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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Oct 11. 2022

들꽃

들꽃같이만 살 수 있다면....

산에 다녀오더니

들꽃 한 아름을 안겨준다

우와

어떡해

사랑에 빠질 것 같아

 

임은자 「들꽃」전문

2019년 10월 1일 아침.

요가 교실에서 들꽃 한아름을 선물 받았다. 아침에 등산 갔다가 요가 수업에 오시는 부지런한 분이 계셨다. 나와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차를 한 잔 마신 사이도 아니다. 그저 요가 수업에서 만나 인사 나누는 게 전부인데, 그날 아침 나에게 들꽃 한아름을 안겨 주셨다. 그 색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하양과 빨강 그리고 그 중간색, 보라와 하양, 분홍과 하얀꽃 거기에 새초롬한 초록 잎사귀가 어우러진, 내가 가진 언어로는 제대로 묘사할 수 없는 색깔이다. 그때의 기록과 사진이 남아 있어 다시 찾아보지만, 보고도 그 색을 정확히 형용할 수 없다.

꽃, 

꽃은 기쁨을 관장한다. 그것이 한아름 장미든, 한 송이 꽃이든, 담장에 핀 꽃이든, 들꽃이든.

그날 아침 그분의 헌화로 나는 시샘도 한아름 받았다. 시샘은 꽃이 지닌 부작용이다. 비록 이름 모를 들꽃에 풀잎으로 매듭 한 꽃다발이었지만, 그것도 엄연한 꽃이었다. 부러움은 꽃의 품종과 아름의 크기를 가르지 않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과 그에 들뜬 내 환호의 크기가 시샘을 더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치 프러포즈를 받은 듯 설레였다. 가을 들꽃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나, 산에 가지 않으니 볼 수 없었고, 제아무리 한아름 꺾어도 나에게 오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주고 싶었다는 그분의 말씀이 감동이었다. 꽃을 꺾으며 내 환호를 상상하셨을까? 생각지도 못한 꽃에 기쁘면서도 당황스럽다. 앞뒤로 앉으신 분들에겐 미안한데 꽃은 이쁘고,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본래 피어난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있어야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게 꽃, 특히 들꽃이다. 그걸 독식하는 건 파렴치한 일이다. 생명의 소중함,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그를 넘어설 때가 있다. 선을 넘은 그분의 어긋난 양심이 감동이다.

요가를 마치고 바로 시 쓰기 수업에 갔다. 어느새 꽃과 잎이 숨이 가쁜 듯, 시들기 시작한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돼 있을지 뻔하다. 얼른 물컵에 꽃아 생명을 달래본다. 들꽃은 여기서도 주목의 대상이다. 오히려 꽃집의 꽃보다 부러움은 더 크다. 돈으로 가능한 것과 오직 정성으로만 가능한 꽃의 차이다. 부러움이 본의 아니게 시샘으로 변질된다. 오늘 시의 소재는 당연히 이 들꽃이다. 시는 잘 모르지만, 지금 이 기분이 시가 된다. 들꽃이란 짧은 시를 휘리릭 썼다. 그리곤 수업이 끝나고 그 후로 펼쳐보지 않았다.

'시'의 'ㅅ'도 몰랐던 내가 시 쓰기 수업에 앉아 있었다. 난데없는 들꽃처럼, 뜬금없는 짓이었다.

'퇴고'라는 말은 한참 이후에나 내 것이 된 단어다. 그때 쓴 시가 추천사에 실릴 거라곤 상상의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다. 추천사 파일을 열어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쩌려고 이 시를 올렸는지 난감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때 쓴 시가 무려 세 편이나 실려 있다. 퇴고라곤 되지 않은 즉흥시, 낙서에 가까운 시다. 난감했다.

우려가 눈물이 되는덴, 선생님의 글 몇 줄이면 충분했다. 추천사를 써 본 적 없다고 고민하셨다. 처음엔 아예 거절하셨다. 그러나, 첫 종이책에 함께 하고픈 내 마음을 선생님은 충분히 이해하셨고 선생님도 같은 마음으로 추천사를 써 주셨다. 어설픈 시가 선생님의 글로 살아났다. 시도 아닌 시가 시를 넘어 춤을 춘다.

어젠, 동시 선생님 두 분과 번개 모임을 했다. '콜'이 떨어지고 두 시간여 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축하 양초와 '1' 풍선 막대기를 챙겨오고, 케이크를 준비해 오셨다. 늘 아이디어 번쩍번쩍하는 천재 같은 분들이다. 평범함을 거부하신다. 톡톡 튀는 창의력이 이분들의 장점이자, 생명이다. 축하에 축하를 온 마음으로 해 주신다. 앞으로 있을 이분들의 출간에 임해야 할 내 태도도 미리 배운다.

선생님들은 추천사와「들꽃」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출간을 축하하기 위한 인사말이라 여기는데, 거듭 '들꽃'을 입에 올린다. 지하철에 공모전에 걸릴만한 시라고 칭찬한다. 글도 시도 모두 작가를 닮을 수밖에 없다며 수수한 들꽃을 나에게 빗대며 치켜 세운다.

- 당신은 코스모스 같은 사람이요. 나무는 나문데 여린 나무, 말하자면 코스모스 같은 사람이지. 큰 나무는 스스로 힘이 있지만, 호불호가 나뉘고, 코스모스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철학관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아는 분을 따라 용하다는 철학관을 찾아간 적이 있다. 오래된 주공 아파트를 상담실로 쓰고 계셨다.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칠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칠판에 적어가며 강의처럼 풀이를 해주셨다. 인성이 어쩌고, 재성이 어쩌고…. 봐도 모르고 들어도 모를 말을 늘어놓으셨다. 내 사주를 보자마자 무릎을 치시며 "드디어 때가 왔네~" 하시던 모습도 선명하다. 그분이 나를 가리켜 코스모스 같다고 하셨다.

하늘하늘한 코스모스와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들꽃을 마주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 단박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은은한 향이 나는 사람, 얼굴이 작아 잘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한 자기 얼굴을 가진 사람. 그래, 나는 들꽃에 가까운 사람인지 모른다. 화려하지 않아도 툴툴대지 않는 사람, 거친 야생을 담담히 견뎌내는 사람, 무리속에서 잔잔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 그 속에서 그들의 향과 내 향을 낼 줄 아는 사람. 그래, 나는 작지만 작지 않은 들꽃인지 모른다. 이 가을에 마주한 들꽃은 더 소박하고 정겹다. 부디 들꽃처럼만 살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다. 


덧) 매일메일은자 10-3화 였습니다.

출간소식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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