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이루어진 단단함.

[브루클린] 콜럼 토빈 장편소설 / 오숙은 옮김

by 도바기

20대 소녀 ‘아일리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일랜드에는 일자리가 없어 그곳을 떠난다. 뉴욕의 브루클린이라는 낯설지만 새로운 곳에서 연애, 취업, 공부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혼자서 첫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불안감과 달리, 책의 마지막엔 아일리시가 방황을 했던가 싶을 정도로 단단한 사람이 남아있었다.


그 굳건함은 아일리시가 부르클린으로 가려고 가방을 챙길 때, 바닷가를 배경으로 고향 친구 ‘짐’과 찍힌 사진을 챙기는 장면에서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곧 있으면 이상하고 아련한 꿈처럼 여겨지게 될 일을 추억하게 될 날이 오리라. ]


사진에 담긴 과정을 잠깐 적어보자면 책의 중 후반쯤 언니가 죽는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일리시에게 남자친구인 ‘토니’는 그녀가 부르클린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결혼하자고 한다. 오래 만난 사이가 아님에도 아일리시는 승낙했다. 고향으로 온 아일리시는 토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어느새 브루클린의 일들이 까막 득한 옛날 같아진다. 그렇게 브루클린이 과거처럼 되어 갈 때쯤, 옛날부터 쭉 자신을 좋아해 오던 ‘짐’이라는 고향 친구와 설렘을 나눈다. 이 사실을 토니의 지인인 듯한 사람이 아는 듯했고, 아일리시는 짧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살아가려 부르클린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아일리시는 다른 사람과 설렘이 담긴 사진을 가방 구석도 아니고 가방 중간에 떡하니 놓는다. 그러면서 추억이란 말을 꺼낸다. 물론 짐과의 기억 외에도 많은 시간들이 담겨 있으니 하는 소리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우습게도 그 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뒤돌아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지 싶은 일들은 쉽사리 추억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자칫하면 좋았던 주변 기억들까지 덩달아 왜곡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추억이라 말할 수 있게 만드는 여러 방법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그때의 내 모습이 어떠했든 받아들여야 함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실수를 똑바로 마주하고 반성하며, 그 짐을 버리지 않고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가 보였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굳건함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 아일리시의 엄마의 말 한마디에서 모든 것이 이해됐다.

고향으로 돌아온 아일리시가 막상 엄마를 보니 토니와 결혼한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남자친구가 내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불안하다고 해서 결혼했어.’라고 어떻게 말할지 나 또한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말을 미룬다. 하지만 오묘한 기류가 오가는 짐과의 사이에 대한 주변에서 오는 기대의 압박감에 결국 사실을 얘기해 버린다. 이때 엄마의 반응이 당황함과 배신감으로 화를 먼저 내기보단 딸과 토니의 결혼을 축복해 주며

[그 사람은 아주 착하고 친절하고 특별한 사람일 거야]

[너도 그런 면을 다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라고 말해준다.

흔히 ‘엄마’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넓은 아량을 가진 따사로운 모습이었다.

평범한 집안이었으면 등짝 스매싱 정도로 끝나지 않을 상황에 딸의 사랑을 먼저 생각해 주는 엄마라니.

어딜 가서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란 사실 하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온전한 사랑이 위태로운 아일리시를 닿지 않는 곳에서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브루클린]은 20대의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30대의 지금에서야 마음에 더욱 와닿았다. 흔들거리는 다리를 건너느라 보지 못한 지나온 길에 대해 다시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일까. [브루클린]은 타지나 타국에 갔다가 그 생활이 맞지 않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실패가 아님을 알고서도 은연중에 올라오는 ‘도망쳤다’라는 스스로의 채찍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내 삶의 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준다.

새로운 삶에서 [내가 부족한걸까]라는 불안한 질문이 든다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겠다.


그럼 [브루클린]이 대답해 줄 것이다.

[아니야, 그 상황에선 누구나 그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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