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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Aug 16. 2022

시인의 마을

한여름밤의 세레나데


폭염경보가 내렸다. 더위는 그동안의 무기력함에 대한 미련인 듯 맹위를 떨쳤다. 지리산 계곡에 다녀왔지만 잠시 더위를 피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림 사이, 선풍기와 선풍기 사이를 제외한 모든 영역을 거느리려는 더위를 말릴 자가 없다.

뜨거운 해가 넘어가고 열기는 조금씩 옅어졌다. 낡은 선풍기 한 대와 새 선풍기가 쉬지 않고 일하지만, 고객을 만족시키기엔 미미하다. 덥다면서도 에어컨 하나 달아야겠다는 말에는 손사래를 치신다.

달과 별이 뜨거운 태양을 피해 조용히 내려앉았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찬란함을 핸드폰에 담아 가려 하지만 실패다. 아무리 찍어도 별 하나만 허락할 뿐이다. 눈과 마음에 처음 보는 별인 듯 담아 온다.


어젯밤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 식구들은 더위에 순종하는 데 비해 남편의 기름진 몸은 좀체 더위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여름에 에어컨 없는 시골에 오자고 한 것부터 무모했다. 시골의 더위를 만만하게 생각했다. "여기는 시원하다."라는 엄마 말에 낚인 그의 실수다. '잔소리 할마시'라고 싫어하지만, 장모의 매력이 마누라의 매력이라 왠지 끌린다. 모르지만 당당한 건, 같잖아서 오히려 귀엽다.

옥상의 열기가 식긴 했으나 잠자리를 식혀주진 않았다. 오빠와 올케언니는 이불을 들고 마을 정자로 피했다. 신혼부부도 아닌데 괜히 방해될까 봐, 따라가지 못하고 오붓한 밤을 보내도록 배려해 주었다.

새벽 3:58. 아니나 다를까 알람이 시작된다. 시골의 알람은 도미노라 하나가 울기 시작하면 온 마을 알람이 동시에 울린다. 우리 집 수탉이 '꼬끼오'를 시작하자 놀란 수탉들이 너도나도 울어댄다. 새벽 첫소리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빈속에 목도 가다듬지 못했을 텐데, 거침없다. 삑싸리도 없다. 유선형의 볼록한 단전의 힘일까? 치골을 잡아당기고 목구멍을 활짝 열어 새벽을 알린다. 전혀 반갑지 않다. 겨우 가신 더위에 발아래 밀쳐 놓은 이불을 당겨 귀를 막는다. 막아 보지만 모기처럼 뚫고 들어온다. 


셋째 오빠네가 다음날 합류했다. 어제 그 수탉은 '소음 유발 죄'로 엄마와 둘째 오빠의 손에 맥없이 처형당했다. 새벽의 그 힘찬 기상은 죽음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살아서 같이 울어주던 수탉은 아무도 조문 오지 않았다. 조금전까지 살아 숨쉬던 닭장 안은 망연자실인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마당 구석 아궁이는 볕보다 더 뜨거운 불을 지피고 솥에는 그보다 더 뜨거운 물이 끓기 시작한다.

사위오면 씨암탉 잡아 주겠다던 엄마의 다짐은 매번 세이렌 같은 유혹에 지나지 않았다. 그보다 더 많았던 멕시코 치킨과 처갓집 양념통닭이 엄마의 수고를 대신해 왔다. 오늘에서야 그 약속을 지킨다.


어제의 열기는 오늘밤에도 여전하다. 더위는 뻔하고 아직도 수탉 한 마리는 남았다. 쟁취가 아니라 운명에 의해 서열순이 바뀐 닭장 안의 분위기가 자못 궁금하다. 수탉이 울지 안 울지를 내기하는 대신 마을 정자로 모두가 피신한다. 어제 정자에서 잠을 잔 오빠네가 그곳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시원하고 모기도 없다, 닭 소리도 안 들린다, 새벽엔 추워서 각시를 꼭 안고 잤다, 다만, 이른 새벽부터 뒷집 아주머니가 정자 옆에서 깨를 털기 시작해서 누워있기 미안했다. 그래도 그정도면 충분하다. 여기보단 낫겠다. 어차피 새벽형이니, 새벽까지만 잘 자면 된다. 닭 소리도 안 들린다니 잃어도 본전이다. 모두 합의다. 이불과 베개를 들고 난민처럼 집을 옮긴다.

일곱 명이 누워도 여유가 있다. 가지각색 이불을 펼치고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딱딱한 바닥이 아쉽긴 하지만, 욕심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는 어느새 달아나 버렸다. 풀벌레 소리, 매미 소리가 고즈넉한 여름밤을 수놓는다. 그것만 해도 충분한데, 남편이 한 수 더 뜬다.

"갑자기 노래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시인이 왔으니 '시인의 마을'을 들어야지요."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어우, 고모부~~"

음악이 나옴과 동시에 언니들의 감탄이 흘러나온다. 영원을 순간으로 몰고 오는 힘이다.

'살며시 눈감고 들어봐요,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누가 내게 손수건 한 장 건네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 테요.'

감미로운 목소리와 상념 가득한 시인의 가슴과 하모니카 소리가 한 여름밤, 아름다워서 눈물 나게 한다. 적당한 단어와 딱 맞는 단어가 있다는 어느 작가의 집필 법처럼, 지금 여기에 딱 맞는 선곡이다. 전혀 생각지 못한 어울림이다. 감탄하는 순간이다.


시인의 마을에 시인이 왔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시인을 키운 마을을 생각한다. 그 속에서 자란 어린 날을 떠올린다. 이 마을이 시인을 키운 비결은 천방지축을 허용해 준 넉넉함이었다. 내 자유를 침범하지 않은 그들의 무관심과 바쁨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되고 개그맨이 되었다.


여름밤, 숨어 있던 노래가 힐링이 되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좋은 곡은 숨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빛나기 마련이다. 조용하지만 강한 곡이다.

시인의 마을로, 진짜 시인이 되고 싶어지는 밤이다. 직업으로서의 시인이 아니라, 늘 생각하는 상태, 상념에 젖어 있는 상태 그 자체가 바로 시인이라는 임지은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어제 쓴 시가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상태, 몸속에 시가 피처럼 24시간 돌아다니는 상태가 바로 시인이다. 아름다운 노랫말을 쓴 사람이 바로 시인이고 아름다운 곡으로 만들어 불러 주는 사람도 시인이다. 여기서 이 노래를 골라내는 사람도 시인이고 음미할 줄 아는 사람도 시인이다. 우리는 여름밤, 모두 시인이 되었다.


평범과 비범은 한 끗 차이다. 모기와 닭 소리를 피해 도망간 정자를 시인의 마을로 만들어 준 것은 음악 하나였다. 늘 반짝이는 남편의 비범함을 '잔재주'라고 터부시했는데, 시골에서의 여름밤을 반짝이게 해 주었다.

그 후로 조영남의 '지금'을 오빠가 신청했고 남편이 시인에게 들려주는 곡이라며 박상민의 '해바라기'를 들려주었고 이미 취한 우리는 음악에 마저 취해 잠이 들고 말았다. 매미도 잠이 들고, 풀벌레도 잠이 들고 음악도, 아름다운 시도 모두 잠이 들었다. 할 일 없는 가로등만 깨어있다.



덧) 함께 들어 보아요~


이 글은 매일메일은자 8-3화 였습니다.



https://youtu.be/vUjJkIefL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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