳은 피가 피부 위에 그대로 말라 있었다. 누가 보아도 불쌍해 보였고, 동시에 약해 보였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약해진 상태의 타인’을 통해 자신이 우위에 서려는 심리를 ‘도구화(instrumentalization)’라고 설명한다.
형사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조사해야 한다며, 내 휴대폰 통화 기록과 그 시간대 같은 기지국에서 통화하던 사람 2천여명을 추적했고, 주변인을 탐문했다(가해자가 가해 후 도망가면서 전화 통화를 한 모습이 CCTV에 찍혔다.). 그 과정에서 연락이 끊겼던 시골 아버지에게도 전화가 닿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원 가족과 연결되었다. 시골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 믿기 어려운 말을 전했다.
“잘 돼버렸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미 익숙한 언어였다. 왜냐하면, 친부 역시 사고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돈 들게 왜 살아있어?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는 그런 말을 해놓고 미안했는지, 병원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8인실 병실에서 밤새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며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순간 병원을 나가 있었다.
그의 참회는 나 없는 자리에서만 존재했다. 그의 눈물 이야기는, 옆 침대에 있던 아주머니를 통해 들었을 뿐이다. “해준 거 하나 없는데...”라며 울었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이질감만이 전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네가 너무 미워서, 같이 자란 사촌동생들도 병원에 못 가게 했고, 나도 안 갔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가족들은, 나에게 상처를 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무슨 행동과 말을 해도 내가 언제든 용서할 것이고, 다시 돌아올 것이며, 결국엔 그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줄 거라는 걸. 그리고 내가 주는 걸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그들에게 “조건 없는 귀환”을 보장해주는 말 그대로 주기만 하고(해야하고) 버려지는 ‘호구’였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관계를 ‘공의존적 착취 구조’라고 부른다. 관계 안에서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요구를 끝없이 수용하는 사람을 통해 가해자는 죄책감 없이 반복적인 가해를 지속할 수 있다.
사건 이후, 나는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가해자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고, 매일같이 ‘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철근이 부딪히는 소리만 반복되어 들려왔다. 말 한마디 없는 위협, 끊이지 않는 공포가 지속됐다. 걸려온 전화가 대포폰이라서 형사 분들도 어디에서 오는 전화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이처럼 외상 사건 이후에도 위협이 지속될 때, 피해자는 ‘지속적 외상 상태(Persistent Traumatic Stress)’에 놓이게 된다. 공포는 현실이 아닌 사람, 공간, 시간 전체로 확장된다. 그런데, 밖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동생은 자신이 다니는 종교에 나를 데려가기 위해 사람들을 조직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때 동생은 내가 살인미수 사건의 피해자가 된 이유가 자신의 종교에 들어오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이후 갈 곳이 없다고 함께 살자며 나를 찾아온 동생의 일기장엔, 종교 시설로 나를 인도하기 위한 팀의 명단과 역할, 만날 장소, 대화 내용까지 간단히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남의 일기장은 절대 보면 안 된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일기장을 통해서야 비로소 과거를 이해하게 되었다.
왜 내가 ‘가족 재판소’에 넘겨졌는지, 왜 항상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이 내용은 1부 3장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와 연결됨). 가족 재판소에 넘겨지기 몇 주 전, 사촌 언니와 동생은 자신들이 종교 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집주인 어르신께 들켰다. 어르신은 시골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자네 딸이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 같아.”
당시 나는 이미 교회를 떠난 상태였고, 하나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던 시기였다. 그때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기억났다.
“하나님이 세상에 계시면 내가 이렇게 살겠어요? 교회 같은 것도 안 나가요.”
“그러냐. 그렇지. 교회 같은 거 가지 마라. 다 돈 먹을라고 오라는 거여.”
그 대화를 떠올리며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그저 종교로부터 멀어졌을 뿐인데, 나를 감싸던 거짓말의 구조는 너무나도 정교했다. 사촌 언니와 동생이, 자신들의 종교 활동이 들통나지 않도록 ‘나’를 방패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 종교는 “자신들의 나라를 위한 모든 모략과 거짓말은 신의 이름으로 용서된다”는 사상을 핵심 교리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동생은 나를 이용하면서도, 단 한 번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그때가 돼서야 나는 왜 동생은 그렇게도 단호하게 “미안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사촌 언니, 갑자기 내 주변에 생겨난 ‘친구들’과 함께, 사이비 종교인이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했다. 그러나 나는 일기장을 통해 명백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현실 검증력 붕괴(reality-testing breakdown)’라 부른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진실을 거짓으로 뒤바꾸고, 거짓을 진실로 가장할 때 사람은 자신의 감각, 기억, 판단, 느낌조차 믿지 못하게 된다. 나는 그때부터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강박적으로 의심을 품게 되었다. 믿음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강박이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의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은 결국 강박증으로 이어졌고, 밤이면 밤마다 누군가 문을 돌리고, 두드리고, 문고리를 흔드는 소리에 누군가 나를 헤치려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문조차 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경찰을 불렀다. 내 안의 공포가 이제 외부보다 더 깊어졌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상태를 ‘외상 기반 불신에 의한 강박화’라 부른다. 모든 감각이 의심의 대상이 되고, 모든 관계가 위협처럼 느껴진다. 그 상황은 결국 사이비 종교 전문 상담소까지 이어졌다. 상담소장님은 CCTV를 설치하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동생과는 연을 끊어야 합니다.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세요.”
