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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an 02. 2024

오페라 감상하는 골든 리트리버

26. Opera Turandot, Musical Lion King






이번 파리 여행 중 라디오 프랑스필, 런던 필, 오페라 투란도트, 뮤지컬 라이언 킹 등 네 번의 음악회를 다녀왔습니다.

11월 8일 푸치니의 대표 오페라 투란도트를 관람하기 위해 바스티유로 갔습니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은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1989년,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자리에 건립되었어요.



오페라 바스티유
바스티유 광장 혁명기념탑
1층 로비
보 타이를 맨 관객



드레스 코드는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블레이저와 블라우스등을 챙겨 갔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음악회는 빠지지 않고 다니는 터라 전 세계의 유명한 콘서트홀 수 십 곳을 다녀봤지요.

모피 코트 속에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사람부터 아웃도어 재킷에 청바지를 입은 사람까지 관람객의 복장은 천차만별입니다.

그중 가장 격식을 차린 사람들이 많았던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이었지요.


오페라와 뮤지컬은 쉽게 말해 음악으로 하는 연극으로 상당 부분이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엄연히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무대 장치와 의상, 분장, 노래, 연기, 춤의 요소는 같습니다.

다른 점을 살펴보면 오페라는 어디서 공연을 하든지 항상 원어로 노래하는 반면 뮤지컬은 공연하는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서 부릅니다.

이 말은 뮤지컬이 더 대중적이라는 뜻이지요.

오페라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오케스트라가 직접 음악을 연주하지만 뮤지컬은 마이크를 사용하며 대체로 녹음 반주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오페라는 소리가 잘 전달되는 전문 오페라 극장이 필요하지만 뮤지컬은 스타디움 같이 넓은 장소도 스피커와 음향 시설만 잘 갖춰지면 문제없지요.

요즘은 오페라의 무대나 의상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여 공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리지널 버전의 오페라 나비부인
현대적 해석의 오페라 나비 부인
오리지널 버전의 라 트라비아타
현대적 해석의 라 트라비아타
오리지널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현대식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바스티유 오페라의 투란도트 역시 그와 같은 경우인데요.

심플한 무대 장치와 의상, 뭐 그것 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내 기준으로는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지요.

주인공인 투란도트를 비롯하여 모든 출연자들이 객석을 바라보고 미동도 없이 노래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투란도트 공주와 칼라프 왕자가 절절하게 부르는 듀엣도 어떤 움직임이나 표정의 변화 없이 반듯하게 선 채로 무대를 바라보고 노래를 했지요.

마치 거리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놓여있는 파리의 노천카페 의자들처럼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평면적인 화면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페라나 뮤지컬은 다른 콘서트와 달리 무대 장치나 의상, 배우들의 표정 등 보는 즐거움이 따르는 법입니다.

마치 마네킹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 정서적으로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지요.




투란도트 공주
모든 출연자들이 객석을 향해 반듯하게 서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




오페라가 시작하자마자 뒤쪽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 재채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기침을 하여 목이 쇠서 컹컹 울리는 소리였지요.

미루어 짐작건대 연세가 좀 있는 여자분 같았습니다.

나는 차마 뒤돌아보지 못했지만 기침 소리가 들릴 때마다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집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무려 20만 원이 넘는 좋은 좌석의 티켓을 구매했는데 대략 난감이었습니다.

그쯤 되면 공연장에서 스스로 나가야 옳지요.

에티켓이라는 단어는 프랑스말 아닙니까?

어찌어찌 참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었습니다.

문제의 그녀가 제발 집으로 돌아갔기를 바랐지요.


그런데 아까 보았던 개, 골든 리트리버가 객석 통로에서 주인과 함께 걸어 나오는 겁니다.

그 개가 지나가는 걸 보았을 때 무심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려니 생각했는데 개의 주인은 어디로 보나 정상인 중년 남자였습니다.

인터미션이 끝날 무렵 그 개가 다시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더니 주인의 좌석 옆 계단에 척 하니 앉는 겁니다.

파리는 레스토랑이나 지하철 등 개의 출입이 허용되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만 오페라 극장이라니요?

어떤 경로로 그 개가 그곳에 들어왔는지는 모르나 중요한 건 공연 도중 사람들에게 방해되는 행동이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페라는 거의 3시간을 공연하는데 말이지요.

파리에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개도 있다는 게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혹시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특수견이라 하더라도 관람자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묵묵히 앉아있던 개가 신통방통했어요.




오페라 감상하는 골든 리트리버




아뿔싸~

인터미션이 끝나고 3막이 시작되자 그녀의 기침 소리도 시작되었지요.

개는 조용한데 사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관객으로 인해 불편을 겪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짐작이 되고도 남았지요.


