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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Oct 11. 2016

비 내리던 타르투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여행(8. 타르투)





  여행의 전반기와 후반기는 마치 롤러코스터 같다. 동력을 필요로 하는 전반기는 더디고 힘들다. 하지만 무동력의 후반기는 그야말로 쏜 살이다. 어찌 생각하면 그 짧음이 고마울 수도 있으련만 내게 있어 여행의 남은 반은 언제나 아쉽다. 또 꼭대기에 올라와 있다. 내리막이 궁금하다.     




  인구 10만 명 중 1/10이 대학생이라 불리는 대학도시 타르투(Tartu)는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로, 수도 탈린(Tallinn)과 함께 중요한 국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늦은 밤, 아파트를 찾아가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있다. 노천극장인 셈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우리는 그 모습이 영화처럼 보였다.




  아파트는 한 마디로 럭셔리. 현대식 빌딩으로, 두 개의 방 모두 양 면이 통 창이다. 커튼을 열면 바깥이 훤하게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캄캄한 밤, 조명이 환하게 켜진 방에서 커튼을 닫지 않고 옷이라도 갈아입는다면 그야말로 동네방네 라이브로 생중계될 수도 있는 위험한 방이다.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진한 회색 소파, 강렬하고 모던한 그림, 세련된 그릇 탁월한 위치, 모든 게 완벽했다.






 밤새 내린 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칠 기미가 없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은 어떻게 출산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친구 동생 J가 말했다.

‘언니, 예정일이 너무 지나서 아이가 너무 큰 거 아닐까? 나오자마자 학교 입학시켜야 할지도 몰라…. 빨리 양수가 터져야 할 텐데…’       


  말하자면 나는 ‘꽃보다 누나’의 윤여정이다. 여행을 시작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즉 예정일이 한참을 지났건만 도무지 진통이 없다. 산고를 느끼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어서 몸이 가벼워졌으면 했다. 준비해 간 유산균도 두 배로 먹었고, 걸쭉한 요거트와 찬 우유도 매일 마셨다. 특단의 조치로 유도분만용 약을 용량보다 많이 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배는 태풍이 지나간 바다처럼 고요하다. 그야말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행 중 예정일을 훌쩍 넘기고 나서 여러 차례의 난산을 경험했지만 이번은 특히 심하다. 그러다 보니 자고 나면 인사가, ‘잘 잤어?’ 대신 ‘오늘은 어떻게 분만할 수 있겠어? 마음 편하게 갖고 분만실 먼저 사용해’였다.       

  리가에서 사 온 채소로 비빔밥을 만들고 달걀을 풀어 북어 국을 끓였다. 



출산을 돕기 위한 식단?



‘해산하면 미역국 끓여줄 거지?’ 우리는 그렇게 종종 출산드라 얘기로 폭소를 터트리곤 했다. 그러던 그날 아침, 드디어 출산을 했다. 비록 미숙아였지만, 10년 동안 기다리던 출산을 한  듯 마냥 기뻤다. 

‘기다려봐 내일은 쌍둥이를 낳을 테니까.’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상가는 문을 닫았고 비 내리는 거리는 한적했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백색 건물이 있다. 타르투 대학교의 본관이다. 강의가 열리는 강의 동은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으나 대학교의 중요한 기관들은 이곳에 집결되어 있다. 본관 왼쪽 건물은 철학 동인데 유리창에 역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 현재 재직 중인 교수들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이 이채롭다. 철학동 뒷면 벽에는 본관을 그려놓았다.         



타르투 대학교
타르투 대학교 철학동




  타르투 대학은 1632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에 의해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독일 귀족의 자제들만 수학할 수 있었으나, 19세기 제정 러시아에 의해 농노제가 철회되고 에스토니아 인도 입학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 후 타르투 대학교는 에스토니아의 지성과 문화운동을 이끄는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게다가 이웃 나라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대학교가 1832년부터 1919년까지 폐교되었을 당시에는, 발트 3국의 유일한 대학교로 역사 문화 과학 분야의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북방의 아테네로 불리기도 했다. 1909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빌헬름 오스트발트, 천문학의 대가 슈트루베 , 기호학의 아버지 유리 로트만, 발생학의 아버지 카를 베어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타르투 대학은 지금도 에스토니아는 물론 북유럽 전체에서도 최고 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밤, 사람들이 영화를 보던 노천 광장은 시청광장이었다. 18세기에 지어진 시청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현재까지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 주변은 노천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대학도시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시청광장 한가운데 분수 중앙의 ‘키스하는 학생’ 상이다.     


