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과거에 내가 심취했던 관계들을 생각하면 참 아쉽기도 하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 관계들을 결국 내 손으로 파괴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나는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잘해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때와 맺어갈 때 늘 타인의 감정과 표정, 상태를 살피며 말하고 행동했다. 그것이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감정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피폐해져 갔다. 내 감정을 무시한 결과는 타인과의 아름다운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느낀 무력감을 ‘상대를 바꿀 수 있다.’,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극복하려고 했다.
그때 발동된 두 가지 패턴이 있다. 하나는 스톡홀름 증후군, 또 하나는 구원자 증후군이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이렇게 작동했다. 상대가 나에게 아프게 말하고, 슬프게 하더라도 '그 사람은 날 위해서 그러는 거야.', '내가 더 잘해야 해.' 이런 식으로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구원자 증후군은 '그 사람도 아픔이 많기 때문에 내가 그를 행복하게 해줘야 해.'라는 과잉된 책임감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증후군은 트라우마 본딩의 일종으로 상대의 간헐적 강화와 감정적 착취로부터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적 굴레다. 내가 사랑했고, 심취했던 관계의 상대방이 결핍과 아픔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사람들의 결핍과 아픔을 들으면서 나는 그들을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고, 더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공의존자(코디펜던트)로서 가지게 된 감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내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의 말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를 버릴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언제나 깊이 내 감정을 자극했다. 가끔은 내가 어쩌면 상대로부터 그 말을 일부러 끌어내기 위해 몰아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이유는 그 말을 너무 자주 들어서였다. 역설적이게도 버림받지 않으려는 나의 모든 노력은 결국 버림받을 상황을 불러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신념과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나는 가치 있다.’는 뿌리 깊은 자기 믿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왜곡된 신념은 나의 불안을 끝없이 자극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결핍과 죄책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는 생각이 가져온 ‘네가 잘하지 않으면 널 버릴 수 있어.’라는 말의 연관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과거의 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표정과 감정을 살피며 행동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상대에게서 “너를 버릴 수도 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그 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 무의식은 이 말을 트리거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그 말을 듣고 나면 상대에게 더 이상 잘 보이고 싶은 욕구와 잘하고 싶은 감정이 놀랍도록 빠르게 사라졌다. 왜일까. 이런 생각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다. 어쩌면 내가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고, 잘하고 싶은 건 내 선택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니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어주는 상대의 “너를 버릴 수도 있어.”라는 말에 지나치게 반응하면서 반대의 결과로 가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애정과 사랑을 열렬히 원했던 내가 내 선택이라고 믿고 싶었던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타인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다는 걸 명확히 인식했을 때, 나는 비로소 관계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관계를 내려놓을 수 있는 유발 인자(트리거)를 얻기까지 짧게는 2년, 길게는 16년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상대에게 왜 나를 버리겠다고 말한 건지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상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버린다고 말해야 네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테니까. 너를 위해서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 말을 끌어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상대의 성격적 특성일 수도 있으니 스스로 잘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가 돼서야 그 관계가 건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드디어 인정할 수 있었다.
친부에 대해 생각하면, 언제나 이중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사랑하고 싶지만, 동시에 사랑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지 않은 존재를 사랑해야만 할 때 느껴지는 고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사랑하고 싶다.’는 감정은 그가 나의 생물학적 뿌리라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은 그가 도무지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지속적으로 고통만 주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부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심리적으로 프로그램된 상태에서 태어난다. 아기에게 부모는 우주와도 같기 때문에 아기는 부모라는 우주를 거울삼아 세상을 배운다. 하지만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상대가 부모인 경우 그 거울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깨진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며, 아이는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잃어간다. 예를 들어, 부모가 책임감이 없거나, 병적인 나르시시즘을 가졌거나, 폭력적이어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간다면 그 안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는 필연적으로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 부모 둘 다 문제이든, 한쪽만 문제이든, 아이는 양쪽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도록 설계된 존재이기에 그 사랑을 감당하기 위해 내면과 외면이 동시에 파괴되어 간다.
