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갇혀 살았구나.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장편소설

by 도바기

길을 가다 오래된 건물을 보다 보면 그간의 세월이 다가온다. 가벼운 예로 40년 혹은 그 이상 된 맛집만 봐도 할머니에서 엄마 그리고 손주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우리는 그런 식당에 가면 맛도 맛이지만 건물 내부에 남아있는 세월을 더듬으며 음식에 쓰인 양념은 얼마나 연구한 걸까. 그 시절 인테리어는 이랬구나. 손님 중에 나이 드신 분이 있으면 저분은 이 식당에 얼마나 오래 오셨을까. 여러 가지 궁금증으로 더 깊은 맛을 느낀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대온실에서도 세월이 다가왔다. 대온실 앞에서 구조물 하나하나에 의문을 품고 있으면 그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준다. 서적에서 사진으로 접하는 역사 건물이 아닌 주인공 강영두와 낙원하숙 주인 할머니의 혹은 그 외의 수많은 사람들의 세월이 담긴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주인공 ‘강영두’의 중학교 시절 ‘리사’와의 갈등이다. 강영두가 학교 때문에 석모도에서 서울로 건너가 낙원하숙에서 지내게 되는데 주인 할머니의 손녀가 ‘리사’이다. 두 번째는 현재 수리 보고서 작성 담당자가 된 강영두가 대온실 지하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론 개항기 때 창경궁 대온실의 공사의 총책임자 ‘후쿠다 노보루’의 이야기다.

과거, 현재, 역사가 교차되는 동안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과 상세한 묘사들이 사실감을 더 해준다. 20대 시절 편집자로 일하며 창덕궁과 창경궁에 관한 책을 만드셨다는 작가님의 말을 보며 건물들의 묘사에 고개가 끄덕였다.


그 사실감 덕분일까. 대부분 삶의 이야기가 그렇겠지만 책을 덮을 즘엔 인생의 덧없음이 느껴졌다.

낙원하숙에 인생을 받친 할머니였지만 세상을 떠나니 정확한 주인도 있지 않은 채 텅 비어버린 건물. 창경궁 대온실의 이야기에서 절대 빠질 수 없었던 후쿠다는 정작 일본에서는 무명이었다는 점. 사람, 동물 할 것 없이 많은 죽음을 안고 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두커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온실.

언젠가 역사를 직접 겪으신 분들이 전부 평안의 고요 속으로 떠났을 때, 남은 이들에게 기록들은 어떻게 남게 될까. 이렇게 허구의 이야기가 어쩌다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왔을 때 누가 잘못하고 누가 사과해야 하는지만 명확하다면 괜찮은 걸까.



친구와의 다툼으로 억울한 상황이 생긴 친구 은혜의 딸 산아가 억울함을 잊는 방법을 물어본다.

그러자 영두는 [잊는 건 불가능해.]라고 답한다. 이어

[산아야, 더 억울해지는 건 내가 그 억울한 일에 내가 갇혀버리는 일 같아. 갇혀서 내가 나 자신을 해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정작 영두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매일 연락하는 리사를 보면서 중학교 때 억울한 사건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결국 그걸 붙들고 있는 건 나뿐이었던가]


소설에서 리사가 과거의 영두와 현재의 영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너 사과 잘하니?]

풀지 못한 덩어리가 어떠한 말 한마디로 다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과거에 갇혀 살았구나.]


과거는 지나간 것이니 흘려보내라는 말이 아니다.

[채근담/저자 홍자성]에서는 말한다.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욕망의 물결이 끓어오르는 때를 당하여 분명히 이것을 알며 또 분명히 알면서도 그와 같은 짓을 하니, 아는 이는 누구이며 저지르는 이는 누구인가. 이러한 점에 굳세게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사악한 마귀도 문득 참된 마음이 될 것이라.]

나는 이것을 어둠에 먹히지 않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보았다. 위로받지 못한 과거는 나에게 화를 남긴다. 그 화는 점점 분노가 되어 나를 집어삼켜 사위가 보이지 않은 어둠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 길이 너무 깊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다면 나에게 상처를 준 모습과 닮아가게 된다.


[채근담/저자 홍자성]에서는 말한다.

[마음이 쉬면 문득 달이 뜨고 바람이 부나니 사람 사는 데가 반드시 고해(苦海)만은 아니로다. 마음이 멀면 수레 먼지와 말발굽 소리가 절로 없나니 어찌 산 속을 그리워함이 병될 것까지야 있으리.]

나는 이것을 어두운 산속만 바라보다 병들지 말고 마음이 쉬었을 때 보이는 세상을 담으라고 보았다.

흙 속의 어둠에 웅크리고만 있던 씨앗은 충분한 물을 맞은 뒤엔 조금씩 싹이 튼다. 자라나는 길에 단단한 흙이나 돌을 뚫고 겨우 얼굴을 내민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던 산들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을 맞이한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들의 새로움을 느끼며 자신만의 향기가 피어나는 때를 기다린다.


어둠에 묻히기 전, 예쁜 꽃을 담고 있는 작고 여린 씨앗인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속엔 어느 누구도 더럽힐 수 없는 예쁜 미소가 담겨 있다는 걸 알기에. 어둠으로 인해 그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하기에.

충분히 아파하면서도 산들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 또한 함께 담으며 향기가 피어나는 때를 맞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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