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귀 다리를 넘어서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을 깎아 자리 잡은 마을은 들어갈수록 오르막으로 치달아 맨 꼭대기 집은 한참 숨이 가빠야 도착할 수 있다.
학교 가는 길, 지게 가득 풀을 베 오는 큰아버지들과 아저씨들을 신작로와 다리 사이에서 만난다. 죽었지만 여전히 싱싱한 풀이 이슬을 매달고 있다. 어떤 날엔 빨간 산딸기 줄기가 무심히 풀 위에 얹혀 있을 때도 있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풀의 무게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오던 아저씨들이 드디어 다리를 건너 잠시 쉬어간다. 쉼이 쉼 답지 못해 짐 진 채 지겟다리를 담장에 걸치고 잠시 숨을 고르거나, 지게 작대기를 담장에 꽂아 놓고 허리를 펴 보는 데 그치고 만다. "히유~" 내쉬는 한숨이 농부가 낼 수 있는 유일한 투정이다. 소를 위하는 일이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 이 무거운 짐과 걸음은 운명이라 여긴다. 다시 짊어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끝에 비로소 조그마한 집에 도착한다.
그때 큰아버지와 아저씨들은 쉰과 예순을 오가는 어른이었다. 지게를 짊어진 남자, 나이 들수록 짐이 커지는 남자, 태산 같지만 정작 몽뚱어리는 초라한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내가 보고 자란 어른이었다.
그들의 바짓가랑이는 늘 접어 올려져 있었고 흙과 이슬이 슬고 가 닳고 낡아 후줄근했고 땀에 전 냄새는 농부라는 직함이어서 씻어도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눈부신 청춘이 있었을 텐데, 희생이란 단어가 일찌감치 주름진 이마에 새겨지고 굽은 등에 올라타 있었다.
그런 짐을 짊어질 날이 나에게도 올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누구나 당도하는 어른에 어쩌면 나는 예외가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었다. 그만한 책임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감내할 희생이 내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눈에 그들은 완성된 인간의 형태이면서 죽음에 근접한 나이였다. 평균수명이 지금처럼 길지 않았고 그만큼 죽음을 자주 목격했다. 그래, 내가 본 오십은 젊음이 아니라 늙음에 더 가까웠다. 당신의 삶이 아니라 가족과 가축을 위한 삶에 훨씬 더 가까웠다. 그 어른들 덕에 누리고 살면서도 나는 감히 하지 못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토록 빨리 그 나이에 닿을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
1974년생,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쉰이 되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답다고 말할 수 없고, 아직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익숙하지 않은 숫자이기도 하다.
그때 어른의 모습과 내 모습은 여러모로 많은 차이가 나 보인다. 생계에 대한 부담과 책임은 슬쩍 남편에게 맡겨버리고 나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빠가 아빠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지게를 버리지 않았고, 부잣집에서 자란 엄마가 가난한 집에 시집와 볏단을 이고 나르며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도종환 작가의 시처럼, 오후 서너 시쯤이 오십쯤의 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김미경 강사는 100세 시대에 오십이면 이제 막 정오에 도달한 거라고 말했다. 직장에서 정오면 점심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점심을 먹으며 굶주린 오전을 달래고 오후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설익은 매실에 설탕을 범벅 한 듯한 서른과 마흔을 보내고 이제야 제맛을 낼 것 같은 후반전. 오후가 한참 지난 줄 알았는데 이제야 정오라니 고시생의 합격 소식만큼이나 반가운 소리다.
2023년 나에게 온 오십을 바라본다.
엄마는 큰며느리를 보고 나니 월경이 딱 끝나더라며 시작에 끝을 말하며 오십을 회상했고 아빠는 큰형수 환갑 잔칫날 음식 먹은 게 탈이 나 오래도록 낫질 않았고 그때 처음으로 위궤양을 진단받은 나이라고 하셨다.
내 오십은 어떤가?
이렇게 철없이 오십을 맞아도 되는 걸까? 지난주만 해도 교복을 입고 경주 시내를 활보했다. 용감함은 터무니없는 일을 자꾸 벌이니 갈수록 가관이다. 아들이 떠나 집안일이 줄어들어 좋기만 하고 주말마다 집에 오는 것도 썩 반갑잖은 일이 돼버렸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철없는 오십도 괜찮은 걸까? 이렇게 가볍고 발랄해도 괜찮은 걸까?
철없는 상상을 하고, 재미난 문장을 발견하면 웃음을 흘리고, 자고 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이처럼 기대하고 있다. 이 나이에도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라,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고민과 행동이 바깥을 향하지 못하고 내 안으로 향하고만 있다. 꺼져가는 촛불이라고 생각했던 오십이 이제 막 불쏘시개를 넣은 아궁이가 되어 반기고 있다.
가정 안에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수동적으로만 살았고 그것이 당연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적금을 넣고 알뜰히 살림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불만하기보다 순종하고 화합하며 그 속에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살았다. 그대로 살았더라도 괜찮았으리라. 그속에도 즐거움이 있었고, 갈증도 없었다. 내 삶에 대단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하지 않았다.
봄을 향해 제비가 길을 찾아 올라오듯, 글이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예고 없이 다가온 것을 나는 릴레이 선수의 바통처럼 꽉 움켜쥐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어울리는지 어색한지 살펴보기도 전에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차고앉았다. 막냇동생의 악다구니처럼 나는 뺏기지 않으려고 글을 움켜쥐고 있다.
그러고도 여전히 어른이 되는 길은 한참 남은 것 같아 지랄발광을 젊음의 상징처럼 누리고 산다. 감사하게도 오십을 '어린 것'이라고 바라보는 진짜 어른들이 있고, 실수투성이를 이해해 주는 어른이 있기에 젊음이라 억지 부리며 느긋한 마음으로 가고 있다.
오십이면 다 산 줄 알았다.
시작보다 끝에 가까운 때라고 생각했던 나이에 이르렀다. 막상 내가 당도해 보니 어림도 없는 소리다. 다 산 줄 알았던 오십은 여전히 젊고 가볍다. 어릴 적 봤던 어른의 모습을 본보는 건 이미 백기를 들었다.
나는 이제 정오에 다다른 거라고 별표를 치며 우긴다. 다 산 나이가 아니라, 막 'part 2'가 시작된 거라며 어린아이 같은 고집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