친부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내가 스스로 “이 날이 마지막이다.”라고 정한 어버이날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일인데, 기억이 이렇게 희미해지다니.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어린 시절 내내 “딸이기 때문에 너를 버린 거다.”, “네가 계모 밥 먹을 팔자라서, 너 때문에 엄마가 죽어서 너를 버린 거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해왔던 친부였다. 그런 친부가 성인이 된 나를 열렬히 원하게 된 이유는 그가 나이 들어 병들어가면서도 돈 한 푼 모아놓지 않았고, 그를 무료로 돌봐줄 죄책감 많은 착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는 알코올 중독을 이해해 주고 협조해 줄 사람, 무슨 말을 해도 반박하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낳아줬다.' 는 이유 하나로 모든 걸 허용할 ‘멍청하고 가엾고 착한 딸’이 필요했던 것이다. 코디펜던트로 자라난 나는 그 사람에게 아주 적절한 먹잇감이었다.
변호사 시험을 마지막으로 남겨둔 어느 시점, 친부는 술에 취한 채 새벽에 나가 동네 어르신과 시비가 붙었다. 그로 인한 폭행으로 상대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했고 친부는 미결수 상태로 구치소에 들어갔다. 재판 내내 그는 주변 사람을 통해 나에게 와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출소하는 날 혹시라도 보복당하지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당시 나는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대학원 시절 내내 유사한 사건들을 반복했던 친부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 시험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친부는 시험 직전 나를 다시 찾아왔다. 갑자기 용돈을 보내주고, 친근한 말투로 전화를 걸어오며 ‘하나님이든 뭐든 믿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골 아버지까지 동원해 죄책감을 자극했다. 시골 아버지는 착하고 마음 약한 분이었고, 그의 “그래도 아버진데...” 말은 나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주변인을 이용하는 구조를 심리학에서는 플라잉 몽키(Flying Monkey)라고 부른다. 가스라이팅과 유사하지만, 3자의 도움을 통해 죄책감을 조작하는 이중 삼각 구조가 특징이다. 그 전략은 정교했고, 나는 그 죄책감의 회로 속에 갇혀 결국 다시 연락을 시작하고 말았다.
변호사 시험은 5일 내내, 매일 아침 7시에 시험장에 들어가 저녁 7시까지 보는 체력과 정신력을 극한으로 요구하는 시험이다. 그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친부는 술을 마신 채 새벽까지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직접 찾아와 난장판을 만들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했다. 그런 친부는 내게 사랑하고 싶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게 쏟아내던 사랑의 말과 “변호사가 되면 하나님도 믿겠다.”는 말에 감격해 버렸다. 나의 성과로 신과 친부가 연결될 수 있다는 환상. 그건 그야말로 신이 주신 사명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가 매일 새벽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죽도록 패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내 성공을 매개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겠다니 그건 나에게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처럼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것이 자녀가 자율성을 갖고 둥지에서 떠나는 것을 막으려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 패턴이라는 것을 나중에 심리학 공부를 하며 알게 되었다.
나르시시즘을 가진 부모는 아이의 독립을 막기 위해 혼란을 유발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자녀의 발목을 잡는다. 나는 친부의 말과 행동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만 듣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시험을 봤고, 결국 아주 정확하게 떨어졌다. 시험이 끝난 후 나는 방에 틀어박혀 일주일 내내 벽을 보며 울었다. 마침 코로나가 겹쳤고, 두 달 전 가족이라 믿었던 시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뒤였다(2부 5. 참고). 모든 게 무너져 내렸고, 나는 완전히 갇혀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부는 본격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그것이 괴롭힘인 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떻게 거기까지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친부는 늘 술을 마셨지만 그래도 이전까지는 돈은 벌어 와서 새어머니와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새어머니는 친부의 폭력성과 사랑에 완전히 길들여져 있었다. 학대받는 배우자 특유의 감정 상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 심해지고, 일조차 못하게 되자, 새어머니는 결국 친부를 떠났다. 후에 그는 구치소에서 돌아와 장롱을 열었다. 그리고 장농 안에서 수 많은 종이조각들이 쏟아져 내렸다고 했다. 그 종이들은 새어머니가 어디론가 보낸 돈의 기록들이었다고 말하며 통장엔 단 1원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인 척하며 모든 책임을 새어머니에게 돌렸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당황했다
“그동안 새어머니 때리고 아프게 한 것에 대한 위자료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도 가진 게 없었기에 속이 꽤 쓰렸다. 그 액수가 꽤 컸지만, 위자료치고는 너무 적다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는 새어머니를 죽도록 패면서 그녀와 그녀의 자녀들을 철저히 망가뜨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고, 모든 관리를 새어머니에게 맡긴 결과였다. 책임을 외주화 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0'이 찍힌 통장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그 둘은 서로에게 심리적으로 깊이 의존해 있었다. 나는 그것이 공의존적 관계라고 느꼈다. 두 분은 헤어지겠다고 하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하고 다시 만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친부가 새어머니와 헤어지기 위해 타지로 떠났는데 며칠 후 새어머니는 택시를 빌려 전국을 뒤져 그를 찾아냈다. 그리고 둘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상대를 바꾸려는 노력은 결국 같은 구조를 반복하게 만든다. 바뀌어야 할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라는 것을 배웠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바꾸지 않으면 같은 경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고,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결국 경험으로 깨달았다.