3막이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나오기도 전에 서둘러 극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다녔던 음악회 중 가장 최악이었으니까요.

아니 이제껏 다녔던 모든 음악회라고 해야 맞겠네요.


***


4년 전, 런던에서 접한 라이언 킹은 그동안 보아왔던 뮤지컬 중 단연코 최고였습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줄리 테이머의 연출인 이유도 있지만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의상 등 뭐 하나 흠잡을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다음은 그때 쓴 브런치입니다.



https://brunch.co.kr/@silviano/173



라이온 킹은 1994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팝의 전설인 엘튼 존이 작곡을 맡고 팀 라이스가 작사, 영화 음악의 대부 한스 지머 등이 어울려 뮤지컬을 만들었지요. 게다가 줄리 테이머의 연출과 의상은 화룡점정이었습니다.


1997년 11월 13일 뮤지컬을 초연한 후 21년 만인 2019년, 세계 누적 관객 1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그보다 훨씬 일찍 초연했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은 가볍게 제쳤고 총수익금이 무려 10조 원을 넘긴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길을 걷다가 우연히 라이언 킹 공연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라이언 킹은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지만 뮤지컬은 오직 공연장에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흔한 DVD도 발매하지 않았고 Full 버전의 영상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었지요.

망설임 없이 예매를 했고 설렘 가득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파리 모가도르 극장은 런던의 라이시움 극장보다 규모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로비부터 객석까지 어린이들이 유난히 많아보였지요.

마침 그날이 핼러윈데이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등 가족 동반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더군요.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의 한 면모를 체험했습니다.




모가도르 극장
기념품 숍


2층 로비 스낵 판매
전시된 의상



극장은 키가 작은 어린이들을 위해 받침대를 준비해 놓았더군요.

미용실에서 아이들이 헤어컷을 할 때  사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이가 아주 어린 아이들도 그 위에 앉으면 앉은 키가 커져서 무대가 잘 보이도록 한 것이죠.


내 옆에 앉아계신 할머니는 앞자리의 손주들 사진을 찍으시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사진 찍는 게 영 서툴러 보였지만 표정은 한 없이 행복해 보여서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이윽고 막이 오릅니다.

주술사의 우렁찬 목소리로 시작되는데 사실 라이언 킹은 그 순간이 압권입니다.

라피키의 'Circle of life'를 시작으로 온갖 동물들이 무대는 물론 객석 통로를 이용해서 등장합니다.

이윽고 무대는 마치 엔딩 장면처럼 웅장해지면서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게 됩니다.

이 노래는 아프리카의 줄루어로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흑인 특유의 폭넓고 깊은 톤의 성량이 일품이지요.


아프리카가 깨어났습니다.

증폭된 소리와 소음의 행렬과 함께 광활한 사바나 위로 날이 밝아옵니다.

빛나는 새벽에는 동물들이 모여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새로운 날이 태어나고 새로운 삶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Circle of life'


이 땅에 도착한 날부터

눈을 깜빡이며, 햇빛 속으로  들어설 때

평생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볼 것이 더 많고

평생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일이 더 많네

이곳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고

평생 찾을 수 있는 것보다 찾아내야 할 것이 더 많네

그러나 푸른 하늘 높이 해가 오르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끝없는 원(순환)에 묶어두네

이는 삶의 순환

우리 모두를 움직이게 하지

절망과 희망을 통해

믿음과 사랑을 통해

우리가 있을 곳을 찾을 때까지

앞으로 펼쳐나가는 길 위에서

순환 안에서

삶의 순환에서



*이 영상을 권합니다.(4분 49초)


'Circle of life' (출처 : youtube)




앞서 얘기한 대로 런던에서는 라이언 킹의 가사가 영어였지만 파리 공연은 프랑스어입니다.

물론 영어 가사 자막이 스크린에 표시되지만 음악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달랐지요.

영어로 부르는 판소리 심청가를 상상해 보시면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그 나라 가사로 바꾸어 부르긴 하지만 뮤지컬 역시 원어가 최고입니다.


한 마디로 평하자면 프랑스 배우들의 노래는 런던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뭐 그렇다고 형편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귀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들 대신 한 몫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이들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루에 오천 번을 웃는다고 하지요.

시시각각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무대 위의 배우들을 신명 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고 힘이 있었습니다.




모가도르 극장



그날 역시 11번 메트로가 밤 10시 이후에 운행을 하지 않는 날이어서 12번 메트로와 버스를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게 도착한 시간이 11시 40분,

음악회를 다녀오는 날은 늘 귀가가 늦습니다.

어느덧 여행을 끝낼 날이 11일 앞으로 다가왔어요.

오늘도 후회 없는 하루였습니다.

그러면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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