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9. (1) 붉은 손톱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누구에게나 생은 한번뿐이다. 그러니 충분히 실수할 수 있고, 돌이켜도 된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번 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소중한 인생을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것으로 살지 못하는 실수를 나도 누군가도 멈출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 역시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 글 붉은 손톱을 쓰기까지 오랜 망설임과 내면의 저항을 통과해야 했다.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나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과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부딪히는 자리였다.
내면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심리적 불안을 자극한다.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마음 깊은 곳이 흔들린다. 그래서 이 장을 쓰기 전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며 회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어서 오늘 드디어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 앉았다. 연재를 멈춘 삼주(3)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쓰려고 앉았다가도 딴짓으로 도망치곤 했다. 수학 공부를 해야 해서 수학책을 폈다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영어 공부가 생각나 영어 단어를 외우는 식으로 한 눈을 팔았다.
핑계를 대자면 그냥 굴러온 돌멩이 하나가 마음 벽을 매섭게 내리친 덕분에 아무 이유 없이 열병을 앓았다. 그렇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그 사이 아직 풀지 못한 수학 공식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회피하고, 불안해하고, 속상해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일을 반복하다 차라리 그냥 써버리자 라는 마음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중이다. 누군가는 어쩌면 내 글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핑계를 가득 늘어놓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살면서 돌아보니 나는 언제나 내 것이라고 생각한 물건들조차 당연히 타인에게 먼저 양보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좋은 것이 내게 들어왔을 때 그것을 혼자 누리면 불안하고 두려웠다. 타인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 자신에게 죄책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이 찾아오면 나는 습관처럼 타인에게 내 것을 선물하면서 불안과 공포를 깎아냈다. 그리고 문득 그 시작이 어디였을까 오래도록 되짚다가 붉은 손톱이 떠올랐다.
세 살 무렵, 우연한 사고로 엄마를 잃고 동생과 고아원(보육시설)으로 보내졌다.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친부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잠시만 아이들을 맡아달라, 돈을 드리겠다.'는 부탁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 형편이 어렵다며 거절했다.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졌을 때, 친부는 긴 터널을 지나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우리(나와 동생)를 껴안고 한참 울었다고 한다. 결국 그 길 끝, 터널 바로 근처에 있던 고아원에 우리를 맡겼다.
지난 2부 8장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점이 있다. 친부가 내게 “네 이름을 엄마 죽음을 막기 위해 액막이로 지었는데,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해서 네 엄마가 죽은 거야.”라고 말하며, 엄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내게 전가했던 부분이다. 친부는 수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자신의 책임을 내게 떠넘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명백한 가스라이팅이었다. 오랜 세월 그 말을 들으며 자라온 나는 어느 순간 그것을 사실처럼 믿어버렸다. 그러나 글을 쓰며 다시 돌아보니, 이름을 지어준 건 태어나자 마자였을 것이고, 가족관계등록부(등본)에 내 이름이 올라간 것은 5살 후반 무렵이었다. 그러니 이미 그때는 엄마가 세상에 없었다. 그러니 그 말이 전혀 사실일 수 없었다. 그 단순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나서야 왜 그동안 한 번도 이 부분을 의심하지 못했는지 놀라웠다. 마치 오랜 시간 안에 갇혀있다 알을 깨고 나온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지속적인 언어적, 정서적 폭력이 한 사람의 사고를 30년 넘게 파괴하고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그리고 그제야 5살 무렵까지 내 이름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제멋대로 불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이 나는 네 개, 혹은 그 이상 되는 이름으로 불렸다. 혜령, 혜련, 소정, 혜정 이런 식이다. 누가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나는 그저 따르고 대답해야 했다. 그러니 어릴 때 어른들이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며 타박했던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내 이름조차 누군가에게 빼앗겨 대충 불리다가, 그마저 귀찮으면 야, 너, 이 새끼, 저 새끼로 불렸다. 이름 액막이를 못해 엄마가 죽었다는 말을 믿어야 했던 건 아이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을까. 그러니 이제야 분명히 말하지만 엄마의 죽음에 내 잘못은 단 한 점도 없다.
