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외출 05화

퀘벡의 특별부록 오를레앙 섬
Île d'Orléans

두근두근 57세, 홀로 캐나다(퀘벡 오를레앙 섬)

by 전나무


콧소리를 섞어 달팽이처럼 동그리를 내는 프랑스어는 애교 많은 여인을 닮았습니다. 퀘벡에서 사흘 째 되는 날, 마음속에서 작은 울림이 들려왔습니다.

'오흘레헝(Orleans)섬에 고 싶어'

섬이란 홀로 뚝 떨어져 있어 독립적인 자유를 느낄 수도 있지만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을 떠올리게 되지요. 복잡한 도시를 잠시라도 떠나고 싶었습니다. 자유든 고립이든 상관없었지요.



퀘벡의 올드 시티는 유난히 단체 여행자들이 많았습니다. 도깨비라는 말이 들려오는 곳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있었지요. 저는 드라마를 한 회도 안 봤기에 관심이 없었지만 도깨비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았어요. 붐비는 시간을 피해 아침저녁으로 돌아다녔지만 뭔가 안정이 되지 않고 편치 않았습니다.


오를레앙 섬은 퀘벡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가까운 섬이지만 그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은 없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높다는 몽모렌시 폭포나 샤토 플롱트낙을 바라볼 수는 있는 유람선은 있지만 섬으로 향하는 배도 없어요. 게다가 여행사에서 운행하는 투어 버스를 알아보니 이미 예약이 끝나서 사나흘 뒤에나 가능했고요. 마지막 방법으로 렌터 카를 알아보니 예약할 수 있는 자동차가 있었습니다. 12시간 동안 도요타 스탠더드를 빌리는데 7만 원 정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요. 다음 날 아침 일찍 공항을 찾아간 건 렌터카 사무실들이 모두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예약한 <디스카운트>라는 이름의 사무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어보니 그 사무실은 공항 근처의 어떤 호텔에 있다는 거예요. 예약할 때 분명히 주소가 공항으로 되어있었거든요. 그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는 9시부터 운행을 한다니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습니다. 재스퍼에서 차를 받을 때는 사무실에서 필요한 서류에 사인을 하고 설명만 들은 후 자동차 키를 받았기 때문에 캐나다는 비교적 간단하군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그곳은 자동차 외관의 흠집을 꼼꼼히 체크하고 사진을 찍어가며 내게도 잘 살펴보라고 합니다. 그게 옳은 방법이긴 하지만 고작 12시간인데 하는 생각에 살짝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 먼저 나이아가라보다 30m나 높다는 몽모렌시 폭포로 갔습니다. 입장료인지 주차료인지 12달러를 받더군요. 원래는 별장이었던 'Manoir Montmorency'라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곤 폭포로 향했습니다.


'몽모렌시(Montmorency)'는 프랑스 탐험가 샤무엘 드 샹플랭이 붙인 이름으로, 자신의 후원자이며 1620년부터 1625년까지 뉴 프랑스의 총독을 지냈던 몽모렌시 공의 이름을 따 온 것이라 해요. 폭포로 가는 길 오른편 아래쪽에 세인트 로렌스 강이 흐르고, 강 위에 놓인 긴 다리도 보입니다. 그 다리가 끝나는 에 살짝 보이는 초록빛 섬이 오를레앙입니다. 오를레앙은 1535년 프랑스 탐험가 쟈끄 까르티에가 첫발을 디딘 후 프랑스인들이 최초로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므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그곳에서 조상의 발자취를 찾는다고 해요.


폭포 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하얀 물줄기가 나타납니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니 열댓 명 정도가 겨우 설 만한 작은 전망대가 있어요. 그곳에 서서 폭포를 바라보고 있자니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치 설탕을 흩뿌리고 있는 것습니다. 폭포가 시작되는 부분이라 전망대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일은 별 감흥을 주지 못했지요. 다리를 건너가는 게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건너 계단으로 만들어진 데크를 따라 쭉 따라 내려가면 폭포수 떨어지는 모습을 다 볼 수 있겠지만 그 수고로움은 마다하고 싶더군요. 폭포를 떠나 섬으로 향했습니다.