친부는 더 이상 일할 의지도, 일할 수 있는 건강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서 생활하며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친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 나 역시 친부를 부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동생 또한 결혼 후 눈치 보며 사는 처지라 그 누구도 친부를 부양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혼자서라도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리자고 이야기했고, 그 결과 친부는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동생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내내 친부는 새어머니의 폭력을 묵인하거나 방치했고, 가끔은 직접 폭행까지 했으며 급기야 청소년 시절엔 동생을 유기, 방치했다. 새어머니는 경찰서에 끌려갈 정도로 오랫동안 동생에게 정서적,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하던 사람이었다. 동생 입장에선 가해자들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마음에서 정리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 법적으로 부양 의무를 할 수 없다고 소명해야 하는 입장에 선한다는 건 트라우마를 깊이 자극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참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어쨌든 그 과정을 통해 친부는 기초수급자로 등록될 수 있었다.
기초수급자가 된 이후 친부는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해지자 다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먹는 것까지 컵라면으로 바꾸면서까지 술을 구입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친부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술과 담배를 사고 나면 국가에서 준 돈이 남지 않고 오히려 부족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도 월세 낼 돈이 없고, 학자금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먹을 것조차 없다고 말하면, 친부는 버럭 화를 내며 “니 이야기는 한 톨도 하지 마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남편은 마지막 변호사 시험을 준비 중이었고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친 시기였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국가 프로그램에 참여해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프로그램 덕분에 6개월 동안 매달 20만 원씩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시험을 준비하며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으로 가까스로 하루들을 버텼다. 그 시절,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준 유일한 분이 계셨다. 대학원 시절 만난 한 교수님. 그분은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월세라도 해.”라며 백만 원을 통장으로 보내주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교수님의 스승의 날은 꼭 챙긴다.
친부는 내가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고 여긴 듯, 자주 나를 자신의 원룸 방에 불렀다. 나는 그냥 갈 수 없어 항상 이것저것 사들고 방문했다. 생신이면 음식을, 명절이면 선물을 준비하며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 믿는 일들을 해냈다. 친부는 내게 자주 말했다.
“냉장고 열어봐 봐.”
냉장고 안엔 새어머니가 줬다는 김치와 몇 가지 반찬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떠나놓고도 가끔 쌀과 김치를 가져다주는 걸 보면 ‘그래도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냉장고를 보며 나는 늘 생각했다. “이 말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왜 자꾸 냉장고를 열어보라고 할까?”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내 방 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안엔 김치 한 조각조차 없었다. 냉장고는 친부의 결핍과 의존, 그리고 내게 전가된 생존의 책임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필요할 때마다 나를 불러대는 친부 덕분에 나는 늘 난감했다. ‘가족이니까, 자식이니까.’라는 말로 나는 친부의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는 무언의 책임감에 짓눌렸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며 타인을 돌보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화가 나고 속이 뒤집힌다. ‘화병(火病, Hwabyung)’이라는 정신 신체 증후군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진단되는 문화적 정신신체 증후군으로 억눌린 분노와 억울함이 누적된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이제야 화병이라는 정신 신체 증후군을 내 삶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친부가 냉장고를 열어보라고 말한 날 밤 나는 친부가 좋아하는 라면과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을 보내드렸다. 구치소에 수감된 직후, 친부의 짐은 모두 새어머니에 의해 버려졌다. 겨울옷 하나 남지 않은 그가 걱정돼 나는 그릇과 식기,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 즐겨 입었던 것과 비슷한 천연 양가죽 점퍼까지 보내드렸다. 그 점퍼는 가격이 비쌌기에, 구입할 때 마음이 떨렸지만 “이게 효도지.”라는 마음으로 보내드렸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했고,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면서 이 시기에 남은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다. 친부든, 시댁이 될 곳이든, 나를 키워줬던 원 가족이든, 그들에게 나는 늘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한 에너지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 결과 나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고 그 회복에 무려 4년이 걸렸다. 지금도 더 이상 충전되지 않는 건전지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3년 전을 떠올리면 정말 많이 회복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친부를 생각하면, 그 안에 떠오르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그를 만나러 갔던 어느 날, 친부는 방 안에서 망사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벌레들이 자신을 쏘고 문다는 말을 했다. 방 곳곳엔 벌레를 잡기 위한 화학 약품들이 널려 있었고, 친부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라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밤이 되면 술을 마신 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분노했고, 나중엔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조차 사실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 나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져 대학병원 정신과에 직접 찾아가기 시작한 때였다.