고아원 생활이 시작되고서 나는 야, 너, 이 놈, 저놈으로 불렸다. 이름이 없다는 건 존재의 증거가 사라지는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그곳에서 나는 자주 싹수없다는 말을 들었다(싸가지 없다.). 대답을 잘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으며, 남에게 관심이 없는 아이라는 이유로 선생님들은 센 고집을 고쳐야 줘야 한다고(꺾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름도 없고, 고집도 세며, 부모님에게조차 버려진(제대로 없는) 아이는 누가 함부로 대하더라도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를 헬리콥터 아저씨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나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였다. 게다가 헬리콥터까지 타고 다니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이었다. 아저씨는 종종 내게 와서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헬리콥터를 보여주겠다고,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헬리콥터를 본 기억은 어렴풋있지만, 실제로 탔던 기억은 없다. 가끔 꿈속에서 아저씨 손을 잡고 헬리콥터를 보러 가거나,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다 떨어질까 두려워했던 장면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헬리콥터 아저씨는 처음 방문하신 이후 자주 나를 만나러 와 주셨다. 물론 나만을 위해 온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저씨가 오면 나는 아저씨 옆에 찰떡처럼 달라붙어 그가 보육시설을 나서는 순간까지 따라다녔다. 그리고 금방 다시 오라며 마당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눈물까지 펑펑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아저씨는 정말 자주 찾아오셨다. 오실 때마다 내 이름을 부드럽게 불러주며 작은 손을 꼭 잡아주셨다. 함께 시설 이곳저곳을 구경했고, 내 기억에는 흐릿하지만 세상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던 것 같다. 어쩌면 이때의 따뜻한 경험이 남아, 성인이 된 후 내가 보육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날이었을까 아니면 크리스마스였을까. 선물 꾸러미를 가득 들고 오신 날이 있었다. 그 선물 꾸러미 안에는 플라스틱 공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뽑기를 하면 톡 하고 나와 발로 밟으면 두 개로 쪼개지는 공 모양의 캡슐볼(가챠볼)이었다. 아이들에게 몇 개씩 캡슐볼들이 나누어졌다. 나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캡슐 볼을 한 움큼 받았다. 캡슐볼을 까볼 생각에 설레며 주머니에 가득 넣고 뺏기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때 선물 꾸러미를 들고 있는 헬리콥터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내게 잠깐 밖으로 나와보라고 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셨다. 금빛이 은은한 목걸이였다(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신이 나서 목에 걸고 뛰어다녔다. 아저씨는 내게 소중히 간직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날 저녁,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캡슐볼들을 가득 가져와서 바꾸자고 했다. 양보해야 착한 아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단호히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거절해도 선생님은 자기가 보관하겠다고, 더 좋은 것과 바꿔준다며 내게 목걸이를 달라고 했다. 한눈에 봐도 목걸이와 캡슐볼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이리저리 도망치다 붙잡혀 몇 대 맞았다. 그리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결국 목걸이와 캡슐볼을 교환했다. 캡슐을 열자, 그 안에는 붉은 플라스틱 손톱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선생님은 그 손톱이 좋은 거라며 손톱에 붙이면 예쁘다고 했다. 나는 손톱을 씹어보기도 하고, 바닥에 던지기도 했다.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며 꼭 다시 목걸이를 되찾아야지라는 생각을 품은 채 매일 밤 잠이 들었다. 하지만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금세 목걸이를 잊어버렸다. 사실 되찾을 수도 없었다. 맡아주시겠다고 했던 선생님이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남은 건 기억 속 붉은 손톱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만 깊게 남았다. 그 후로 나는 붉은색이 들어간 물건을 모조리 싫어하게 됐다.
이 장을 시작하며 '붉은 손톱'을 떠올린 이유가 있다. 이때부터 내게 들어온 좋은 것들은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고, 당연히 누군가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믿게 된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그 시작점을 찾아 헤매다 드디어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 내 것을 빼앗아도 '내가 양보한 거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마음을 지켜냈다. 그것이 어린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어기제였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선택 후 지지 편향(post-decision dissonance reduction)이라 부른다.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한 뒤,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기 위해 새로운 근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붉은 손톱이 정말 예쁘다고, 내가 선생님에게 양보한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감정과 생각을 마비시켰다. 그것은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너무나도 어린 방식의 생존법이었다.