스마트폰의 구글맵은 직진, 우회전, 좌회전, 우측 유지 같은 단순한 방향 지시만 했지만 단 한 번도 다른 길로 접어들지 않게 정확했습니다. 이미 1주일 동안 로키에서 그 진가를 경험했던 터라 더 믿음이 갔지요.


구글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바다 같이 폭이 넓은 세인트 로렌스 강 위의 긴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서니 네 갈래 길입니다.설이지 않고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어요. 어느 쪽으로 가든 어차피 섬을 한 바퀴 돌게 될테니까요. 드문드문 서 있는 농가주택의 모습과 푸른 초원, 파란 하늘이 눈과 가슴과 마음과 머리 속에 가득 채우면서 벌써 편안합니다.




한 5분쯤 갔을까? 왼편으로 아름다운 푸른 집이 스치듯 지나갔어요. 순간적으로 탄성이 나올 정도였지요. 하지만 달리던 1차선 도로에서 바로 주정차할 공간이 마땅치않아 수 백 미터쯤을 더 간 후 가까스로 차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섬을 한 바퀴 돌 예정이라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걸 아니까요.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농가와 창고입니다.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회색을 물고 있는 청색 바탕에 핑크도 빨강도 아닌 붉은색 또한 회색을 품었는데 지붕과 창문의 테두리에 포인트로 칠해졌습니다. 무심한 듯, 화려하지 않은 그 컬러 속엔 수많은 비바람과 세월의 더께가어 있어 오히려 더 시크하게 보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심장이 쿵쾅거렸지요. 소량의 딸기와 블루베리가 가대위에 놓여있고 앞의 집보다 더 큰 창고 앞에는 방금 캔듯한 미니 당근을 손질하는 아저씨가 보였습니다.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당근 잎을 정리하는데 집중하시는지 아니면 나 같은 여행자들이 자주 찾아오는 것에 무신경해진 것인지 고개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한 발걸음으로 창고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었어요. 방 한 칸 빌려 살면 좋겠다 싶습니다. 붉은 칠이 드문드문 벗겨진 나무 바퀴가 나무 벽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옆엔 하얀 마가렛들이 무더기로 피어있고 또 하나의 바퀴 앞에는 이름도 소소한 보랏빛 비비추들이 수줍게 피어있습니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지요. 행복은 그런 사소함에서 다가옵니다. 그 아름다운 농가에서 딸기와 블루베리를 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침 10시도 안 된 시점이고 햇살이 무척 뜨거운 지라 하루 종일 차 안에 두면 금방 물러버릴 것 같았서예요. 대신 섬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 꼭 이곳에서 사리라 마음먹었지요.


Welcome을 뜻하는 프랑스어


오를레앙 섬은 길이 34km, 폭 8km로 섬을 한 바퀴 도는데 67km로 거제도의 2/3 정도입니다. 섬 전체가 캐나다 국립 사적지로 지정된 오를레앙은 6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어요. 인구가 약 7000명인 이 섬은 1935년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거의 고립되어 있었고 전기가 보급된 것은 불과 5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 이유로 인해 오를레앙은 더 잘 보존되어 정취 있고 소박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 것이죠. 1830년경에 가족이 운영했던 조선소, 300년 된 제분소나 성당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섬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가옥인 메종 드루인과 마누아 마우비드 제네스트는 17세기에 지어진 최초의 주택들인데 가구와 각종 물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옛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메종 드루인(Maison Drouin)
메종 드루인
마누아 마우비드 제네스트(Manoir Mauvide Genest)
프랑스어로 open(몬트리올이나 퀘벡에서 자주 볼 수 있음)


