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연결고리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장편 소설

by 도바기

[채식주의자]를 찾으러 서점에 갔다. 찬사를 받은 책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매대에 놓여있는 [채식주의자]를 보는데 그 옆에 있는 책이 자꾸 내 눈길을 빼앗았다. 책 제목은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카페에 앉아 [작별하지 않는다]를 가방에서 꺼냈다. 책의 뒷면을 보았는데 그제야 ‘제주 4.3’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년쯤 한국사를 공부한 뒤, 한국사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그중 빠지지 않는 것 하나가 ‘제주 4.3’이었다. 7년이 넘는 시간. 정부의 독재. 갓난아기도 총성에 죽음 맞이하는 끔찍한 이야기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화도 났다. 하지만 역사와 나의 격한 감정 사이의 붕 뜬 거리감이 존재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동안엔 그 거리감이 좁혀진다.

고독하고 서늘한, 눈 내리는 겨울. 그 안에 한 없이 가냘픈 그들을 눈송이나 앵무새 같이 친숙한 소재들을 이용해 살갗에 느껴질 만큼 생생하게 그려냈다.

특히나 경화가 물의 순환을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눈앞에 있는 물이 지금 내리는 눈이 되었을 것이고, 이 눈이 제주 4.3 때 그들이 맞은 눈과 같은 눈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라는 구절이 그들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렇게 눈이 오면 생각나.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 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동상으로 발가락 네 개가 떨어져 나갔지만 아깝지도 슬프지도 않더래.]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그 사름이 꼼짝 안 허곡 앉아만 이시난, 이제는 더 물을 말이 어신가보다 생각해서. 경 헌디 그 사름이 다시 묻는 말이, 바당갓에 떠밀려온 아기가 있었느냐곡, 그날 아니라 담날이라도, 담달에라도.]


[작별하지 않는다]가 안내해주는데로 따라가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화보다는 가슴이 미어진다. 내 안의 차오르는 뭉글함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책을 바라만 보다가 문득, 이 책이 영혼의 연결고리이길 바라며 그저 그들을 안아주고 싶어진다.


책을 붙잡고 있자니 먹먹함에 빠질 것 같아 잠시 책을 덮었다.

카페에서 갑자기 울 수는 없으니!

그리고 카페 안을 구경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운명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날따라 카페에 노인분들이 많이 앉아계셨다.(평소엔 젊은 사람이 많은 곳이다.)

저분들 중에 이런 일을 겪으신 분이 있을까?

혼자 던진 질문에 잊고 지내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작년 봄쯤 집 배수관 교체 공사 때문에 하루정도 공원을 배회한 적이 있었다. 다리가 뻐근해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할머니께서 유모차를 끌고 종종걸음으로 하꾸(강아지)를 보러 다가오셨다. 유모차엔 비닐로 된 짐만 가득했다. 하꾸가 귀엽다는 말을 시작으로 젊었을 적 이야기를 해주셨다.

삼촌이 집에 놀러 와 밥을 차려주려는데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리더랬다. 열린 문으로 일본군들이 밥을 내놓으라고 소리쳤다고 했다. 당연히 겁에 질려 벙쪄있는 할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일본군들은 그릇을 비롯해 온 집을 헤집어 놓았다고 했다. 동시에 눈시울도 붉어졌다. 할머니의 눈동자는 당시의 일본군들을 보는 듯했다. 그리곤 말을 잇지 못하시고 자리를 떠나셨다. 추측하기론 그때의 할머니의 나이는 고등학생이거나 갓 20살 정도였을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들은 건 처음인지라 소심한 나에게서 나온 말은 겨우 “많이 힘드셨겠어요…”라는 짤막한 위로뿐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어찌 이렇게 다른 삶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날 할머니의 눈동자를 떠올리니 [작별하지 않는다]가 남긴 먹먹한 기분을 한동안 내 안에 고이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그들의 무게가 덜어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