그 이후 고아원에서 나와 친척집에 맡겨졌을 때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내게 좋은 물건이 들어오면 언제든지 내 또래 친인척들에게 강제로 양보해야 했다. 나를 키우신 어머니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나를 위해 보내준 물건들을 다른 아이들에게 보내며 내가 '말을 듣지 않아서', '고집이 세서', '꼴 보기 싫어서' 다른 사람 줘버렸다는 지독한 말을 덧붙이곤 했다. 그 말들은 어린 나에게 칼처럼 꽂혔고, 내가 그녀에게 잘못한 것이 많아 내 것을 잃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녀의 날카롭고 굳은 표정 속에는 자신만의 속죄심이 숨어있었다. 그렇게라도 누군가에게 빚진 마음을 갚으려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서른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이 부분은 다른 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어머니는 어떤 날은 햇살처럼 따뜻했지만, 대부분의 날은 냉기가 흐를 만큼 매섭고 냉정했다. 그녀가 나를 다정하게 대하는 날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내가 동생들에게 내 것을 양보하거나, 그들의 문제를 대신 해결했을 때였다. 나는 고아원에서 했던 그대로 내가 원해서, 나는 착한 아이니까 라며 스스로의 감정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끊임없이 내 것들을(시간, 힘, 물건 등) 내어주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선택해 온 행동과 생각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 덕분에 성인이 된 이후 내 주변은 '호구 같은 나(나를 쉽게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나)'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용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진짜 호구였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순진하고 착하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좋은 사람들을 밀어냈다(정말 지금도 안타깝고 속상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유이용권을 끊은 것처럼 나를 함부로 대하고, 이용해 줄 사람들로 다시 채워 넣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관계가 내겐 숨 쉬듯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둘러 싸여있던 관계 구조를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해 낸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 부른다. 어린 시절 학대, 착취, 무시, 이용당했던 관계가 '익숙함'으로 내면화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나 관계 패턴을 반복해서 선택하게 되는 심리적 현상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그들 중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내밀한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친구였다. 그랬던 그녀가 내 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짓밟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거의 5년 후쯤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일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고 다녔는데, 오래 지켜봐도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이상해서 그냥 무시했었어."
이야기를 전해준 친구는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말할까 말까 하다 이제야 말한다며 미안해했고, 안타까워했다. 그녀가 퍼뜨린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난잡해서 동네 할아버지를 유혹하고 몸을 주고 다녔다는 것, 그래서 행실도 몸도 더럽다는 내용이 이었다. 게다가 나를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말들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몸 전체가 굳는 듯했다. 그 말을 하고 다녔던 사람은 한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 었다. 그랬던 그녀가 내가 겪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친족 아동 성폭력 사건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왜곡해 나를 짓밟았다는 사실은 숨이 막힐 만큼 잔혹했다. 더욱 충격적인 건 나는 그 비밀을 말을 전해준 친구에게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로 내 삶을 가득 채워왔던 내 선택과 내 실책을 이제는 내 입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진실이 다 밝혀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를 내고(나고), 없는 사실로 사람을 쉽게 무너뜨리고, 망가트릴 수 있었다. 내 앞에서는 다정하게 웃으며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아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어디 이 한 가지뿐 이겠는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애초에 이해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안을 오히려 안정과 평안으로 느꼈다는 것을 심리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진짜 평안과 행복이 찾아오면 언제든 그것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불안해졌다. 언제든 그것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공포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정은 낯설고, 불안이 오히려 익숙했다.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착취를 일삼다가도, 때로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만큼 따뜻한 햇살 한 줌과 빵부스러기를 던져주었다. 폭력과 애정이 교차하는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피해자는 냉대 속에서도 다음 햇빛을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또는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이라고 부른다. 불규칙하게 주어지는 보상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중독과 유사한 반응을 일으킨다. 도파민은 불안정한 보상에 더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관계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더 깊이 매이게 된다.
나 역시 내 감정을 마비시키고, 스스로를 버려가며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만족시키는데 중독되면 결국 자신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중독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였다. 붉은 손톱을 떠올리면서 비로소 내가 나를 돌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믿어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내내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나는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고 잘못 배웠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내내 주입된 '당연히 너는 그래야 한다.'는 명령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좋은 것이 있으면 나보다 더 필요한(할) 사람에게 반드시 양보해야 하고,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명령어였다. 이 믿음은 내 유년기 전반을 관통한 일종의 '가정 교리'였다. 문제는 그 교리의 적용 대상이 오직 '나 하나'였다는 것이다. 같이 자란 또래 친인척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고, 원하는 것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았다.
심리공부를 하면서 어린 시절의 세상을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재현하며 관계를 만들어왔던 것들이 깨달아졌다. 그 재현의 결과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은 마치 내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내가 믿어왔던 세계가 완벽히 조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내면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 무너짐의 공포를 견디기 어려워, 나는 20대와 30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타인의 삶을 돌보는 일로 채웠다. 누군가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일에 몰두하면, 스스로 고통을 느낄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에너지를 타인의 생존을 위해 소진시키며 살아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면의 붕괴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회피이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나는 타인을 돌보는 방식으로 나를 잃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나를 잃었다.