타르투 시청사
시청사 안 인포메이션 창문



  비가 내리니 무척 추웠다. 우리 모두 따뜻한 겉옷이 필요했다. 그때 70% 세일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제대로 찾아왔다. 옷과 액세서리, 가방, 구두들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모든 물건이 10유로를 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가격에서 10% 추가 할인까지 해 준단다. ‘그렇다면? 골라봐야지’ 하면서 우리의 폭풍 쇼핑은 시작되었다. 오리털 패딩, 양가죽 재킷, 후드 달린 재킷, 블라우스, 베스트, 니트 카디건, 스카프, 목걸이… , 모두들 한 보따리씩 구입하고 즉석에서 필요한 옷을 입기도 했다. 




  ‘ 무거워서 어쩌지? 캐리어 기본 중량을 초과하면 항공사에 꽤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이미 생각해둔 게 있었다. 우체국 택배로 배송하는 방법이다. 안 해봤지만 배송료도 저렴하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걸 블로그에서 보고 알았다. 비닐봉지에 담긴 옷 보따리를 그곳에 잠시 맡기고 아버지와 아들을 찾아 나섰다. 



  에스토니아의 조각가 윌로 이우나(ÜloÕuna,1944-1988)가 자신과 한 살 반 된 아들을 본인과 같은 키로 확대하여 만든 작품이다. 원래 탈린에 세워질 계획이었으나 2001년 타르투 시에서 구입하여 2004년 어린이날을 맞아 세웠다고 한다.      



father and son


  ‘빌데(Wilde) 펍’은 타르투에서 가장 유명한 아일랜드 펍이라고 한다. 그 펍 아래에 ‘에두아르 빌데(EduardWilde 1865-1933, 에스토니아 소설가)’와 ‘오스카 와일드(OskarWilde 1854-1900, 아일랜드 소설가)'의 동상이 있다. 동시대에 활동한 이 두 작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단지 성의 철자가 같다는 이유로 동상을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고향인 아일랜드 골웨이에도 똑같은 동상이 있다고 한다.    



‘에두아르 빌데'와  ‘오스카 와일드'




  비도 내리고 으슬으슬 춥고 하여 아파트로 돌아갔다. 비 오는 날, 그것도 이국에서 먹는 얼큰한 라면은 최고다. 타르투 주변을 흐르는 에마외기 강의 아치형 다리를 건너갔다가 강변을 걸었다. 에마외기는 어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타르투 성당
에마외기 강변의 파니니



  타르투 역은 시 외곽에 있다. 호스트에게 콜택시를 부탁하고 여행 캐리어를 계단으로 내리고 있었다. 계단 위에는 햇빛이나 비를 막는 바이저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계단은 물에 젖어 있었다. ‘앗!’ 외마디 소리와 함께 J가 그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한쪽 무릎이 뒤로 완전히 꺾여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에선 수십 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괜찮겠지?, 여기는 그래도 큰 도시고 아래층에 호스트도 있으니까 바로 병원에 갈 수 있겠지?, 여행자 보험 들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지?, 택시도 곧 올 거니까…’

일단 침착하자 생각했다. J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한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왔다. 다리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데 무리하게 움직이면 2차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뒤로 꺾인 왼쪽 다리를 펴보라고 했다. 다행히 골절은 아닌 듯했다. 팔꿈치와 다리, 손에 찰과상을 입은 정도였다. 물론 자고 나면 곳곳이 멍들고 쑤시고 아플 것은 예견했지만 일단 골절이 아니라는 게 감사했다.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택시를 탔다. 






  타르투 역은 멀었다. 역사에 타르투라는 간판도 없었다. 왠 시골 들판에 내려진 기분이다. 

‘여기가 타르투 역 맞아요? 우리는 탈린 가는 기차를 타려고 해요.’

맞단다. 여기가 타르투 역이란다. 운전기사는 거듭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 안으로 들어가니 단아하고 아담한 게 아주 맘에 들었다. 우리는 이미 기차 티켓을 예매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티켓 오피스가 없다. 작은 매점이 있는데 그 아주머니가 티켓도 팔고 있다. 신기하다. 



     

에스토니아 합살루 역을 닮은 타르투 역




  탈린으로 가는 기차는 좌석 번호가 지정되어 있지 않았다. 기차 출발 시각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우리 넷은 떨어져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콩나물시루처럼 통로에 빽빽하게 앉았다. 짐칸이 따로 없어서 장애인이나 자전거 두는 넓은 공간의 안전 바에 캐리어를 두 개씩을 와이어로 묶어두었다. 준비해 간 건 다 사용하게 되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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