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7.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2) 혼자 견디는 법을 배운 시간
어린 시절부터 나는 스스로 욕구를 접는 법을 배웠고, 감정을 느끼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신념은 무의식의 기본 값처럼 자리 잡아 내 모든 관계와 선택에 스며들었다. 기쁘다고 표현하지 않았고, 슬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감정을 숨길수록 칭찬을 받았고 참는 내가 좋은 아이라는 걸 배웠다. 그렇게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신념이 내 무의식 깊이 새겨졌다. 가끔 주어지는 잘게 자른 곶감이나 간식마저도 동생에게 양보해야 좋은 아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스크림 세 스푼을 컵에 받으면 한 스푼만 먹고, 나머지 두 스푼은 동생 컵에 담았다. 그 행동으로 어머니께 칭찬을 받았고, 그 칭찬이 좋아서 더 많은 욕구와 행복을 포기했다. 곶감에서 배운 기다림과 포기, 인내는 이후 몸이 부서진 순간에도 반복됐다.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무렵. 나는 1년 동안 걷지 못할 정도의 교통사고를 겪었다. 이 시기는 내 시야가 처음으로 ‘또렷해진’ 순간이기도 했다. 이미 눈이 심하게 나빠져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교탁 바로 앞에 앉아도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나빴기 때문에 안경을 쓰기 전까지 찍힌 모든 사진 속에서 나는 거의 눈을 감고 있다. 흐릿한 세상 속에서 무감해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력이 나빠진 원인에는 할아버지가 24시간 틀어놓던 텔레비전이 있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포청천’, ‘전설의 고향’, ‘정무문’ 같은 드라마를 보며 밤을 지새웠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몰입은 단순한 재미가 아니었다. 어린 나는 드라마 속 세상을 보며 현실의 불안과 분노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와 외로움을 회피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세계에 빠져 있으면, 나를 휘감는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해 여름방학, 친부가 보고 싶다는 말을 매일 노래하듯 반복해 마침내 친부 댁에 가게 됐다. 하지만 그 여름은 기대와 달리 고단했다. 새벽에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면, 새어머니는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배고픔을 달래려고 동생과 함께 도로를 횡단하는 놀이를 했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탕을 주워 먹었다. 동네 아이들이 “거지”라 놀렸지만, 그 순간 사탕의 단맛은 수치심보다 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가 났다. 자동차 바퀴가 왼쪽 발 위를 그대로 지나갔고, 발등의 살이 완전히 벗겨져 사라졌다. 의사는 발이 잘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뼈가 온전한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이 사고로 매일 항생제 약을 먹고, 하루에 주사 세 대를 맞았다. 나중에는 주사 맞을 자리가 없어 엉덩이 옆으로 바늘 자국이 옮겨질 정도로 엉덩이는 벌집처럼 주사 자국으로 가득했다. 그 과정에서 항생제 알레르기도 생겼다. 발은 얼굴만큼 부었고, 걷는 것이 불가능했다.
목발을 짚고 시골집으로 돌아온 것은 사고 후 몇 달이 지난 뒤였다.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것은 약 8개월 후였다. 시골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치료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마데카솔 가루를 뿌리고, 붕대를 감았다 풀고를 반복했다. 붕대를 풀 때마다 상처에서는 여전히 진물이 흘렀고, 사라진 살은 더디게 차올랐다. 그런데도 아무도 내 발 상태를 묻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너무 바빠서 나를 돌볼 수 없는 거겠지.’ 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 믿음이 무너진 건, 얼마 후 동생이 팔이 부러졌을 때였다. 동생의 상처를 살피는 손길이 매일 이어졌다. 나의 상처에는 전혀 닿지 않았던 어머니의 손이 동생의 팔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닿았다. 매일 깨끗한 거즈로 상처를 덮고, 연고를 발라주며 “아프지 않니?”, “괜찮니?” 하고 물었다. 식사 때는 불편하지 않게 음식을 준비했고, 밤에는 혹시 팔이 눌리지 않을까 이불을 여러 번 고쳐 덮어주었다. 그 세심함과 애정이 눈에 보일수록, 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하던 무언가가 무너졌다. 바빠서가 아니라, 애초에 내게 관심이 없었음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몸이 아프든, 나쁜 일이 생기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고, 기대하면 실망만 돌아온다는 걸 너무 일찍 배웠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돌봄 결핍(Self-Neglect)과 과잉 독립(Over-Independence)이라 부른다. 방임이 반복되면, 누군가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자기 고통을 숨기고 혼자 해결하는 생존 전략을 세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몇 주 전, 오른쪽 발 위로 밥솥이 떨어져 왼쪽 발가락이 찢어졌다. 일주일 동안 걷지 못했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항생제 알레르기가 있고, 뼈가 부러진 게 아니라면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소독약과 마데카솔 가루로 상처를 돌봤다. 발을 살피며 며칠을 보내다 보니, 어릴 적 혼자 치료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방 한쪽 구석에서, 진물이 멎을 때까지 마데카솔 가루를 뿌리던 그 시절의 내가 겹쳐졌다. 그때의 경험이 이제는 “어떤 상처든 혼자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의 뿌리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믿음은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자랐지만, 역설적으로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힘은 양날의 검이다. 나를 회복시키는 자원이 되지만, 동시에 타인의 도움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울타리이자 벽이 되는 셈이다. 영국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Donald W. Winnicott)는 반복된 방임과 정서 결핍 속에서 아이가 ‘거짓 자아(False Self)’를 형성한다고 했다. 거짓 자아는 ‘아무 도움도 필요 없다.’고 보이지만, 사실은 인정받지 못한 ‘진짜 자아(True Self)’를 감추고 버티는 가면이다. 나는 상처를 숨기고, 괜찮은 척, 스스로 다 할 수 있는 척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사랑받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조건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핵심 신념은 결국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으로 이어졌다.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이를 ‘반복되는 좌절과 무반응 속에서 어차피 소용없다는 신념이 내면화된 상태’라고 정의했다.