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없었고, 친부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인 사건들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모든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매 순간 올라왔다.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친부의 말과 행동이 중증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섬망 증상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기초수급자가 된 이후 친부는 이제 일은 안 해도 된다. 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수급 자격이 누군가에 의해 박탈될까 봐 두려워 이상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지막 어버이날, 나는 친부가 제대로 된 운동화도 없다는 걸 알고 새 운동화와 먹을 것을 사들고 찾아갔다. 친부가 운동화를 신어보며 좋아하던 순간을 담은 사진이 지금도 내 휴대폰에 남아 있다. 그날 우리는 담담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 내가 “사랑해요.”라고 말하자 친부도 “사랑한다.”라고 했고 우리는 가볍게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희망이 들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친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일부러 나 기초수급자 자격 없애려고 찾아와서 소리 내고 떠든 거지? 공무원들이 너 왔던 거 알면 내 자격 박탈될 거야. 너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
말문이 막혔다. 그날 밤 욕이란 욕은 다 들었다. 친부에게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라고 말한 후 핸드폰을 껐다. 그가 반복해서 “꼭 다시 전화하라.”라고 했지만 나는 "네."라고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더는 그를 구할 수 없다고, 사랑할 수 없다고, 그를 바꿀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내 안의 모든 책임을 내려놓았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한 판단은 이것이다. '나는 내 인생조차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누구를 바꾸고, 누구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어릴 적부터 내 안에는 뿌리 깊은 무능감이 있었다. 그 무능감은 어릴 적 아무것도 해 낼 수 없던 나를 정죄하며 키웠던 가족의 목소리에서 비롯되었다. 이 목소리는 내 안에 초자아의 목소리가 되어 나를 죄책감과 수치심의 고통에 빠지게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목소리가 주는 무능감을 견디지 못해 나는 타인의 인생을 책임지려 했다. 타인의 감정과 표정을 나의 몫처럼 떠안았다. 그러나 그 마지막 날, 나는 드디어 '더 이상 타인을 책임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날부터 나는 그저 무능한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무능하고 하찮았다. 하지만 그 무너짐 덕분에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올라설 수 있었다. 불행은 불행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나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로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친부와 쌓아야 할 사랑이 남아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 마지막 날 덕분에 나는 분명하게 깨달았다. 가족도 결국 타인이다. 그리고 인간관계 중 하나일 뿐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라면 나를 위해 과감히 선택해야 한다.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처절하게 깨달았다.
- 알코올 금단 섬망(Alcohol Withdrawal Delirium)
장기적인 알코올 사용을 갑자기 중단하거나 줄였을 때 나타나는 심각한 금단 증상 중 하나다. 증상으로 착란, 환시(환각), 초조, 불면, 발한, 고혈압, 빈맥 등이 있고, 금주 시작 후 48~72시간 이내에 흔히 발생한다.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참고 자료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SM-5: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APA, 2013
→ 사용된 개념: 알코올 금단 섬망, 정신질환 진단기준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되고, 내가 못하면 사랑이 끊긴다.’는 이 핵심 신념은 내가 자라온 어린 시절 환경에서 끊임없이 주입당한 메시지였다. 나를 어쩔 수 없이 키워주신 어머니는 늘 말과 행동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고, 해내야 한다.’는 걸 보여주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관심을 얻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서 해야만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어머니는 마루에 앉아보라며 나를 부르셨다. 나는 교복을 입은 채 어머니 앞에 섰다.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항상 네가 한 거랑 니 옆 자리만 정리하지. 그러니까 네가 이기적이라고 욕먹는 거야. 우편물이 며칠째 마당에 있는데 그걸 줍지도 않고... 보이면 주워서 마루에 놓으면 되잖아. 그거 하나 못 해?”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우편물을 나만 봤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녀 스스로 줍거나, 아버지나 할아버지, 동생들, 혹은 늘 드나들던 친척이나 동네 아줌마가 주워도 될 일이었다. 그 많은 어른들이 그냥 둔 걸 왜 나한테만 “이기적인 년”이라고 몰아붙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말과 행동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더 모든 일에서 내가 문제라고 믿게 되었다. '무조건 내가 잘못했고, 내가 잘해야만 이 모든 관계와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라는 핵심신념이 자리 잡으면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상대의 눈빛, 표정, 감정을 고려해 내 말과 행동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아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점점 더 상대의 감정을 우선하는 사람이 되어갔고, 특히 더 많이 맞춰줘야 하는 관계에 과하게 반응하며 그 관계에 중독되곤 했다. 그게 나에게는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못된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상대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그건 내 탓이다.', '내가 부족해서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지적해 준 것이다.', '상대가 아프게 하더라도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내가 맞춰주고 위해 줄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 요구는 끝없이 많아지고, 강도가 높아졌다. 그 일부 중 하나가 친부였다. 친부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나는 자아와 독립성, 자율성을 버리고 부속품처럼 기능하는 인간이 되어야 했다.
