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 13. 사랑은 특별한 순간보다

13. 사랑은 특별한 순간보다 지속에 있다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13. 사랑은 특별한 순간보다 지속에 있다.



감자 장조림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감자 5kg을 5천 원 정도에 구입해 장조림을 만들었다. 다음 날은 달걀 장조림도 만들었다. 그날그날 요리한 것들을 기록해야지 하면서도 이렇게 늦곤 한다. 이것도 2주 넘어서 오늘에야 올리는 중이다. 얼마나 맛있었던지 남편이 다 먹으면 또 해달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별거 아닌데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사실 요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요리할 맛 난다. 남편은 피드백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 먹이는 재미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함께 살고, 오늘을 같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같이 살수록 좋은 사람이라, 참 내가 복을 가득 받았구나 싶다. 엊그제 저녁에는 이런 대화도 나눴다.


“남편, 남편이 나한테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내가 많이 사랑해 줄 수 있으니

까.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 줄 거야.”


“지금도 많이 사랑해 주잖아.”


“지속적으로 사랑해 줘야지. 잘해줬다가 함부로 대했다가 이런 게 아니라. 꾸준하게.”


심리학에서 말하는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는 잘해주다 함부로 대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며 중독적 애착을 강화한다. 그러나 꾸준히 같은 태도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상대에게 ‘안전기지(safe haven, Bowlby)’가 되어주는 일이다. 꾸준함 속에서 비로소 마음은 안정을 얻는다.


꾸준하게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후부터 나는 남편의 감정, 욕구, 행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남편의 원가족과 10년 넘게 부대끼며 시간과 정서를 나눈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남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그 덕분에 지금의 평안을 함께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달 식재료를 구입하면서도 남편이 가장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한다. 9월은 쌀 10kg과 간장 1.8L(1+1) 두 품목을 제외하고 식재료 구입비로 25만 원을 사용했다. 거기에 포도를 10만 원 정도 더 구입해, 약 40만 원 초반 정도로 먹거리를 마련했다. 9월의 마지막 밤, 남편과 가계부를 함께 보며 10월에도 잘해보자 다짐했다.


그리고 포도와 초콜릿(남편이 간절히 원함)을 8만 원어치 구입했다. 대신 10월에는 과자를 먹지 않겠다고 했다. ‘과자 대신 포도와 초콜릿이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사들였다. 오늘 오전에는 택배로 받은 포도를 전부 씻어 냉동해 두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면 정말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나는 다시는 타인의 인정과 행복을 채워주기 위해 나와 남편의 시간과 행복을 깨트리지 않겠다고 오늘도 다짐했다. 타인의 표정과 감정, 행복에 민감한 사람들은 가끔 인정 중독에 빠져 가장 아껴야 할 스스로와 가까운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함부로 써버리곤 한다. 나 역시 과거에는 스스로를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심지어는 남편의 평안까지 부숴가며 남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 방기(self-abandonment)였다. 아이러니한 건 다행히 모든 순간에 남편이 함께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사건들을 생각하며 화가 나서 주체할 수 없을 때 남편이 내 마음을 인정해 주고 다독여주었다.


“괜찮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이제 안 그러니까. 안 그러면 되니까. 괜찮아. 너를 탓하지 마.”


외상 심리학에서 단 한 명의 지지자(one secure attachment figure)가 있으면 인간은 회복할 수 있다

고 말한다. 내게는 그 한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포도가 먹고 싶다면 다른 걸 아껴서라도 먹여주고 싶고,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어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내가 가진 사랑을 꾸준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먼저 건네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랑을 지속적으로 주기 위해 내가 총체적으로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오늘도 참 즐거웠다.


참고자료


1. Bowlby, John,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1988

→ 사용된 개념: 안전기지(Safe Haven), 애착이론


2. Skinner, B. F., 『Science and Human Behavior』, Macmillan, 1953

→ 사용된 개념: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행동주의 심리학


3. Beattie, Melody,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1986

→ 사용된 개념: 공의존(Codependency), 자기 방기(Self-abandonment)


4.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단 한 명의 지지자(one secure attachment figure), 외상 회복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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