도움을 요청해도 돌아오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나는 언젠가부터 요청 자체를 포기했다. 그 무기력은 아이였던 나를 침묵시켰고, 대신 ‘견디는 나’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 견딤이 나를 살렸지만, 동시에 나를 고립시켰다. 어쩌면 그때 내가 원했던 건 치료법이나 약보다 먼저 “많이 아팠겠다.”는 따뜻한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1. 자기 돌봄 결핍(Self-Neglect)
(1) 정의: 스스로의 기본적인 필요(위생, 건강, 영양 등)를 돌보지 않는 상태입니다. 특정 질병뿐 아니라, 아동기 방임 등도 위험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2) 위험요인 및 결과: 방임, 정신건강 문제, 사회적 고립, 기초 돌봄의 부재 등이 자기 돌봄 결핍과 연관되어 있음을 연구들이 시사한다.
2. 과잉 독립(Hyper/Over-Independence) 또는 과도한 자기의존
(1) 심리학적 배경: 과잉 독립은 '혼자서만 해결하려는 경향'을 의미하며, 건강한 자율성과는 달리 과잉 독립은 대인관계 회피와 신뢰 부족,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방임이나 트라우마, 반복된 실망 경험에서 비롯된 '생존 전략'으로 연구되고 있다.
(2) 트라우마와 연결: 부정적 양육 경험(예: 정서적 방임)이나 트라우마가 있을 때, 스스로만 의존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쉽게 청하지 못하는 행동 패턴이 형성될 수 있다고 여러 임상가와 연구자들이 밝히고 있다.
3. 아동기 방임의 심리사회적 영향 및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
(1) 효과: 반복적인 방임은 신뢰 결여, 친밀감 회피, 자기표현 억제, 타인 의존 어려움, 낮은 자존감 등 다양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2) 애착이론 근거: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이론에서도, 일관되지 못한 양육을 경험하거나 방임을 겪은 아이는 회피형(avoidant) 애착 또는 불안형(ambivalent) 애착을 발달시키게 되며, 이는 성인기에도 자기 돌봄 어려움과 과잉 독립 성향, 타인에 대한 신뢰 부족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1. Proctor, N., Self-Neglect: Understanding, Assessment, and Intervention, Routledge, 2014
→ 사용된 개념: 자기 돌봄 결핍(Self-Neglect)의 정의, 방임과의 연관성, 신체·정서적 자기 방치
2. Herman, Judith L.,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방임과 트라우마가 과잉 독립(Over-Independence)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메커니즘
3. Bowlby, John, Attachment and Loss, Vol. 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아동기 방임이 애착 손상, 회피형·불안형 애착 발달, 타인 신뢰 결핍으로 이어지는 과정
4. Winnicott, D. W.,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65
→ 사용된 개념: 반복된 방임과 정서 결핍 속에서 형성되는 거짓 자아(False Self)와 진짜 자아(True Self)
5. Seligman, Martin, Helplessness: On Depression, Development, and Death, W. H. Freeman, 1975
→ 사용된 개념: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 반복된 좌절과 무반응 속에서 ‘어차피 소용없다’는 신념 내면화
6. Mikulincer, Mario & Shaver, Phillip R., Attachment in Adulthood: Structure, Dynamics, and Change, Guilford Press, 2007
→ 사용된 개념: 아동기 방임이 성인기 자기 돌봄 어려움과 과잉 독립 성향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