문제는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위해줄 수 있지만, 자신을 과하게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한 삶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하는 일을 지속하게 되면 결국 몸과 마음이 병든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잃고 타인의 물건처럼 기능하게 되면서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되고, 스스로를 잃게 되며, 어떤 이는 세상과 등지는 선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에야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내가 잘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 관계가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가시밭길(사명)이 아니라면 반드시 나와 타인 모두를 위해 버려야 한다.'라고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 속 인물처럼 특별한 사명이 주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고통을 신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건 종교적 자기기만이며, 이는 자기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희생을 명령하신 게 아니라면, 내가 스스로 선택한 희생은 결국 나와 타인 모두를 파괴한다. 나는 나를 잃게 되고, 타인은 나의 희생에 기댄 채 의존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바뀌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결국 문제적 인간으로 고착된다. 그러니 오히려 그 관계에서 내가 과감히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하려 했던 진정한 타인 사랑일 수 있다.
어떤 관계든 가족 관계라도 결국 인간관계다. 나의 경계와 자율성을 침범하고 파괴하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는 끊어내도 괜찮고, 끊어내야 한다. 세상이든 우주든 ‘내가 존재해야만’ 의미가 생기니까. 가족이라는 것도 내가 존재해야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가장 먼저 존중해야 할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과거의 나처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거나, 지금도 비슷한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면,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가족이라도 반드시 끊어내야 합니다. 끊어내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라고. 당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해야 하는 선택이라고 전하고 싶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들을 구구절절 적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는 항상 누군가를 위한 선택을 할 때, 그것이 상대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한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희생의 크기가 크더라도 기쁨으로 그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희생의 강도가 커질수록 하늘의 복과 은혜가 내게 임하는 것 같았고, 예수님이 나를 더 많이 특별하게 여겨주실 거라는 착각 속에 빠져들며 스스로 희생의 크기를 키워나갔다. 하지만 비슷한 관계를 반복하며 알게 된 것은,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많은 결정이 사실은 타인의 탁월한 조종과 설득 속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아픔과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잘해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핵심 신념을 감추기 위해, 내가 타인을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을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포장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희생하는 동안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고, 하늘을 나는 듯한 감정과 함께 스스로에게 감동하기도 했다. 관계에 중독되어 더 큰 중독을 위해 더 많은 희생을 요구받을 때, 나는 내 것을 버리면서까지 타인을 위한 선택을 한 나에게 감탄했다. 하지만 그건 감동이 아니라 자기기만이었다. 행위주의와 종교 중독 속에 빠져 있었고, 마치 내가 신의 사자라도 된 듯, 나의 믿음이 특별하다고 착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타인의 욕망의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며 느끼는 무력감과 고통은 결국 새벽마다 교회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울고 기도하며 내 감정을 마비시켜 하루를 버텼다. 지금 돌아보니 왜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와 이단, 중독과 착취 구조에 빠지는지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피하려 애쓴다. 그래서 잘못된 관계, 문제 있는 종교, 중독을 일으키는 약물과 과중한 업무에, 누군가는 성취에까지 중독되며 회피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봐도 나는 중독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었다. 중독에 빠지기 쉬운 회피 성향을 가졌던 내가 사이비나 다단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신께 감사할 뿐이다.