과거의 나는 타인을 돕는 것이 진정한 나의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하면 결국 그 행복이 나에게도 돌아올 거라고 믿으면서 햇빛 한 줌이 내 삶에 비추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믿음은 시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이어져 그대로 반복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진정한 가족'과 '행복한 관계'를 꿈꾸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잘못 채워진 단추는 결국 어긋나서,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옷에서 나만 '톡'하고 떨어져 나가고야 말았다. 내가 더는 희생할 수 없고, 무언가를 줄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갈수록 나의 가치는 점점 사라졌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 없는 존재였다. '이제 나는 문제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그 사실을 천천히, 여실히 깨달아가는 과정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깨달음은 내 안에 깊은 상처로 남았고, 그 상처는 여전히 내 가슴을 미세하게 떨리게 한다.
오늘의 나는 시부모님과 반복했던 관계를 마지막으로, 과거의 모든 잘못된 관계를 지워내고 나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버려서(버려야만) 만들어진 관계는 결국 모두를 파괴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고, 상대를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잃는다. 그래서 나는 시부모님이 내게 주신 경험과 감정들을 이제는 감사함으로 바라본다. 그분들은 나를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만든 '관계의 스승'이었고 비극 속에서도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그분들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는 내 삶을 스스로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게 된 마지막 계기이기도 하다. 붉은 손톱에서 시작된 '나의 모든 것은 타인에게 뺏기는 것이 당연하고 소진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하며, 나의 행복을 지켜가며 관계를 맺어가겠다는 다짐으로 인생의 장을 풀어가려고 한다.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바꿔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타인을 변화시키려 애쓰지 말고, 애초에 관계 맺는 사람 자체(방향)를 바꾸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순한 문장을 삶 속에서 완전히 깨닫기까지, 나는 수없이 눈물과 콧물을 쏟아냈다. 같은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우둔할까.' 스스로를 탓하며 수십 번 자책했다. 한두 번의 실수야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열 번을 넘어가면 더 이상 단순한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이미 '패턴 속에 갇힌 피해자'였다. 사기꾼에게 한 번 속는 것은 불운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사기꾼에게 여러 번 속는다면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건 이제 네 선택이고, 네 잘못이야.'의 말의 무게를 견디며 오랫동안 과거의 잘못된 관계를 반복한 것, 비슷한 사람을 선택한 것이 모두 내 탓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어쩌면 나처럼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면의 '프로그래밍 기본 값'이 잘못 입력된 채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의 욕구를 우선해야 사랑받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게 된 심리적 각본이 무의식 속에서 선택을 반복시켜 온 나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다. 나는 그 안에서 스스로를 구해내지 못한 채 익숙한 고통을 재현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나와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고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바꿀 수 없다.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말을 건네는 이유는 어쩌면 깨어남의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이 여정을 시작했으니까.
이제야 나는 타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국 바꿀 수 있는 건 내 곁에 둘 사람과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였을 때 참된 자유와 평안을 얻었다. 나는 처음으로 참된 평화와 평안, 자유를 얻고서야 그동안 내 발목을 묶고 있었던 줄이 언제든 끊을 수 있는 하찮은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그 줄을 끊고서 내 안의 반복된 선택을 멈추고, 나를 위한 선택을 하나씩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결심 위에서 이 장을 열어 글을 쓰고 있다.
“You can’t change people. You can only change who you choose to be around.”
(사람은 바꿀 수 없다. 다만, 당신이 곁에 둘 사람은 바꿀 수 있다.)
“Stop trying to change people; change the people you’re around.”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함께 있는 사람을 바꿔라.)
1. Freud, Sigmund,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W. W. Norton, 1920
(초판은 International Psycho-Analytical Press, 영어판은 W. W. Norton에서도 출간됨)
→ 사용 개념: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익숙한 고통의 재현
2. Bowlby, John, A Secure Base, Basic Books, 1988
→ 사용 개념: 안전기지, 불안정 애착과 관계 고착
3. Ferster, C. B., & Skinner, B. F. Schedules of Reinforcement, Appleton-Century-Crofts, 1957
→ 사용 개념: 간헐적 강화와 지속성
4.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 개념: 트라우마 기억과 신체화, 고착 패턴
5. Festinger, Leon,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57
→ 사용 개념: 선택 후 부조화 감소(합리화)
목차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6.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