그 말은 곧, 나의 안팎에서 일어난 이중의 붕괴를 확인하는 선언처럼 들렸다.
이후, 나는 다시 원 가족들과 연결되었다. 명절이면 인사를 나눴고, 선물을 전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목한 가족 코스프레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 가면 따뜻한 음식을 해주었고, “언제든지 집에 오라.”며 살갑게 말했다. 로스쿨에 입학하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족’이라는 연극은 더욱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변호사 시험을 세 번 정도 남겨둔 무렵, 어머니는 내 원룸에 쌀과 반찬을 가져다주었고, 자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그 따뜻함이 너무나 낯설었다. “너는 아무것도 못 될 거다.” 라고 말했던 사람이, 이제는 나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존재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더 잘해야 했고, 더 착해야 했고, 더 많이 줘야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성인이 되어 로스쿨에 진학하고, 가족들에게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는 드디어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믿음은 어릴 적 받지 못했던 사랑을 ‘성공’이라는 얼굴로 되찾고 싶었던 간절한 보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보상적 귀환(compensatory return)’이라 부른다. 과거에 충족되지 않은 사랑과 애착을, 성취를 통해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다. 그러나 그런 나의 성공은 진짜 나로서가 아니라 ‘가족이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간 결과였다. 내가 바란 건 사랑이었지만, 가족이 본 것은 내가 줄 수 있는 효용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사랑의 이름으로 조종당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라는 희망은 끝내 같은 자리에서 무너졌다. 과거의 미해결된 애착을 해소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그건 진짜 관계 회복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워가며 유지한 관계였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공의존적 순응(codependent compliance)’이라 부른다.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를 포기하고 상대의 요구에 맞춰가는 생존 방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어색할 만큼 살갑게 말했다.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다. 마치, 나를 내쫓았던 과거는 없었던 일이고, 한 번도 상처를 준 적 없는 사람처럼 어머니는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착각에 빠졌다. 사랑받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나는 다시 그녀 곁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진짜 가족이 된 양, 그녀 곁을 맴돌며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겠다.’ 는 희망에 매달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조종하고 통제하기 위해, ‘따뜻함’과 ‘차가움’을 번갈아 사용하는 방식으로 나를 다루고 있었다. 사랑은 조건이 없다고 배웠지만, 그녀가 보여준 건 ‘사랑의 얼굴을 한 조종’이었다.
1.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신체화된 트라우마, 감각 재경험
2. Herman, Judith L.,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해리 반응, 생존 본능, 지속적 외상 상태
3. Tedeschi, Richard G., & Calhoun, Lawrence G., Posttraumatic Growth: Positive Changes in the Aftermath of Crisis, Lawrence Erlbaum Associates, 1998.
→ 사용된 개념: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삶의 재의미화
4. Beattie, Melody, Codependent No More: How to Stop Controlling Others and Start Caring for Yourself, Hazelden, 1986.
→ 사용된 개념: 공의존, 자기 상실, 관계 중독
5. Mellody, Pia, Facing Codependence: What It Is, Where It Comes from, How It Sabotages Our Lives, HarperOne, 1989.
→ 사용된 개념: 공의존적 순응(codependent compliance), 타인 중심의 자기 가치 평가
6. Whitfield, Charles L., Healing the Child Within, Health Communications, 1987.
→ 사용된 개념: 인정 중독, 내적 결핍의 보상 욕구
7. Kohut, Heinz, The Analysis of the Self: A Systematic Approach to the Psychoanalytic Treatment of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s,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71.
→ 사용된 개념: 보상적 귀환(compensatory return), 자기애 손상 회복을 위한 성취
8. Winnicott, D. W.,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 Studies in the Theory of Emotional Development,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65.
→ 사용된 개념: 거짓 자아(False Self), 부모 기대에 맞춘 자아 형성
9. Rogers, Carl, On Becoming a Person: A Therapist's View of Psychotherapy, Houghton Mifflin, 1961.
→ 사용된 개념: 조건부 수용(conditional regard), 무조건적 긍정의 결핍
10. Stern, Robin, The Gaslight Effect: How to Spot and Survive the Hidden Manipulation Others Use to Control Your Life, Morgan Road Books, 2007.
→ 사용된 개념: 가스라이팅(Gaslighting), 현실 검증력 약화
11. Bowen, Murray,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삼각관계(Triangulation), 가족 내 고착된 역할 구조
12. Freud, Sigmund,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International Psychoanalytic Library, 1920.
→ 사용된 개념: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미해결 정서의 무의식적 재현
13. Carnes, Patrick J., The Betrayal Bond: Breaking Free of Exploitive Relationships, Health Communications, 1997.
→ 사용된 개념: 트라우마 결속(Trauma Bonding), 학대와 애착의 교차 구조
14. van der Hart, Onno, et al., The Haunted Self: Structural Dissociation and the Treatment of Chronic Traumatization, Norton, 2006.
→ 사용된 개념: 현실 검증력 붕괴, 감각과 기억에 대한 신뢰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