과거의 나는 원 가족 안에서 맡았던 역할을 고스란히 반복하며 살아왔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타인의 감정과 필요에 반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살폈고,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다. 나의 한계는 마지막이었던 변호사 시험에서 찾아왔다. 완벽주의자, 성과주의 인간형이었던 나는 더 이상 어떤 결과도 만들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고 느끼며 완전히 무너졌다. 그 순간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희생할 것이 더 이상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내가 해온 희생 중 일부는 정말 신이 기뻐하실 만한 것도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도와주지 않아야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를 파괴했고, 상대가 성장할 기회를 빼앗았다. 이러한 관계를 공의존 관계라고 하는데, 이 안에서 이뤄지는 공의존적 희생은 상대의 독립성을 무너뜨린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착각은 내가 만든 굴레였고, 그 속에서 상대는 점점 더 의존적인 존재로 퇴행했다. 결국 나와 상대 모두를 파괴한 선택이었다.
이제 나는 내 삶을 내가 책임지는 주체로 살아가고 있다. 글을 쓰며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일이 여전히 힘들고, 자꾸 회피하고 싶어지고, 다른 일로 눈을 돌리게 되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으려 애쓴다. 악순환을 끊겠다는 다짐과 용기로, 두려움 없이 하루를 살아가려 노력 중이다. 나는 이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도 누군가의 진심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믿는다. 그리고 내가 떠나거나 나를 떠난 관계가 더 이상 나를 슬프게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빈 공간을 채울 따뜻한 관계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다. 이제 내 안에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고, 타인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글은 앞으로는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건강한 관계들을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이다. 조건 없는 자유와 사랑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그리고 그 자유를 누릴 자격이 나에게도 있다는 확신을 담아 글에 담는다. 오늘에서야 나는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나라는 것을 믿게 됐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나를 다시 살아가도록,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나를 붙잡아주고 있다. 더 이상 조건에 나를 가두지 않겠다고, 자유롭게 나와 그리고 타인과 사랑을 나누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
1. Pia Mellody, 『Facing Codependence』, HarperOne, 2003
→ 사용된 개념: 공의존, 과잉 책임감, 조건부 사랑, 행위주의
2. Patrick Carnes, 『The Betrayal Bond』, Health Communications, 1997
→ 사용된 개념: 트라우마 본딩, 반복강박, 조건부 사랑
3. Judith Herman,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스톡홀름 증후군, 자아 해체와 회복, 경계 설정
4. Claude Steiner, 『Scripts People Live』, Grove Press, 1974
→ 사용된 개념: 조종과 역할 대본, 감정적 조작, 플라잉 몽키
5. Craig Malkin, 『Rethinking Narcissism』, HarperWave, 2015
→ 사용된 개념: 나르시시즘, 자율성 억압, 조종 전략
6.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SM-5: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APA, 2013
→ 사용된 개념: 알코올 금단 섬망, 정신질환 진단기준
7. Michael G. Kenny, “Cultural Construction of Hwabyung in Korea,” Culture, Medicine and Psychiatry, 1982
→ 사용된 개념: 화병 (문화적 표현형)
8. Carl Rogers, 『On Becoming a Person』, Houghton Mifflin, 1961
→ 사용된 개념: 조건부 사랑, 자기 존중
9. Melody Beattie,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1986
→ 사용된 개념: 관계 중독, 공의존, 통제 욕구, 경계 붕괴
10. Harriet Lerner, 『The Dance of Intimacy』, Harper Perennial, 1989
→ 사용된 개념: 경계 설정, 감정 조절, 가족 내 권력 역학
11.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복합 트라우마, 중독적 관계 패턴, 신체화된 감정 경험
12. Anne Wilson Schaef, 『When Society Becomes an Addict』, Harper & Row, 1987
→ 사용된 개념: 종교 중독, 관계 중독, 자기기만적 중독 행동
13. John Bradshaw, 『Healing the Shame That Binds You』, Health Communications, 1988
→ 사용된 개념: 수치심 기반 자기희생, 중독과 수치심의 연결 구조
14. John Bowlby,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1988
→ 사용된 개념: 애착 손상과 반복 관계, 안전기지 상실
15. 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Harper & Row, 1956
→ 사용된 개념: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16. D. W. Winnicott,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65
→ 사용된 개념: 진짜 자아 vs. 거짓 자아, 주체성 회복
17. Melanie Klein, 『Envy and Gratitude and Other Works』, The Free Press, 1975
→ 사용된 개념: 양가감정
18. B.F. Skinner, 『Science and Human Behavior』, Macmillan, 1953
→ 사용된 개념: 간헐적 강화, 조작적 조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