그 후로도 가다 서기는 반복되었습니다. 찾아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게 아니요, 그저 한적함을 느끼러 왔으니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 숫자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헤드기어를 쓰고 하이킹을 즐기는 젊은이들과 가죽점퍼를 입고 두건을 쓴 중년의 모터사이클족 또한 많아졌지요. 이른 아침에 숙소를 나선 터라 출출함을 느낄 무렵 샬레와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을 겸한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레스토랑의 실내 벽에는 수십 마리의 동물 박제가 놓여 있고 한쪽에는 테라스로 나가는 문이 있습니다. 햇빛이 너무 강해 안쪽에 앉았지요. 주문을 받는 레게 머리 청년에게 헤어가 아주 멋지다고 말하니 정말이냐며 좋아합니다. 4년을 길렀다는데 몸놀림이나 말하는 게 철부지 같더군요. 손님들에게 물컵을 가져가다 깨트리질 않나, 카펫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하질 않나, 그래도 시종 웃음 코드를 달고 다니는 청년의 이름은 아드리앙이예요. 다소 기름을 과하게 머금은 프렌치프라이를 푸짐하게 곁들인 버거와 커피는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캐나다는 수돗물을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는 터라 음식점에서 가면 일단 물을 한 병 기본으로 가져다줍니다. 리필한 커피까지 마시고 배가 든든하니 또 기분이 좋아집니다. 혹시 섬의 지도가 있느냐고 물으니 사장님께 물어보겠다고 하고는 서빙에 바빠 잊은 듯해 보였어요. 화장실에 갔다 오다 보니 리셉션 테이블에서 지도를 발견해서 한 장 가져닷 보고 있었지요. 청년은 자기보다 내가 낫다고 하면서 어떻게 찾았냐고 물어봅니다. 아드리앙은 자기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초점을 맞출 것도 없이 그저 꾹꾹 누르면서 그냥 혼자 신난 표정입니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주인 남자가 내 카메라를 보고 Mark3 nice라고 말합니다. 그러더니 Mark4를 보여주면서 자기 것이 베스트라고 어린아이처럼 으스댑니다.




오를레앙 지도


포인세티아처럼 빨간 지붕에 빨강과 초록의 창틀에 피어있는 제라늄, 서부 영화에서 볼법한 낡은 나무 울타리, 바흐가 사망할 무렵(1750년)이며 모차르트(1756년 생)가 태어나기도 전인 1749년에 지어진 성당, 강을 배경으로 서있는 천장 높은 집 하나, 제라늄 화분 하나 싣고 있는 하늘 닮은 자전거 하나, 언던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이 펼쳐지는 작은 자갈길, 사다리를 걸어놓은 벽, 하나하나 예쁘고, 반갑고, 그래서 기쁜 시간들이 느릿느릿 지나갔습니다. 신호등도 오가는 사람도 없는 도로를 무심하게 달렸습니다. 그러다 궁금하면 멈추어 사진을 찍곤 했지요. 바람을 품은 그늘에 서서 눈을 감고 공기를 호흡하다가 양 팔을 힘껏 뻗어봅니다. 섬에 있는 하늘과 나무와 바람과 풀과 공기가 모두 내 것처럼 편안합니다. 오를레앙의 모든 게 좋았습니다.




<Galerie Boutique Petronille>는 그림, 조각, 보석, 옷 등 전문 작가의 미술품을 살 수 있는 갤러리로 화려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나거나 꼭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없어 다행이기도 했는데요. 왠지 오를레앙의 소박한 전원 풍경과는 영 동떨어진 느낌의 화려한 장식품들이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지만요.



앤티크 가구나 소품을 판매하는 집을 두세 곳 들렀습니다. 만들어질 당시의 오리지널 컬러라는 300년 된 나무 옷장과 서랍장이 너무나 맘에 들었지요. 값 또한 이게 진짜 앤티크야? 할 정도로 비싸지 않았아요.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운송하려면 어똫게 해야 하느냐 물어볼까? 하는 생각을 딱 두 번 하고 포기했지요. 여행하러 온 거지 이런 걸 사러 온 게 아니니까요.


주스와 쿠키를 사러 들어간 그로서리에서 방금 딴 듯한 과일들이 투명하게 빛을 냅니다.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데 오래된 집의 응접실이 아늑하고 포근해 보입니다. 그런 곳에 살면 화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서 지내면 욕심도 없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 살면 법이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근냥 맘이 순해집니다.



지도를 보고 아드리앙이 설명해준 바에 의하면 초콜릿 집이 두 군데 있고 같은 메이커지만 쌩 페트로닐에 있는 집을 추천한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찾아간 <Café Resto Chocolaterie de l'Ile d'Orléans>역시 200년 이상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초콜릿 가게의 내부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얼핏 봐도 스무 명은 될듯한 사람들이 실내를 빙 둘러 줄 서 있습니다. dark 초콜릿을 주문하니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뜨거운 초콜릿을 부어주었어요.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뜨거운 초콜릿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초콜릿이 아이스크림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금세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초콜릿으로 변하더군요. 초콜릿 갑옷을 입은 아이스크림은 쉽게 녹지 않았습니다. 강변에 앉아 한참 동안 초콜릿을 깨부수며 아이스크림을 먹었지요.


첫 번 째 만난 초콜릿 상점

<Café Resto Chocolaterie de l'Ile d'Orléans>


프랑스의 영향으로 노랑, 빨강, 파랑 등 원색 계열의 지붕이나 건물이 파란 하늘과 어울려 산뜻하고 아름다웠어요. 조용한 휴양지에서 한껏 사치를 누리는 기분입니다. 관광객들로 북적되는 퀘벡 구 시가지를 벗어나 작은 프랑스의 멋을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섬을 오롯이 한 바퀴 돌아 퀘벡으로 가는 다리 쪽에 도착했습니다. 아침에 생각했던 대로 처음 갔던 푸른 집으로 다시 향합니다. 아침에 봤던 아저씨 혼자 계십니다.
- 제가 아침에 왔었는데 또 왔어요, 기억하세요?, 집이 참 예뻐요.

아저씨는 대답이 없습니다. 그냥 빙긋이 웃어요. 수줍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해요. 낡은 나무 가판 대위에는 작은 종이 상자에 딸기와 블루베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 옆으로 노란 껍질 콩이 한 줌, 미니 당근도 몇 개 놓여 있어요. 그게 답니다. 딸기와 블루베리 가격을 물어보니 각각 5달러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많이 저렴해서 놀랐지요. 각각 하나씩 사고 10달러를 주며 맞지요? 하니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딸기에서 달콤한 냄새가 폴폴 풍겨 나와요. 아저씨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농가와 창고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자동차를 돌려 다리 쪽으로 향했습니다. 섬에서 단 하나뿐인 주유소가 그곳에 있습니다. 차를 반납하자면 가득 채워야 합니다.


돌아가는 길목에 아 비엥또(A Bientot)라는 글씨가 쓰여있습니다. 고등학교 프랑스어 시간에 배운 걸 확실히 기억하지요.

'안녕! 또 만나요.'

또 만나고 싶어요, 또 올게요.

자동차 반납 시간은 오후 8시였지만 좀 일찍 반납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나처럼 토론토로 떠나는 엘리와의 마지막 파티를 하기 위해 호스트인 에띠앙과 그의 여자 친구 아누슈, 그렇게 세 사람은 밤 9시에 블랙 드레스를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전날 마트에서 사 온 당근, 샐러리, 파프리카를 잘게 썰어놓은 채소를 즉석밥김가루와 고추장, 참기름을 넣어 비빔밥을 만들었더니 맛이 훌륭합니다. 후식으로 딸기와 블루베리를 집어먹으며 노트북의 음악을 들었지요. 세상 행복한 시간이 흘러갑니다. 오흘레헝, 그곳에서의 하루는 여행 중에 우연히 얻은 특별한 선물이었지요.

'A Bientot, d'orleans.'d'Orlé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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